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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은 것들 앞에서

7월 11일 :: off레터

2025.07.11 | 조회 751 |
3
|
from.
장재열

오늘의 편지

 

이 글을 쓰는 제가 눈을 옮겨서 바라본 풍경은 저희집 거실이네요
이 글을 쓰는 제가 눈을 옮겨서 바라본 풍경은 저희집 거실이네요

 

잠시만 화면에서 눈을 옮겨 가장 가까운 풍경을 쳐다보시겠어요? 5초 만이어도 좋아요.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대중교통안 일 수도 있고, 거리를 걷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죠. 카페일 수도 있고, 침대일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방안이라면 잠깐만 창문을 열어서 바깥을 내다보세요. 그냥 멍하니 쳐다보는 겁니다.

 

멍.

 

가장 마지막으로 멍하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던 때는 언제인가요? 나무가 흔들리고, 구름이 흘러가고, 햇살이 천천히 건물 벽을 타고 자리를 옮겨가는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 순간 말이에요. 저는 참 오래 그런 순간을 가지지 못한 채 정신없이 살아왔었는데요.작년 연말 즈음, 잠시 만나지 못했던 (뒤에서 자세히 소개할) 오랜 친구 지민과 재회한 뒤부터 어떤 식으로든 잠시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쁠 때에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서 폰을 잠금 앱으로 일부러 살짝 잠가둡니다. 그러면 자연히 풍경을 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바삐 일정을 소화하려고 종종걸음으로 걷다가도 노을 지는 시간에는 "어? 노을이네."라고 잠깐이라도 알아차리면서 단 5초만이라도 쳐다봤다 다시 길을 걸어갑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인데도 그 찰나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의 제 마음은 참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책을 쓸 때도 하루에 17시간씩 거의 숨도 안 쉬고 책을 쓰면서도, 굳이 집이 아닌 바닷가에 있는 숙소를 잡아서 가는 거더라고요. 17시간이라는 엄청난 노동 강도로 글을 쓰다가도 10분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잠깐 숨을 고르고 나면 다시 그리 쭉쭉 써지는 거 있죠.

 

그런데 이건 제가 극히 예민하거나 서정적인 사람이라서는 아니었더라고요. 9월 즈음 출간될 새 책 작업을 하던 중에 관련 문헌을 찾다가 "아, 내가 이래서 그런 거였구나."를 알게 됐어요. 미국의 심리학자 스티븐과 레이첼 카플란 부부는 우리가 그렇게 자연을 바라볼 때, 뇌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해요. 집중하느라 지친 우리의 ‘주의력’은 회복이 필요하거든요. 자연 풍경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시선을 끌고, 그런데 자극은 저자극이라서 뇌가 그걸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쉬게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이 연구에서 신기했던 건, 심지어 실제 자연이 아닌 자연의 사진을 바라봐도 거의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거였어요.

 

이건 제 침대에서 정면에 보이는 액자랍니다
이건 제 침대에서 정면에 보이는 액자랍니다

 

그래서 저는 거실과 방 한켠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요한 바다 풍경이 그려진 액자를 하나씩 사두었습니다. 정말 단 한순간도 풍경에 눈을 두지 못한 날은, 적어도 자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라도 나의 눈이 풍경으로 향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거든요. 우리 독자님들에게도 이런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귀인을 발견했어요.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저의 22년지기 친구 지민이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인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쭉 저와 일상을 함께 해온 소중한 단짝입니다. 늘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밝게 웃는 얼굴이지만, 내면 한켠에는 아픔도 있고 시니컬한 성격도 있는, '반짝거리는 회색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나누며 인생을 함께 걸어왔죠.

 

아주 젊을 때부터 빅뱅 같은 톱 클래스 연예인들과 작업하기도 하고,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성취를 빠르게 얻은 자랑스러운 친구였던 그녀, 38세에 희귀병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만나게 돼요. 전 세계에 5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말 드문 병, 온몸에 힘이 점차 빠져가는 자가 면역 질환의 일종이죠.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손가락으로 셔터를 눌러야 하는 그녀인데, 목을 가눌 힘도 없어서 소파에 머리를 대고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고, 손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서 머리를 묶을 수 없기에 머리를 빡빡 밀어버려야 하는 순간도 있었대요. 서 있다가도 온몸에 힘이 빠져서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온몸에 상처를 입어버리기도 하고요.

 

희귀병이라 약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요.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쓰면서 치료를 이어가는 그녀에게 감히 위로의 말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밤마다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죠.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거의 2년간은 만나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흘러 상태가 호전된 그녀를 만났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하던 시절에도 서로 회색 인간이라고 부를 만큼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픔과 시니컬함이 있었던 그녀였는데, 너무나 평온하고 충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삶이 잠깐 정지된 것 같은 그 순간에 그녀는 치열하게 자기 내면과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열흘간 휴대전화도 반납하고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로 오로지 마음만 들여다봐야 하는 묵언 수행에 찾아가 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살아온 세월들을 마음속으로 계속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그녀는 평범한 삶이 주는 감사함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게 된 거예요. 지금 걷고 있는 이 두 발이 얼마나 고맙고, 지금 내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는지 깨달았던 그녀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렌즈 속에 담긴 사진은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아름답고, 조금 더 따뜻해져 있었습니다. 지민은 다음 달이면 한국을 떠나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그 희귀병 투병 중인 과정에서도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바꾸어서 예술 치료를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유학 준비를 했더라고요. 다가올 가을 학기가 되면 그녀는 뉴욕대학교에서 박사과정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커리어의 성장을 위해서 써오던 예술적 감각을 자신처럼 아픈 사람들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 쓰겠다는 그녀. 원치 않았던 멈춤 때문에 뜻밖에도 훨씬 더 큰 사람이 되어버린 그녀를 당신과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녀의 시선으로 담은 이런 사진들이 전해질거예요.
그녀의 시선으로 담은 이런 사진들이 전해질거예요.

 

그래서 다음 달부터 지민은 뉴욕에서 월간 마음건강 독자들을 위한 편지를 쓰게 될 겁니다. 다만 그녀의 편지는 어떤 글도 없어요. 그녀의 렌즈 속에 담긴 풍경 사진만을 보내올 거예요. 단 한 글자도 읽지 않아도 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로지 바라보면서 그녀의 시선이 닿았던 곳에 당신의 시선도 가만히 두어보세요. 그 멈춤의 시간들은 말해 줄 거예요.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풍경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녀온 그녀에게는 단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음을. 그 당연한 것들에 당연하지 않음을 눈으로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충분히 느끼고, 멍하니 나를 쉬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조금 달라져 갈지도 모릅니다.

 

 


 

이번주의 추천

:: Must Healing - Heavy snowfall in Gangwon-doㅣ강원도 대설 드라이빙

 

 

풍경을 지금 당장 바라보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영상으로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즐겨찾곤 하는 유튜브 채널 하나를 추천해드립니다. 저는 요즘 너무 덥고 꿉꿉해서 그런지 겨울 산길을 드라이브 하는 이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며 풍경에 빠져들곤 한답니다. 그 외에도 폭포, 섬, 바다 등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영상들이 우리의 시선을 쉬게 해줄거예요. Must Healing채널, 한 번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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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llo365의 프로필 이미지

    hello365

    1
    9달 전

    오늘부터 구독했습니다. 최근에 건강상 이슈가 있었어서, 내용이 많이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ㄴ 답글
  • 도로시의 프로필 이미지

    도로시

    1
    9달 전

    제가 창가자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단순히 뷰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자연을 바라봤을 때 힐링되는 느낌이 좋았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3번 하늘을 보면 행복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우리는 하늘을 볼 일이 많이 없습니다. 당장 내가 나아가야하는 길, 핸드폰, 전화 등으로 두 눈이 많이 바쁘죠. 요즘에는 특히나 하늘을 하루에 1번 보면 많이 보는건데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더더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나에게 5초의 시간을 선사하여 내가 평온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봐야겠죠~?ㅎㅎ 오늘도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재열 작가님! 늘 잘 어울리는 플리 추천도 감사합니다. 이러한 플리도 있군요!! 더운 여름 날, 대설 플리라니 보기만 해도 시원해집니다!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ㄴ 답글
  • 사랑이누나의 프로필 이미지

    사랑이누나

    1
    9달 전

    우와~! 지민님 시선으로 담은 겨울왕국은 저절로 시선이 멈춰지네요! 40도를 육박하는 요즘 어디에서도 시원함을 느끼기 어려운데 사진을 눈에 담는 순간 마음속이 시원해졌어요!!! 아~~~ 정말 너무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어 새로운 출발을 하시는 지민님이 정말 너무 멋지네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싶고 실행에 옮길수 있는 그 에너지도 대단하다는 말밖엔 안나옵니다 앞으로 뉴욕에서 전해주실 렌즈 속 풍경 기다리며 7월을 마무리해야겠어요^^ 지민님의 새로운 출발을 마음속 깊이 응원할께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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