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연
서른두 살, 극 I 인 직장인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분위기가 유독 '같이'를 중요시해요. 출근해서 퇴근까지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으면 뭔가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점심도 늘 같이 먹어야 하는 분위기예요.근무시간이 긴 편인데, 그나마 숨 돌릴 수 있는 점심시간에도 괜히 혼자 먹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요. 다들 같이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니까요. 그런데 저는 진짜 딱 그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밥 먹고, 이어폰 끼고 생각 좀 정리하고 싶은데, 그런 말 한 번 꺼내는 것도 눈치 보이고 괜히 이상한 사람 될까 봐 망설여져요.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니에요.
다만 하루 종일 뭔가를 맞추고, 대화하고, 텐션을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 너무 지치고, 가끔은 말수도 줄고 표정도 굳어요.이게 제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이렇게 절실한 게 이상한 건가요? 요즘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괜히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해요. 누구는 이런 게 별거 아니라고 하겠지만, 제겐 꽤 큰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by. 박경*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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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의 답장
박경*님의 사연, 어떻게 보셨나요? 조직생활의 문제인 만큼 의견도 관점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이번 달 구독자의 답장, 한 번 살펴볼까요?
장재열의 답장
안녕하세요. 박경*님. 사연에 아주 공감하면서 오늘은 편지를 씁니다. 한국사회에서 밥이라는 게 정말로 밥만이 아니잖아요. 식구(食口)라는 말이 주는 그 압박감이랄까요? 같이 밥 먹는 게 곧 같은 편이고, 같은 팀이고,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유대 의식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혼자 있고 싶다고 말로 꺼내는 순간 분위기가 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혼자 강연을 다닐 때가 많으니까 관계자분들이 배려이자 환대의 차원에서 강연 앞뒤로 식사를 함께해 주시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기차역까지 태워주실 때가 있어요. 근데 사람 마음이 참 웃긴 게요. 어느 날은 그게 너무 좋고 감사한데 어느 날은 또 약간의 부담이 될 때가 있어요. 상대방이랑 먹기 싫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진이 빠진 날엔 밥 먹으며 하는 스몰토크도 버거울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죠. 배려를 거절하는 게 너무 냉담해 보이기도 하고, 또 너무 딱. 할 일만 하고 가버리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신경 쓰이고, 나만 예민한가 싶은 자책도 따라오고요. 아마 박경*님도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남 눈치 보지 말고 나 혼자 밥 먹겠다고 말하자라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아요. 당장 저부터도 그렇게 못하는 걸요? 그런 결정은 함께 문화가 강한 조직 안에서라면 소외되기 너무 쉬운 '튀는 결정'인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해요. 밥은 그냥 같이 먹어요. 사실 저도 박경*님도 같이 밥 먹는 분들이 싫은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말씀대로 호 불 호로 나눈다면 호에 가깝죠. 좋은 사람들이고요. 그러니 함께 식사하고 대신 그 뒤의 시간에서 나를 조금 회복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식사 끝나고 나서 아주 잠깐 마이크로 산책을 다녀온다든지, 교보문고에 가서 거기 안에 있는 간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온다든지(커피 혼자 마시러 갈게요! 하면 왜 혼자가? 하시지만 서점 좀 들렀다 갈게요는 느낌이 확 다르잖아요), 내향인들의 필살기! '올리브 영 좀 들렀다 갈게요'도 좋고요.
그때 아주 자연스럽고 공감되는 한두 마디를 덧붙여 말하는 게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요즘엔 밥 먹고 좀 걸어야 소화가 되는 것 같아서요, 요즘에 폰 대신 책 읽기 습관을 다시 들여보려고요. 날이 너무 뜨거워서 쿨링팩 좀 사려고요.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넌지시 나의 의사를 전하다 보면 타인을 향한 거절이 아니라, 내 몸이나 컨디션 또는 업무 컨디션을 위한 조율의 일부라고 느껴져서 대부분 이해합니다. 왜냐면 다들 허리는 아프고, 폰을 너무 자주 본다고 느끼고, 피부가 푸석해졌다고는 느끼니까요.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해보면 돼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또 나라는 사람의 패턴에 익숙해져요. 이 사람은 식사 후에 가끔 혼자 어디 들렀다 오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생기면 오히려 나중엔 아무 말도 안 하게 돼요. 무언으로 내 리듬을 인지하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리고 그 10분, 15분이라도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중에 꼭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답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지만 에너지 회복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멍하게 앉아 있거나 가만히 걸으면서 이어폰 끼고 숨 한 번 제대로 쉬는 시간이거든요. 그걸 점심 이후 시간에 살짝 끼워 넣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덜 버거워진다는 거죠.
저도 요즘에는 기차표를 좀 늦은 걸로 끊어요. 그리고 관계자분들과 식사를 끝낸 후 "여기 좋은 유적지 있다길래 한 번 가서 앉아 있다가 에너지 충전 좀 하고 가려고요. 저는 내향인이라서 말하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혼자 좀 앉아있다가 가요."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아, 맞다 재열 작가는 아까 강연때 내향인이라고 말했었지. 강연하고 우리랑 밥 먹으며 대화하고 에너지를 엄청 썼겠다.' 라는 납득이 가능해지는 거죠. 그리고 두세 번 이상 만난 분들은 어느새 아셔요. '저 사람은 우리가 계속 같이 있어주는 게 환대가 아닌 사람이다, 어느정도 이후에는 경치 좋은 곳에 혼자 있게 떨궈주면 좋아한다.'라고요.
우리들은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하루에 한 번쯤은 혼자 멍하게 있고 싶은게 그냥 우리 내향적인 사람들의 타고난 체질인 것 뿐입니다. 그 마음을 우리가 너무 자책하거나 문제시 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다만 우리가 사는 이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는 그런 성향이나 기질을 존중하는 사회는 아니니까, 나 스스로가 나를 챙겨야 하는 약간의 수고로움이 필요할 뿐이에요. 아주 약간의 틈을 만드는 수고, 그것만 내가 나를 위해서 해주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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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아웃인걸까요? 나약한 걸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저 역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며, 좋은 부모이자 배우자, 성실한 직장인,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끈기, 열정, 그리고 ‘버티는 힘’이 저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라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저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 장재열 작가님 강연을 통해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 마음에도 '처방'이 필요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복에 겨운 소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부모의 자식으로서,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저에게만 요구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점점 사람을 피하고, 관계를 피하고, 스스로를 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한 게요. 처음엔 ‘잠깐의 도피겠지’, ‘이 정도 휴식은 괜찮아’라며 애써 나를 다독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돌아가기 어려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대인관계에서는 자꾸 벗어나려는 저의 이중적인 모습이 저 자신도 낯설고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가끔은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요즘 바빠서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뭘 더 잘하려고 해?"
라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래, 내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돼’ 하고 다짐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정신과에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그저 나약한 모습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그 생각도 접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아내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합니다. 늘 신경 쓸 것이 많고,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 이게 번아웃일까요? 아니면 제가 그냥 나약한 걸까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맥이 잡히지 않습니다. 푸념 같지만, 저 자신도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by. 불타는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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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왕
저 이 코너 제일 좋아하는데 이번 사연에는 답장을 못 써서 아쉬운 마음에 댓글을 남깁니다. 저는 남편과 둘이 집에서 일하는데(각자 다른 곳에 소속되어 다른 일) 그러다보니 매일 점심은 남편과 같이 먹어요. 제가 그게 요즘 좀 힘들었구나..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저는 내향과 외향이 반반인데, 내향인으로서는 온전히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게 줄곧 저를 지치게 한 것 같네요. 요즘 자꾸 제가 "내일은 도서관에 가서 일을 해야겠어"라고 적더라구요. 박경*님 덕분에 저도 월요일에 회복의 시간을 가져볼게요. 감사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
ㅎㅎㅎ 회복의 시간 잘 가지셨을까요? 이렇게 집단지성 상담소가 사연자 한 분이 아니라 읽고 계시는 우리 모든 독자님들께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는 게 참 보람 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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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저는 항상 내향인이라고 말하지만 남들은 외향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인데요. 그런 저도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답니다. 재열작가님이 현실에 바로 적용가능한 꿀팁을 많이 알려주셨네요. 보면서 미소짓게 되었습니다ㅎㅎ 공감되어서요. 저는 점심시간에 혼자만의 시간보다는 쓸데없이 다른 사람 따라가서 커피사는게 너무 아까워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요즘 위가 안좋아서 커피를 안 마신다, 배가 너무 부르다와 같이 말하면서 커피타임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몇 번 물어보던 직장사람들이 이제는 알아서 '아 OO님은 커피 안드시죠?' 이렇게 생각해주십니다. 처음이 어렵지 한, 두 번 하다보면 남들이 알아서 그렇게 인식해주는게 참 편하고 좋더라고요. 입도 안 아프고요ㅎㅎ 하지만 처음의 어려움은 정말 잘 안답니다. 그럴 때는 잠시 배우가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편합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유튜브 배우들에 잠시 빙의하여 또 다른 자아를 꺼내면 훨씬 나은데요. 이걸 글로 쓰니 더 어려워보이네요ㅎㅎㅎ 모쪼록 박경*님의 마음이 편해지는 점심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점심시간은 사실상 근로시간이 아니라 휴식시간이라서 잘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용기를 내보세요. 화이팅입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
꿀팁이 좀 도움 되셨다니 :-) 확실히 저도 외향인으로 오해를 엄청 많이 받는 내향인이다 보니까 그만큼 생활에 노하우랄까요? 생존 노하우가 생겼던 모양이에요. 앞으로도 중간중간 제 코너들을 통해서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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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우리 사회가 '함께'를 너무도 중시해서 시너지를 내기도 하지만 때론 이렇게 지치게도 하죠... 가족끼리도 늘 함께하면 너무 힘든데 타인은 오죽하겠어요 어떤 관계는 정말이지 적!당!한!거!리!가 절실한데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야하니 재열작가님이 알려주신 방법들을 잘 활용하면 정말 효과적으로 박경*님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어요~!! 처음은 어렵겠지만 한두번 하다보면 또 금방 익숙해지는게 사람이니까 가볍게 서점으로 시작하시죠^^ 꼭 휴식의 시간을 쟁취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
맞아요. 적당한 거리라는 거 참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적당하다고 느끼는 것도 달라서 그걸 조율해 나가는 게 정말 관계의 핵심이자 나를 지키는 핵심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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