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ak ka lae ? "
동티모르 딜리에서 [하리 한 조각]의 네 번째 조각을 보내요.
그저 무심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당연한 곳에서 살다가, "오늘은 어때? 좋아?" 라는 물음을 마주하면 아주 잠깐 입술이 고장 나곤 합니다. 영어의 "How are you?"처럼 동티모르에서도 인사 뒤엔 늘 따라오는 문장이 있어요. 좋다는 뜻의 ‘Diak’, 아니라는 뜻의 ‘Lae’,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선택권을 건네는 ‘ka’. 직역하면 "좋아, 아니야?"라는 뜻의 이 문장은 오늘 당신의 기분이 어떤지를 조심스레 묻는 인사입니다.
저는 매번 "디악(Diak)"이라 대답하면서도 못내 망설여집니다. 사실 오늘 아침 산책이 정말 행복했다고, 혹은 아침 커피 맛이 써서 조금 속상했다고— 이런 속마음까지 구구절절 말해야할까 고민하거든요. 특히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마치 정성스러운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만 같아 괜히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한 주는 누군가 물어올 "오늘 어때?"라는 질문에 기분좋게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는 시간 같았습니다. 앞으로 도서관을 향해 나아갈 긴 여정을 위해, 미리 그 길들을 찬찬히 둘러보았거든요.
자, 저의 네 번째 조각을 함께 둘러보는 시간은 어떠신가요? 디악 까 라에 ?

📚 서툴지만 단단하게 내딛는, 우리들의 첫 출장기 !
첫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 저와 동료 단원쌤 단 둘이서요.
현장으로 둘만 가는 것은 처음이기에, 긴장 섞인 설렘을 가득 안고 현지 교통수단인 미끄롤렛에 몸을 실었는데요. 저희는 사서 역량 강화 교육을 위해 쓰일 '독서활동 질문지' 자료 조사를 목표로, 기분 좋은 두근거림과 함께 이전에 방문했던 도서관인 사나나 리딩룸(Xanana Reading Room)으로 향했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는 그동안 차근차근 배워온 테툼어를 조심스레 꺼내 보았는데요.
" 어린이 도서 번역을 위해 책들을 좀 봐도 될까요? "
" 인터넷 사용이 여기에서 가능한가요? "
" 혹시 제 짐을 가지고 어린이실에 들어가도 되나요? "
서툰 문장들이었지만, 저희의 진심을 알아준 도서관의 풍경은 무척이나 다정했어요. 한참 책을 고르며 작업에 몰입하던 중, 도서관 직원 한 분이 반갑게 어린이실로 들어와 저희에게 말을 걸어주셨어요. 저희가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이라는 걸 알게 된 그는 눈을 반짝이며 제안하셨죠.
" 나중에 우리 같이 움직이는 도서관(Mobile Biblioteka) 활동도 함께하자! 내가 툭툭 운전해줄게 ~ "
언제쯤 같이 가는 것이 좋을지 일정도 맞춰보고,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설명도 들으며 정말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활동에 열정이 가득한 직원분이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테툼어와 영어, 그리고 간간이 섞인 한국어까지. 세 나라의 언어가 뒤섞인 대화 속에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중간에 전기가 나가 잠시 후끈해진 어린이 도서관의 공기를 견디면서도, 마음만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성공적으로 목록 작성을 마친 뒤, 배가 고파서 쓰러지기 직전인 저와 동료단원쌤은 미끄롤렛을 타고 전날 다른 봉사단원분들께 추천받은 치킨집으로 향했습니다. 상큼한 레몬 소스가 듬뿍 뿌려진 구운 닭고기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내내 긴장했던 몸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고된 출장 뒤에 마주하는 늦은 점심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답니다.
이번 첫 출장은 제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일을 우호적으로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는 현지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앞으로 나아갈 10개월의 시간 동안, 이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기꺼이 나누고 또 낮은 마음으로 배워오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 1불로 건져 올린 보물은 과연 무엇일까 ?
지부장님으로부터 사무실 근처 서점이 폐업을 앞두고 세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칠 리 없죠. 저와 동료 단원 선생님은 가게 문이 닫히기 전 부리나케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주로 영어 서적이 가득한 그곳에서 헌책들은 얇은 것은 0.5불, 두꺼운 것도 2.5불 남짓한 가격에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수많은 책 사이를 한참이나 뒤적인 끝에, 저는 한 영국인의 여행 에세이 한 권을 품에 안고 나왔습니다. 제목은 《The many-coloured land》. 세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더 다양한 색들을 경험하고 싶다는 저의 진심과 꼭 맞아떨어지는 제목이었거든요.
사실 동티모르 딜리의 거리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마주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요. 책을 구하고 싶어도 파는 곳이 드물고, 글을 배우지 못한 이들이 많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적기에, 서점들이 거의 없는 것이 이곳의 현실입니다. 폐업을 앞둔 헌책방의 서가를 바라보며, 저는 이곳의 아이들을 떠올렸어요. 누군가에게는 1불이라는 가벼운 가격의 헌책일지 몰라도, 도서관이 아니면 책 구경조차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이 종이 뭉치 하나가 세상으로 나가는 창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제 시선이 오랫동안 멈춘 곳은 서점 한구석에 붙어있던 문장이었는데요.
'Read books, cultivate the greatness'
책을 읽고 내면의 위대함을 함양하라는 그 짧은 격언이, 마치 저에게는 숙제처럼 건네지듯 마음 깊숙이 박혔습니다. 책이 누구에게나 공기처럼 당연하게 닿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이곳의 아이들도 저마다의 가슴 속에 숨겨진 위대함을 조금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서점이 사라져가는 풍경은 역설적으로 제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 즉 아이들과 책 사이의 끊어진 다리를 놓는 일이자 도서관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듯 했어요.
그래서 저는 1불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행운을 건져 올리며, 다시 한번 낮은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저를 통해 도서관의 책들이 언젠가 아이들의 손에 닿아 성장의 기회가 되고, 꿈을 꾸는 도구가 되기를 말이죠. 비록 지금은 헌책방의 먼지 쌓인 책 한 권을 고르는 작은 손길이지만, 이 경험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전해줄 소중한 이야기의 서가를 차곡차곡 채워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보아요.
🧑🍳 그녀는 요리사가 되고파

요즘 제 안에서 예상치 못한 욕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는데요. 바로 ‘요리’에 대한 열정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저 먹고 싶은 것 몇 번 만들어 먹는 정도였고, 한 음식에 꽂히면 그것만 주구장창 먹던 제가 이곳에서는 매일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선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데요. 수요일마다 직접 요리한 반찬을 현지 직원 친구들과 나눠 먹기로 (혼자만의) 약속을 했거든요. 사실은 그냥 속으로 한 다짐에 가깝습니다. 아무튼 ! 화요일 저녁이면 어떤 메뉴를 가져갈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하는데요. 함께 온 동료 선생님의 수준급 요리 실력을 보니, ‘아무거나’ 해가면 안 되겠다는 기분 좋은 자극도 생기더라고요. 무엇이든 잘 먹는 제 식성에만 맞추기보다, 친구들에게 진짜 한국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랄까요? 이번 주엔 참기름을 넣어 고소한 계란말이를 해갔는데, 다행히 친구들이 "맛있다"며 깨끗이 비워주어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조금 더 절박한데요. 제 디저트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죠! 한국에선 휘낭시에가 먹고 싶으면 연희동으로, 티라미수는 망원동으로, 케이크는 성수동으로... 발길 닿는 곳마다 맛있는 디저트가 저를 반겨주었지만, 이곳 딜리에서는 모든 것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서 서로서로 나눠 먹는것이 훨씬 가성비도 좋은 것 같기 때문에, 먹고 싶은 마음이 곧 요리의 동력이 되는 셈이죠. 우선 이번주에는 티라미수를 시도해보았는데요. 설탕이 부족해서 아주 대차게 ! 저당 티라미수가 완성되었습니다. 네, 별로 맛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다음엔 더 맛있게 시도해보겠다는 다짐을 안고 주말을 보내게 되었어요 ~

이곳에서는 요리사를 ‘떼인 나인(Tein-na’in)’이라고 부릅니다. 진정한 떼인 나인이 되는 그날까지, 저는 매일 주방에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앞으로 나아갈 시간들을 위해, 먼저 스스로의 마음을 정성껏 준비하는 한주를 보냈어요!
도서 목록을 갈무리하고, 헌책방의 먼지 쌓인 서가에서 보물 같은 책들을 골라내며,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읽을 내일을 채비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손에 쥐여질 책 한 권 한 권에, 기꺼이 저의 진심을 담아낼 힘들을 마련해 보겠다고 다짐합니다.
가끔 몸이 고되고 준비의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날이 오면, 다시 이 기록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무언가를 준비해내던 지금의 설렘을 가만히 되짚으며 기틀을 닦아볼게요.
매일 아침, 우리가 함께 채워갈 서가의 작은 조각들로 만나요!
저도 여러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내일을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딜리의 설레는 채비를 담아, 하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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