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마음건강 베이직

나 혼자 멈춘 것 같을 때

10월 16일 :: 스물일곱번째

2024.10.16 | 조회 705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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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작은콩

장재열의 오프먼트

나를 위한 일상 속 잠시 멈춤,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작은콩의 조금 느린 서른 즈음의 일기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야 엄마가 날 찾을 수 있어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야 엄마가 날 찾을 수 있어

어릴 적 엄마는 늘 말했다.

“길을 잃어버렸을 땐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네가 다른 곳으로 가면 길이 엇갈릴 수 있어. 가만히 있으면 엄마가 꼬옥 찾으러 갈게.” 

그러다 어느 날 정말로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가족들과 공원 나들이를 나왔다가 혼자 노는 것에 빠져 일행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놀라서 황급히 근처 화장실, 벤치 같은 곳에서 부모님을 불러봤지만 아무도 없었고, 어쩔 줄 몰라 엉엉 울다가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처음 길을 잃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 기다렸다. 사실은 가족들이 날 잊고 이미 떠나버렸을까 봐 너무 무서웠고, 여기저기 울며 뛰어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찾으러 올 거라는 믿음을 되새기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다행히 기다림은 그리 길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은 나를 찾아 뛰어왔고 가만히 있길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 이후엔 어땠더라. 아마 다시 고아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버스 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집에 가는 버스 번호를 여러 번 외우고, 탈 때 한 번 더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여쭤보고 타면 혼자서도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다. 이때에도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무섭다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아무 버스나 타 버리면 정말 먼 곳까지 가 버릴 수 있으니까. 언젠진 몰라도 내가 탈 버스가 꼭 올 거라고 믿고 기다려야 했다.

그 후 나는 비교적 잘 기다리는 사람으로 자랐다. 병을 만나고 언제 나을지도 모르면서 매일 식이요법과 운동을 할 때에도, 누가 봐줄지도 모르면서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도 그랬다.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나를 돌보고 있으면, 지금은 무섭고 힘들더라도 언젠간 행복한 날이 꼭 찾아 올 거라고. 불안한 마음에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튀어가 버리면 분명 길이 어긋나버릴 테니, 무서워도 참고 기다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 또다시 길을 잃고 혼자 남겨진 기분이다. ‘정규 노선’을 벗어나 살게 되면서부터였을까. 제멋대로 구는 아픈 몸에 평범한 직장 생활을 포기했고, 결혼도 아이도 먼 이야기였다. 남들은 경력을 쌓고 가정을 이뤄가는데 난 이 자리 그대로 박혀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았다. 그 어디에도 내가 속할 곳은 없어 보였다.

수많은 버스가 지나다니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정류장엔 ‘기회’라는 이름의 버스가 계속 멈추고 다른 곳으로 갈 거냐고 재촉한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이 버스를 보내고 나면 내 생에 다시 같은 차가 오진 않을 거라는 걸. 곁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적당한 시기에 자신의 버스를 찾아 타고 떠나버린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는 삶의 노선을 따라가겠지. 그 와중에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일은 해가 지는 정류장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져서,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버스라도-심지어 원하는 곳이 아니라 할지라도-모른 척 그냥 나 자신을 맡겨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기다림은 어렵다. 때론 선택과 도전보다 더.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끝내 날 찾아올 거라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고, 둘째로는 결국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혼자 남겨지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려움에 도망치듯 선택하면 더 길을 잃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상한 곳에 이르게 되니까. 일도, 결혼도, 인생 모든 일들이 다 그렇다. 쉬운 선택 대신 옳은 선택을 하는 연습을 하자. 기다림은 수동적인 일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강한 일이다.

 


월간 마음건강 소식

:: 첫 온라인 워크숍이 열렸어요

온라인 워크숍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온라인 워크숍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지난 9월 29일 오전, 처음으로 월간 마음건강 구독자 여러분들과 만나는 자리가 열렸답니다. 바로 멤버십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온라인 워크숍이었는데요. 일요일 아침을 건강하게 깨우는 바디스캔 명상을 저와 함께 직접 해보고, 첫 달이니만큼 뉴스레터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무엇이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리고 소소하게 참여자 여러분의 고민을 상담하는 막간 고민 상담코너도 가졌어요. 앞으로 매달 다양한 콘텐츠로 여러분과 소통하려고 하는데요. 이번 10월 26일에는 '나와 타인, 그리고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글쓰기 :: 나 사용설명서'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또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바라봐야 할지, 사람에게도 전자기기처럼 사용설명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서 착안한 저만의 리추얼 테라피랍니다. (워크숍은 일주일 전인 10월 19일, 메일로 초대장이 발송된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매달 온라인 워크숍과 함께 상, 하반기에는 더 넓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워크숍도 준비하고 있어요. 이 과정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이 조금 더 안정되고 단단하게 성장해 나가길 바라요. 뉴스레터가 저 장재열과 에디터들의 '생각'을 구독하고 나누는 과정이라면, 멤버십은 저 장재열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커뮤니티로 여러분의 의견을 모아 모아, 차근히 발전시켜 나가보려고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

 


brand story

 

장재열의 off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레터는 공간, 사물, 교육을 통해 온전히 멈출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브랜드 offment의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에서 소개된 다양한 개념들이 구체적인 제품과 공간, 워크숍으로 구현되어 당신의 일상에 멈춤의 순간을 만듭니다. 아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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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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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청

    0
    about 1 month 전

    "쉬운 선택 대신 옳은 선택을 하는 연습을 하자. 기다림은 수동적인 일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강한 일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보니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은 약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기가 뜨거워지던 6월부터 올해의 반이 남아있는 그 순간에도 저는 내년을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오늘도, 지금도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느린콩님의 글을 보면서 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그래서 벌써 다음을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제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내년에는 뭘 할거야!라는 목표를 빨리 세우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옳은 선택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과정에 집중하며 조금 더 내실을 다지는 것. 그 이후에 다음을 선택해도 늦지 않다고 저 자신을 믿고 기다리는 것 같아요.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저를 믿고 조금 여유를 가져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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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누나

    0
    about 1 month 전

    40대 중반 미혼인 저에겐 늘 하지 못한 숙제처럼 남겨져 있는 결혼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그래서 늘 나머지 공부를 하는 때론 외롭고 때론 무거운 마음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인지 오늘 작은콩님의 마음 나눔 이야기가 더 깊이 와닿네요 조급한 마음이었던 30대때와 달리 지금은 자유롭고 안정된 싱글의 삶이 너무 좋고 행복해서 남들이 간다고 무작정 따라가지 않았던 제 선택이 감사함으로 돌아왔어요 '자신에 대한 믿음'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너무 알기에 하루하루 나를 돌보며 살고 있는 나를 오늘은 칭찬해줘야겠어요! 작은콩님의 인생 속 기다림에도 두렵지만 언제나 소소한 행복이 함께 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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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리

    0
    about 1 month 전

    저도 29세의 정류장에서. 부모님 부양, 독립, 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등 다양한 노선지에 대해 여러가지 고민이 드는 것 같아요. 어떤 선택이 맞는지, 옳은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가 행복하게 연애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는데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이유로 이혼을 하고 돌아오는 모습도 보고,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것도 보고, 강남의 신축 아파트에서 외제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우울증을 앓는 모습도 보고... 주변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다보니 더 많은 고민이 드는 요즘이더라구요. 물론 그 반대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들도 많이 보구요. 어떤 노선지로 가는 것이 정답인지는 제 자신만 알고 있겠죠? 제 마음의 소리를 더 잘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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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하는댄서

    0
    about 1 month 전

    기다림은 수동적인 일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강한 일이다. 저는 호기심이 많고 행동파라서,사실 기다리는것을 잘 못하는사람인데요.오늘 글을통해 기다림이라는것도 행동처럼 같이 눈에는 보이지않지만 선택지중에 하나가 될수도있겠구나.알수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른 다양한 행동양식에 대해 다시한번 배우게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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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로시

    0
    about 1 month 전

    기다림은 자기 자신을 가장 강한 믿음이라는 말, 정말 인상깊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명한 마시멜로우 실험을 늘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기다릴 수 있는가, 내가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등 말이죠. 기다리면서 제 자신을 강하게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단순히 기다리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죠. 믿고 기다렸을 때 한 단계 성장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와 친해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는 제가 되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제 자신에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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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민

    0
    about 1 month 전

    저도 결혼을 생각했던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고 '기회'를 내가 발로 차버린건 아닌지 꽤 오랜 시간 자책 중이에요. 그가 그리운게 아니라, 그 때가 제 결혼의 기회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잘못된 생각인걸 알면서도 아직 놓지 못하더라고요. 알맹이 없는 여러가지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 중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옳은 선택을 한걸로. 앞으로 다시 생각날 때마다 작은콩님이 말씀하신걸 떠올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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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리스

    0
    about 1 month 전

    정말 한문장 한문장이 다 제 일기장을 보듯이 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에 좋아하는 구절도 떠올랐어요.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이유 없음도 이유다. ​ 황경신, <생각이 나서> 여기서의 대답,선택,이유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괜히 숙연해 질만큼 저도 그 무게감을 느낄 때는 절대 고독의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기다림의 시간은 ing… 입니다. 일도, 사랑도, 내 삶은 계속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제 자신을 믿고 계속 걸어가야겠죠. 작은콩님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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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디

    0
    about 1 month 전

    '나를 좀 더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2023년 1월 6일 적었던 일기의 내용이었어요.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도 저는 여전히 저를 의심하는 사람이네요. 그때의 다짐을 새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로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작은콩님 말씀처럼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걸 끝까지 놓지 않으면 저는 분명 이루어질 거라고 믿어요. '미래는 도망가지 않아 내가 놓기 전까지' 이 노래 가사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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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캔두잇

    0
    27 days 전

    저도 요즘 비슷한 생각을 했었답니다. 나 자신을 믿는 상태로 건강하게 기다리는 법. 조급해하지 않고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음을 알고 있는 것. 참 중요하더라고요. 지난번 글을 읽으면서도 느꼈었지만 이번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정말 옹골차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동안 아주 단단하게 쌓아오신 내공이 느껴집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문체가 읽기 참 편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ㄴ 답글 (1)
  • 밴드

    0
    26 days 전

    저는 기다리는 걸 참 좋아해요. 기다리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거든요. 어렸을때, 저희 집에 친척들이 온다면 저는 엄청 일찍 미리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는 했지요. 그리고 친척들을 만나면 참 기뻤어요. 삼국지에서도 최후의 승자는 기다리는 걸 참 잘한 사마의였죠. 기다리는 맛을 잘 아는 자가 좋은 타이밍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ㄴ 답글 (1)
  • 인사하는 프로도

    0
    21 days 전

    버스가 지나가지 않고 계속 기다려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탈 때까지 말이죠. 어쩌면 그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에 지나갔다고 여기지만 현재에 다시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는 걸 볼 때면 더요. 기회라는 버스는 다시 돌고 돌아 내 앞에 섰다갔다 섰다갔다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작은콩님 글을 읽을 때면 마음이 왠지 모르게 포근해지네요 ㅎㅎ 일기 더 풀어주세요 궁금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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