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2 덜어내리 !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투른 쉼표 뒤에 다시 쓰는 일상

2026.06.29 | 조회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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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k hela! 

직역하면 '여전히 좋아', 의역하면 '괜찮아'라는 뜻을 지닌 이 다정한 떼뚠어 문장이 유난히 따스하게 다가오던 3주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 힘을 덜어내고 돌아온 하리 한 조각입니다.

어느 덧 동티모르에 온지도 4개월이 다 되어가요. 이곳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고 나니, 어느새 쉴 틈 없는 일상이 밀려왔습니다. 한국으로 떠나신 지부장님의 부재를 채우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이사하는 동료 선생님과 매일매일 곁을 나누었으며, 공모전 준비로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날들이 이어졌죠.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고요하게 제 일상을 들여다볼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주라는 긴 쉼표를 찍게 만든 가장 커다란 이유는 사실 제 마음속에 있기도 했어요.

" 재미있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해도 괜찮을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이 질문이 저를 주춤하게 만들었거든요. 매일매일이 스펙터클한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인데, 완벽한 타이밍과 특별한 사건을 기다리려 힘을 잔뜩 주다 보니 정작 일상의 소중한 조각들을 다 놓칠 뻔했지 뭐예요.

완벽한 에피소드가 없어도 일상은 여전히 굴러가고, 대단하지 않아도 우리의 하루는 충분히 의미가 있는데 말이죠. 어쩌면 이 3주의 고민도 저라는 사람이 더 단단하게 콘텐츠를 빚어내기 위해 거쳐야 했던 당연한 성장통이었을까요?

오늘은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들을 덜어내는 마음으로,
대단한 서사 대신 6월의 아주 사소하고 다정한 조각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봅니다.


🛺 너희의 사랑을 배워요, 움직이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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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국립 중앙 도서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사나나 구스마오 리딩룸(XGRR)'의 움직이는 도서관(Mobile Biblioteka) 활동에 동행했어요. 이 멋진 외출의 시작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실물 도서 조사를 위해 도서관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친해진 직원 '마운 노에(Maun Noe)'가 종종 이런 행사에 저희를 초대해 주었거든요. 현지에서 만난 사서들의 따뜻한 호의에 고마움을 느끼며,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뚬뚬'이라는 재미있는 세발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현장은 제 상상과는 전혀 다른, 커다란 규모의 행사였지 뭐에요! 포르투갈어와 떼뚠어가 함께 담긴 동화책 발간을 기념해, 주 동티모르 포르투갈 대사님부터 마을의 이장님인 '세피 수꾸(Cefi Suku)', 학교 교장 선생님까지 모두 모인 자리였죠. 동티모르에서는 환영과 존경의 의미로 귀빈에게 전통 직물인 '따이스(Tais)'를 걸어주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마운 노에를 쫄래쫄래 따라간 저와 동료 선생님까지 엉겁결에 목에 따이스를 걸고 귀빈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 왔다가 덜컥 무거운 환대를 받아버린, 어리둥절하면서도 묘하게 벅차오르던 그 순간의 감정이란!

하지만 그날의 화려한 행사보다 제 마음에 더 깊게 남은 건, 사나나 구스마오 리딩룸 사서 선생님들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싶어 곁으로 몰려든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태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눈에 담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 같은 사서로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그 다정한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이 나라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까?', '어떤 이야기들이 담긴 책을 전해줘야 할까?', '현지 사서들과 어떻게 더 깊이 협력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리고 그 모든 질문의 끝에는 결국 '언어'가 있었습니다. 현지어인 떼뚠어를 얼마나 더 열정적으로 배워 의사소통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저 따뜻한 직원들과 더 오랜 시간을 더 깊이 있게 나눌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현지 사서들의 진심은, 한동안 지쳐있던 제 떼뚠어 학구열에 다시금 뜨거운 불을 지펴주었습니다.


🥗 힘을 덜어낼 수 있을까? 계속해서 굴러갈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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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쳇바퀴 같은 매일을 단숨에 싱그럽게 환기해 주는 건, 식탁 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맛들이 아닐까요? 요즘 저는 낯선 요리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쁨에 푹 빠져 있습니다.

토마토를 듬뿍 넣은 메밀국수부터 직접 토치로 설탕을 지지는 브륄레, 그리고 직접 담근 간장새우 덮밥까지.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자신감이 붙으니, 요리 실력도 덩달아 쑥쑥 자라나고 있는데요. 직접 레몬 제스트를 갉아 넣을 도구를 사서 상큼한 레몬 파스타를 만들고, 한국에서도 사본 적 없던 브리 치즈를 이곳 딜리에서 기꺼이 집어 들어 근사한 치즈 파스타를 뚝딱 완성하기도 하죠. 제 곁에서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훌륭한 요리 선생님, 동료 쌤이 계신 덕분에 저의 식탁은 나날이 과감해지고 다채로워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차의 시간 역시 한층 더 호화로워졌어요. 꾸덕한 치즈케이크나 달콤한 프렌치토스트를 곁들이고, 머리털 나고 처음 먹어보는 납작 복숭아를 다과에 올려보기도 합니다. 평소 정갈하게 차려 마시던 다구를 잠시 내려두고, 시원하게 냉침한 말차를 투명한 칵테일 잔에 담아 색다른 분위기를 내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다채로운 변주를 주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일상이라는 궤도를 지치지 않고 계속 굴러가게 만드는 비결은, 바로 '힘을 주고 빼는 타이밍'에 있다는 것을요. 정성껏 재료를 다듬고 끓여내며 매일에 빳빳하게 힘을 주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간단한 조리법으로 힘을 스르르 덜어내기도 해요. 최근에 처음 만들어 본 디저트 '레몬 포셋'처럼 말이죠. 레몬 포셋은 아주 간단한 과정만으로도 제가 딱 좋아하는 상큼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주어, 힘을 툭 빼고도 완벽한 행복을 누리게 해 주었거든요.

거창하게 에너지를 쏟아붓는 날과 가볍게 힘을 덜어내는 날들 사이에서 유연하게 균형을 맞추며, 저의 매일은 맛있는 냄새와 함께 아주 경쾌하게 굴러가는 중입니다.


🧩 흩어져 있던 6월의 사소한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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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바쁜 매일매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에게 힘이 되어주는 다정한 발견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가장 짜릿했던 기억은 단연 축구 응원이었는데요. 월드컵 시즌을 맞아 부푼 마음으로 중계 어플을 켰는데, '지원되지 않는 위치'라는 절망적인 알림창이 뜨더라고요. 눈앞이 캄캄해지던 찰나,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무실 동료 아구스토의 친절 덕분에 다 함께 모여 축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현지 동료들과 다 같이 본 유일한 한국 경기가 마침 통쾌했던 체코전이라 어찌나 다행이었는지요! 언어는 달라도 한마음으로 소리치고 기뻐하며 잊지 못할 저녁을 보냈습니다.

일상 속에서 오가는 소박한 마음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매일 함께 먹어 질릴 법도 한 점심시간은 정성껏 요리해 온 현지 반찬을 곁들여 먹으며 다시 따스함을 느끼기도 했고,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제 모습을 유심히 지켜봐준 누군가에게 목걸이 만들기 딱 좋은 조개들을 한 움큼 선물 받기도 했습니다. 저의 작은 행동과 시선을 놓치지 않고 다정한 호의로 되돌려주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결이 참 곱게 느껴졌어요.

처음 열렸던 한인 봉사단원 배드민턴 대회 역시 제게 풍성한 기억을 남겨주었습니다. 전통매듭을 배우시는 봉사단원 선생님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스크런치, 제 취향을 완벽히 간파하고 동료 쌤이 챙겨다 주신 하늘색 팔찌,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친해진 현지 아이들이 선물이라며 건네준 파우치까지.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해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기억들인데, 이렇게 한데 모아놓고 보니 모두 저의 6월을 단단하게 지탱해 준 눈부신 조각들이었네요. 거창한 서사가 없어도, 이 작고 따스한 조각들만으로도 저의 6월은 이미 충분히 특별하고 완벽했던 것 같습니다.


3주의 공백을 지나 가만히 꺼내어 본 6월의 조각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눈부셨습니다.

'무언가 특별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야만 해'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그제야 제 곁을 묵묵히 지켜주던 평범한 일상의 온기가 선명하게 느껴졌어요. 현지 사서들의 반짝이는 눈빛, 새로 도전해 본 레몬 포셋의 상큼함, 그리고 제 손에 쥐여진 작은 조개 껍데기들까지.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느라 멈춰 있기보다는, 가끔은 힘을 툭 빼고 조금 서툴더라도 매일의 기록을 계속해서 굴려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운 6월이었습니다.

여러분의 6월은 어떤 조각들로 채워졌나요? 혹시 무언가 대단한 하루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 손안에 있는 소중한 일상을 놓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러분의 식탁 위에 놓인 새로운 음식, 누군가 건네준 작은 호의,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의 색깔처럼 작고 다정한 조각들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는 충분히 반짝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든든한 핑계(?)를 힘입어, 멈추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남은 동티모르에서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주워 담아보려 합니다.

여름으로 들어가는 6월 마지막 자락,
앞으로 흘릴 땀들과 함께 무거운 강박은 흘려보내고 편안하고 따스한 일상들을 채워보아요 !

힘이 빠진만큼 흙먼지바람이 잔뜩 불어오는 6 끝자락의 딜리에서, 하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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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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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언니의 프로필 이미지

    보리언니

    1
    5일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수집의 프로필 이미지

    수집

    1
    1일 전

    진짜진짜진짜 좋다! 나는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하영이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찾아가는 과정을 글자로 읽는게 너무 좋다.. 말랑하고도 단단한 일상-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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