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내내 겨울을 살다보니 추위 자체보다, 차갑게 쌓인 피로가 더 선명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같은 온도여도 몸이 더 무겁고, 마음도 조금은 느리게 움직이게 되죠. 구독자님도 그런 날들이 있으셨나요? 저는 요즘 ‘회복’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때일수록, 하루의 온도를 바꾸는 건 거창한 계획보다는 ‘사소한 사람의 기척’인 것 같습니다. 남은 겨울도, 그리고 다가올 계절도 무리 없이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안단테의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살아있는 많은 것들 중에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에 의해 자라고 사람과 가장 많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필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행운처럼 그리된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말이지요.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가히 탈피에 가까운 변화를 겪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순간순간들에는 그것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일인지 충분히 알기는 어렵지만 말입니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약하디 약한 갓난 아기 시절부터 걷고, 말을 배우고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됩니다. 친구를 만나고 연애를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기도 하고요. 그 모든 사람의 삶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생에는 돌로 태어날 거예요.’
‘어? 저는 감자요!’
회사 동료들과의 시시콜콜한 대화 중에 누군가는 무생물로, 누군가는 식물로 그리고 저는 동물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며 킥킥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만 유난히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돌멩이나 감자, 부유한 집에서 사는 고양이 정도는 꽤 여러 사람들에게서 듣고 있거든요.
다음 생이 있다면 그래서 또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사람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동물이거나 혹은 식물이거나 나아가 무생물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사람으로 사는 것이 퍽 고되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일 것입니다. 신체적 조건도 이유가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이라는 가장 큰 변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며, 욕망하고 갈증을 느낍니다.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하지요. 아끼고 사랑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원망하거나 미워합니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감각을 느낍니다.

‘애증’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애증’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면과 저런 면, 그 사이의 우리들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활달하고 계획적이면서 꼼꼼하고 야무진 ‘ENTJ’의 전형입니다. 가장 나답고 편안한 상태는 ‘ISFP’이고요. 가족 외의 사람을 만나기 꺼려 하고, 퇴근 후의 일정은 집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가족과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 조차도 에너지를 쓰는 시간이라 온전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늘의 구름을 보다가도 울컥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동안에 머리와 마음에서 무척 많은 작용이 오고 가는 사람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모습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것이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거나 편안한 상태가 아니다 보니 한 번씩 소화와 회복에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바쁜 일이 끝나고도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완전히 넋을 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해가 바뀌고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잠시 멈추어 지난해를 소화시킵니다. 분명 참 잘 살아낸 한 해였는데, 생각보다 깊이 다치고 많이 지쳤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과의 삶에서 사람에게 말이지요.
오래 함께했던 동료들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일로 만났지만 언제나 감사한 사람들이었고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조금씩 쌓인 신뢰가 꽤 싶어진 상태였지요. 한 사람은 스스로 쉼을 택해 보내야만 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재계약이 어려움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헤어짐의 과정과 그 이후의 시간을 바라봅니다.

과정도 결정도 그 이후의 시간도 사실은 아직 잔잔해지지 못하고 파동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정하고 차분하며 신뢰감 가득한 모습으로 느꼈던 두 사람이 다른 동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습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직급도 아닌 그저 팀장일 뿐인데, 가장 약한 사람들의 어려움은 제 귀에 들어오지 않게 철저히 차단되었었고 모욕에 가까운 말들이 오가며 그들 사이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실 자체가 주는 사람에 대한 실망과 분노, 상처가 컸습니다. 그리고 곧, 아무리 숨겼다고 한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물론 자책은 곧 덜어냈습니다. 스스로 더 생채기를 내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나를 돌아봅니다. 그들에게 내가 보지 못했던 면이 있었던 것처럼 혹은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면이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타인에게 그러하지는 않는지 묻고 있습니다. 더 어린 사람과 더 약한 사람을 지키는 태도로 살고자 하는 지향을 얼마나 지키며 살았는지를 돌아봅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다 한들, 그것이 충분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저 종종 나를 다독이며 더 기민하게 살피고 내내 애쓰는 것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잊혀지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는 말이나 비슷한 노랫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도 사람도 그리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결국 사람에게서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변함없이 봉사하고 기부하는 지인들을 봅니다. 여러 팀이 함께하는 프로젝트에서 더 어렵고 힘든 일을 나서서 해내면서도 웃으며 다른 팀을 챙기는 사람도 봅니다. 오랜만에 마주쳐서 첫인사로 아무 말 없이 꼬옥 한번 안아주는 사람도 만납니다.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일부터 아주 작은 다정함까지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의 선함은 도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그 크고 작은 선의들이 사람에게 받은 생채기에 연고처럼, 반창고처럼 와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버린 바람에 우리는 사람으로서 살다가 가야 합니다. 기왕 그래야 한다면 어떤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지는 각자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겠지요.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상처만 내지 않는다고 해도 멋진 일인 것 같거든요. 스스로를 찌르지 않으며 타인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삶이 자연스러워진다면 그때는 조금씩 무례하지 않은 도움을 끼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러한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연고가 되기를, 그리고 어떤 한순간쯤은 다음 생에도 ‘사람’으로 태어나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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