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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초급반에 있어도 괜찮겠는걸

8월 8일 :: off레터

2025.08.08 | 조회 768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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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장재열

오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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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때인가요? 수영을 처음 배우러 갔었습니다. 청소년기 즈음부터 저는 물 공포증 때문에 수영장에서 제대로 몸을 담그기도 어려워했었는데요. 대학에 들어오니 이 물 공포증이라는 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꽤 큰 장벽이 되더라고요. 당시에는 한창 한강 르네상스 붐이 일면서 수상 레포츠가 참 많이 부흥하던 시기였어요. 친구들이 여름이면 계속 바다로, 한강으로 가서 노는데 저는 늘 사진을 찍어 주거나 쳐다보고 있는 신세였죠. 그래서 결심을 한 겁니다. 이제는 물 공포증을 한 번 극복해 보자. 용기를 내서 학교 내에 있는 스포츠센터에 찾아갔어요. 마침 접수처에서 접수원분들과 대화하고 있는 분이 수영 강사 선생님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접수 전에 짤막한 상담을 요청드렸죠.

 

“저, 선생님. 제가 굉장히 심한 물 공포증인데요. 저는 수영을 잘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냥 할 수 있는 정도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선생님은 저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음, 한 달 정도면 되겠는데요? 뭐, 운동 좀 하신 것 같은데.”

 

확신에 찬 목소리와 쾌남 같은 미소로 선생님이 “자기만 믿으라”며 “한 달이면 된다”고 하셨던 것에 설득되어서일까요? 바로 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수영장에서는 선생님의 거의 쉬기 일보 직전인 외침이 울려 퍼졌지요.

 

“자, 힘 빼세요. 힘, 힘. 괜찮아요. 괜찮아요. 힘 빼세요. 힘, 힘, 힘, 힘.”

 

한 달 강습이 끝나 가는데 저는 여전히 킥판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다른 회원들은 자유형, 배영까지 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만 홀로 출발선에 계속 있었죠. 도무지 몸이 뜨질 않는 거예요.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던 선생님은 말 꺼낸 게 미안했는지 강습 시간의 거의 절반을 저에게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저를 전담 마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힘이 빠지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강습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미안함도 들었고요. 모두들 앞으로 나가는데 나만 여기 있다는 쪽팔림도 굉장히 심했고요. ‘왜 안 되는 거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컸어요. 늘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늘은 제발 힘 좀 빼 보자. 오늘은 제발 좀 떠 보자.’라는 강박이 점점 더 저를 필사적으로 만들었고, 그 필사적인 마음이 들면 들수록 저는 더 자주, 빈번히 가라앉았죠.

 

제일 황당했던 건 뭐냐면요, 첫날에는 두세 번 정도 첨벙첨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3주를 개근했는데도 점점 더 못해지는 거예요. 이제는 단 한 번도 킥판을 놓을 수 없게 됐거든요. 선생님께서는 저의 무서움을 줄여 주시려고 “이 깊이에서는 절대 안 죽어요. 재열 씨, 절대 안 죽어요.”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제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잖아요. 죽을까 봐 무서운 것보다는 왜 안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바심과 초조함 때문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몸에 힘이 들어갔던 거죠.

 

그러다가 물에서 뜨게 된 날은 아주 뜻밖의 시기였는데요. 바로 다음 달 재등록을 하는 날이었어요. 저를 빼고는 다들 중급반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들었는데, 갑자기 웬걸, 안심이 되더라고요. ‘와, 다음 달에 저분들 다 다른 반으로 가시는구나. 내가 따라 올라가서 민폐 끼치면 미안했을 텐데 덜 미안하다. 그리고 다음 달에 다시 올 수 있겠다. 왜냐하면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그때 깨달았죠. ‘어, 다음 달은 리셋이니까. 그냥 여기에 내가 계속 머물러 있다고 해도 같은 반 사람들한테는 한 달 정도만 죄송하고 쪽팔리는 거구나. 내가 평생 물장구를 못 치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사람들은 계속 바뀌니까? 내가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 수도 있겠어. 그냥 몇 달이든 계속 초급반에 있어도 괜찮겠는걸.’ 그날 저는 처음으로 킥판을 떼고 수영장 중간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수영을 그만두지 않았던 거나, 같이 시작한 사람들이랑 꼭 중급반으로 함께 올라가야겠다는 강박을 가지지 않게 되었던 순간이 참 다행이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오늘 당장 해내지 않아도 되는구나.’ 결국 저는 역설적으로, 내려놓으면서 달성하게 된 거예요. 무엇을 내려놓았냐고요? 바로 시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은 거죠. 우리는 ‘내려놓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포자기나 중도하차를 떠올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내려놓음에는 참 다양한 형태가 있잖아요. 목표를 포기하는 것도 내려놓음이지만, 시간에 대한 강박, ‘언제 언제까지 꼭 이루어야겠다’는 압박을 내려놓는 ‘이완’도 내려놓음의 한 일종일 수 있지 않을까요?

 

상담을 하면 참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게을러서요.”

“제가 나약해서요.”

“제가 욕심만 많아서요.”

 

제가, 제가, 제가...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는 애쓰다, 애쓰다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를 쓰다가, 아니 최선을 넘어서까지 나를 쥐어짜다가도 안 되면 목표를 포기하거나 자기를 탓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잘할 수 있었던 일도 뭔가 과부하에 걸려서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더 애를 쓰거나, 더 많은 시간을 갈아 넣는 쪽을 선택하면서 살아왔을지도 모르고요. 인생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할수록 눈앞에 닥친 목표나 과업이 더 커졌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나를 갈아 넣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힘을 빼세요.

잠깐 멈추어 서세요.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으세요.

 

같은 말은 여유로울 때 여가생활처럼 하거나, 그냥 위로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왔을 수 있죠. 그냥 듣기 좋은 말. 그런 말들은 나의 성장이나 변화에 별로 도움이 안 되고, 그냥 기분을 달래주는 임시방편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더 심리 치유나 회복, 또는 힐링과 관련된 서적들이랑 동기부여 자기계발서가 정반대 급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실제로 좀 그런 경향도 있었고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루어내지 못해도 괜찮아’ 같은 것들요. 그러다 보니 ‘내려놓음’, ‘비움’, ‘여기에 머무름’ 같은 것에 매달리면 성장과 성취에 방해가 된다고 오인되기도 한 거죠.

 

그런데요. 이뤄내야죠. 원하는 게 있으면 이뤄내야 됩니다. 우리는 원하는 장면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해요. 다만, 다만 그것이 너무 고강도의 자기계발서에만 답이 있지는 않다는 겁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불태우고, 더 적게 자는 것에서만 답을 찾아선 안 된다는 거예요. 발을 달리게 하는 데에도 당근과 채찍이라는 최소한 두 개의 도구가 필요한데, 말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채찍 하나만으로 우리를 달리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지친 나를 채찍으로 더 많이 때리는 대신, 시간에 대한 목표치만이라도 조금 느슨하게 고삐를 풀어줘 보면 어때요? ‘되긴 될 건데, 당장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 말이에요.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으면 가장 빠르게 원하는 모습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십수 년 전 라커룸에서의 초급반 장재열 씨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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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al trackerㅣ목표달성 도우미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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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목표 달성 도우미 앱을 쓰고 있어요. 먼 목표에 얼른 다가가려고 애쓰고 나를 갈아 넣기 보다는, 오늘 할 분량만큼을 했는가? 만 체크를 하면서 시야를 거시가 아닌 미시로 미시로 줄여나가는 연습 중이랍니다. 오히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에 너무 간절하지 않게, 하루치만큼의 절실함만, 하루치만큼의 노력만 하려는 모습이 저를 조금씩 내려놓고 다가가게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 느껴요.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해서 늘 스스로를 괴롭힌다면, 간절함의 최소단위로 줄여주는 습관을 만들어가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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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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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나의 프로필 이미지

    김한나

    1
    8달 전

    힘빼는 거 참 어렵더라고요. 물공포 이야기 들으며 저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프리다이빙 원데이 클래쓰에서 느낀 기분입니다. 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고 있다,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압도 되고 진짜 안될 것 같은데 된다고 하는데 사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나만 안되는 복잡함과 물공포에 공황까지 와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생각하면 그냥 안하고 놀던가 하지 왜 그렇게 거기에 계속 서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좋은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 뒤로 구명조끼를 사고 행복을 얻었답니다.)

    ㄴ 답글 (1)
  • 도로시의 프로필 이미지

    도로시

    1
    8달 전

    재열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재열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지금 나아가고 있는 목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1년 반 넘게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학원을 다니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언어는 하루아침에 반짝 오르는게 아니라서 아주 조금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금씩요. 학원 선생님은 계속 잘하고 있다고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하지만 저는 주변 사람들과 저를 비교할 수 밖에 없었어요. 수업특성상 매월 결제하다 보니 매월 수강생이 바뀌는데요. 그래도 꾸준히 듣는 사람은 얼핏 눈에 띄고 그 사람들은 더 잘하는게 보였습니다. 근데 저는 영어를 꼭 엄청 잘해야만 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업무상, 저의 미래상 영어를 잘하면 좋기 때문에 '영어를 잘해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초조해하지 않고 멀리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재열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노력하면서도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죠. 참 신기하게도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도 좀 더 수월한 것 같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계속 멀리 내다보면서 하루하루 살아볼게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재열님~!!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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