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비즈니스는 '결핍'을 담고 있습니까?
여기서 제가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아서 모건은 강도단의 일원입니다. 살인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결핵으로 쓰러질 때,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울었습니다. 유튜브에는 '아서 모건의 죽음에 반응하는 사람들' 영상이 수십만 뷰를 기록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서 모건은 “플레이어가 사랑한 이유”보다 “플레이어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 방식” 때문에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유저는 그를 조종하면서 동시에 그를 망가뜨린 공범이 되기 때문에, 엔딩에서 느끼는 감정은 카타르시스를 넘어 ‘공동 책임감’에 가깝고, 이것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영화·소설과 구별되는 힘이라는 점에서, 이후 스토리텔링의 지향점을 바꾸어 놓은 상징적 캐릭터로 평가됩니다.
솔제니친(Alexander Solzhenitsyn)은 말했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선은 국가 사이가 아닌, 모든 인간의 심장을 가로질러 흐른다." 댄 하우저는 이 선을 게임 안에 그대로 구현했습니다.
아서 모건은 처음부터 강한 사람입니다. 보통 게임처럼 약자에서 강자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거의 무적입니다. 그 강함이, 결핵과 배신 앞에서 천천히 해체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더 날카로운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 서사는 죽음이라는 강제적 조건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담고 있습니다. 아서 모건이 결핵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총을 들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만 진짜를 만날 수 있는 존재인가? 이것이 이 게임이 제기하는 도발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이 질문은 이렇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회사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까?”
$3.3B을 만든 이야기의 실제 구조
하우저가 밝히기를, 이 게임을 만들기 시작할 당시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 중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무게가 존 마스턴(John Marston)이라는 캐릭터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폭력에 깊이 연루된 사람.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불가능할 때, 그는 무엇을 하는가? — Dan Houser
이것은 게임 설계를 위한 질문만은 아닐 겁니다. 모든 리더가 직면할 수 있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결정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내가 쌓아온 것이 나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Viktor Frankl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썼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빼앗길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 아서 모건의 마지막 선택이 바로 그것입니다. 총에 맞고, 결핵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끝을 선택합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끄는 순간 묻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질문을 7,700만 명에게 던진 것이 댄 하우저가 위대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래픽이나 총격 메커니즘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함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기로 한 결정에서 나왔습니다. 가장 강력한 이야기는 선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선해지려고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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