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tardi ! 동티모르 딜리에서 조금 늦은 여섯번째 조각을 보내요.
Bondia가 아침의 싱그러운 인사라면, Botardi는 오후의 뜨거운 안부랍니다. 해가 정수리에 닿아 가장 뜨거워지는 오후가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Botardi !"를 건네며 하루 속 다음 장을 열어가곤 해요.
저는 이 뜨거운 오후의 인사 속에, 이곳 생활의 지혜인 '유연함'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는 한주를 보냈어요. 오전의 계획이 예기치 못한 변수로 조금 헝클어지더라도, 불평하기보다 뜨거운 볕을 피해 잠시 숨을 고르고, 상황에 맞춰 다시 길을 나서는 방식 말이에요. 완벽하게 짜인 시간표보다, 바뀐 오후의 인사말처럼 변화하는 온도에 맞춰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굽힐 줄 아는 힘이 이곳에선 더 필요하다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주는 계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종종 마주했어요. 하지만 그 틈새에서 아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를 발견하고, 꼬여버린 일정을 현실에 맞춰 다시 조립하며 오히려 더 생생한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계획이 수정될 때마다 마음은 조금 출렁거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흘러갔던 일주일이었어요.
딱딱하게 굳어있던 제 생각들을 말랑하게 풀어내며 보낸 이번 주의 조각들. 굳이 곧게 뻗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길을 만드는 바람처럼 유연하게 춤추듯 보낸 일주일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저와 함께 이번 주에 펼쳐진 유연한 조각들을 살펴볼 준비되셨나요?

🚸 일방향의 선을 넘어, 함께하는 풍경으로
이번 주는 책을 전달하기 위해 '따시똘루(Tasi Tolu)' 마을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어요. '세 개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염호를 곁에 두고 있어 수자원은 다른 곳에 비해 풍부하지만, 우기면 침수 피해를 겪기도 하는 등 지리적 양면성이 뚜렷한 곳이에요. 이 같은 기후적·지리적 취약성 속에서도 마을 아이들의 배움터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800명이라는 학생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간, 증축 중인 공사 현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물리적인 환경은 열악했지만, 제가 만난 도서관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책장에는 손때 묻은 책들이 가득했고, 아이들의 왕래가 잦아 낡아버린 교구들에서 이곳이 얼마나 치열하고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었어요. 도서관이 외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쇼윈도 같은 공간이 아니라, 현지 선생님들의 고민과 노력이 촘촘하게 엮여 아이들을 품어내고 있는 도서관임이 보였어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도서관의 원칙을 생생하게 보여주듯 말이에요.
저희가 방문한 시간, 마침 캠프 활동 중이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앞마당을 뛰노는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가 되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서, 제가 이곳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이들이 이미 얼마나 훌륭한 교육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배워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현지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태도는, 저에게 일방향적인 배움과 시혜적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큰 가르침을 주었어요.
그동안 저는 저도 모르게 '교육을 제공하는 자'의 입장에서만 도서관을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아직 배워야할 것이 산더미인, 국제개발분야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저의 역할을 규정짓기보다, 이곳 선생님들이 이미 잘 쌓아온 현장의 역량에 어떤 전문적 가치를 더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려 합니다. '가르치러 온 사람'이 아닌 '함께 배우고 잇는 사람'으로서, 이 소중한 배움의 공간에 어떤 지속 가능한 변화를 선물할 수 있을지!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따시똘루의 비포장 도로를 나서며 그 답을 천천히 찾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 고장난 자동차의 멈춘 시동 뒤에 찾아온 뜻밖의,
이번주의 또 다른 출장지는 해발 1,200m 고산지대인 '아일레우(Aileu)'였어요.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 시간 내내 달려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라, 출발 전부터 지부장님과 팀장님의 세심한 걱정이 이어졌습니다. 산간 지역에 대한 기대와 함께, 험한 길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반반 섞인 채 길을 나섰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목적지인 교육부 앞에 도착했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
주차된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더니, 도서관으로 향해야하는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어요. 당황스러운 기운이 감돌자 교육부 직원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차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는데요. 팀장님께서 꼼꼼하게 보신 결과 진단 결과는 기어 변속 케이블의 이상. 당초 계획은 아일레우의 성당 카톨릭 유치원 도서관관에서 이야기도 나누며 여유롭게 책을 전달하는 것이었지만,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결국 저희는 현장을 수습하고, 가져온 책들만 안전하게 전달한 뒤 서둘러 하산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차가 멈췄다는 사실만으로도 덜컥 겁이 났어요. '이 산골에서 며칠을 발이 묶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하지만 그 순간, 저는 곁에 계신 지부장님과 팀장님의 모습에서 '현장의 유연함'이라는 값진 교본을 보았는데요. 당황할 법한 상황에서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그분들의 태도는 저의 불안을 순식간에 잔잔한 평온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결국 저희는 안전하게 딜리로 복귀했고, 차 역시 말끔히 수리되었어요. 이번 출장길을 통해 깨달은 것은, 현장에서의 업무는 결코 계획한 대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정은 틀어지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은 늘 발생하지만, 중요한 것은 '계획대로 되었는가'가 아니라 '변수를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가'라는 사실을요. 멈춰버린 자동차 덕분에, 저는 오늘도 딜리에서의 삶을 조금 더 유연하게 헤쳐 나갈 단단한 근육 하나를 얻었습니다.

🚿 소음과 웃음 사이, 사무실의 유연한 리듬
사무실 일상 역시 정적인 책상 너머로 유연하게 흐릅니다. 쉼 없이 라벨을 자르던 작업이 끝나고, 이제는 새로운 도서 질문지 제작이라는 더 고민 깊은 업무에 들어갔는데요. 7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며 집중하는 시간 속에서도, 사무실의 공기는 매 순간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곤 해요.
창밖에서는 사무실 앞 차도와 인도를 넓히는 공사가 한창인데요. 하루 종일 이어지는 포크레인의 묵직한 소음이 때로는 업무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소리조차 이곳의 일상적인 배경음악처럼 느껴집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무가 뜯겨 나가는 장면을 다 함께 구경하는 진풍경을 창 너머로 지켜보며, 이 곳은 이렇게 현재진행형으로 변화하고 있구나 싶어요.
실내의 공기는 더 다정한데요. 너무 더운 오후,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맞은편 현지 직원 아구스토가 장난 섞인 말을 건네며 처진 분위기를 띄워주곤 해요. 사랑 많은 동료 선생님이 슥슥 그려주는 제 얼굴을 감상하기도 하고, 비슷한 음악 취향에 기뻐하며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기도 하죠. 아침마다 부랴부랴 외운 테툼어 단어를 결국 절반 이상 틀려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해도, 우리는 서로를 보며 깔깔 웃어버리고 말아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긴장감보다는, 틀리면 다시 웃고 또 배우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가짐.
이것이 이곳에서 제가 배운 사무실의 유연함인데요 !
팽팽한 긴장감과 느슨한 웃음이야말로 제가 이곳에서 찾은 가장 유연한 일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늦어버린 오후, 보따르디(Botardi)의 시간 속에서 기꺼이 흐르며 보낸 한 주를 완성했어요.
따시똘루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마주할 때도, 아일레우에서 멈춰버린 자동차를 마주했을 때도- 저는 억지로 길을 내기보다 그 굽은 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부드러운 물결이 되곤 했는데요. 익숙한 계획을 내려놓고 현장의 호흡에 제 마음을 맞추니, 세상은 온통 제가 예상치 못한 다정한 풍경들로 가득하더라고요.
가끔은 또다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휘청이는 날도 오겠지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여섯 번째 조각의 기록을 꺼내 보려 합니다. 멈춘 자리에서도 주변을 둘러보는 법, 그리고 변수 속에서도 동료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유연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흐름으로 하루를 채워가고 계신가요?
단단하게 버티는 용기만큼이나, 때로는 부드럽게 굽힐 줄 아는 여러분의 모든 '유연함'을 진심으로 응원해요. 굳이 곧게 뻗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길을 만드는 바람처럼, 우리 함께 유연하게 춤추듯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가 봐요.
동티모르의 뜨거운 오후를 담아, 하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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