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8 꾸준하리!

진짜 꾸준함의 모양을 찾아서 ~

2026.05.18 | 조회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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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dia!

조금은 오랜만에, 동티모르 딜리에서 여덟 번째 조각을 띄워 보냅니다.

지난 3주간 제 일상에는 참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낯선 변수들을 마주하며 어느 정도 적응한 것만 같은 착각 속 이곳에서의 시간을 정신없이보내다 보니, 문득 한 가지 뼈저린 깨달음이 찾아오더라고요. ‘아, 무언가를 꾸준히 지켜낸다는 건 정말이지 눈물겹게 어려운 일이구나.’ 하고 말이에요.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저에게 '꾸준함'의 모양은 꽤 명확하고 단단했습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해와 함께 산을 오르고, 매일 같은 시간에 테툼어 단어 시험을 보고, 정해진 분량의 번역 도서를 라벨을 잘라내고 붙이는 것. 흔들림 없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견고한 성실함만이 꾸준함의 유일한 정답이라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변수투성이인 동티모르의 일상 속에서 그 각진 기준들이 이리저리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의 삶과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환경이 변했더라도 나에겐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이 보이는 불변의 부분들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느끼는 과정 속,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날들이 생겨나자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죠. '진짜 꾸준함의 모양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진짜 꾸준함이란 완벽하게 해내는 각진 모양이 아니라, 매일 아침의 라떼를 내리기 위해 미리 냉장고에 우유를 사다 두고, 원두를 사두는 일처럼 소박하고 둥근 모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 똑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잠시 궤도를 이탈해 숨을 고르더라도,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와 기어코 내 몫의 오늘을 살아내는 그 유연한 회복 탄력성 말이에요. 완벽한 성실함이라는 강박을 내려놓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유연한 꾸준함의 가치를 배우며 보낸 시간들이었던 것 같네요.

잠시 쉬어갔지만 멈추지 않고 다시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온 여덟 번째 조각,
제가 발견한 새로운 꾸준함의 모양들을 저와 함께 살펴볼 준비 되셨나요?

 


🏊‍♂️ 책이라는 창문 너머 바다를 헤엄치는 아이들

 'EAT' DILI. 마치 딜리(Dili)를 통째로 먹어버릴 것만 같은 재미있는 약자를 가진 곳, 따시똘루에 위치한 알파테라 초등학교 (Escola Alfa Terra) 로 특별한 독서 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에어컨 하나 없는 도서관의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도,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환한 웃음과 씩씩한 에너지는 그 열기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뜨거웠는데요. 덕분에 장장 3시간이라는 긴 활동을 지치는 기색 하나 없이 에너지 넘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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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활동은 선배 단원님께서 정성껏 준비해주신 '바다 보호'를 주제로 한 동화책 구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도서관을 채우는 동안, 저는 뒤에 서서 아이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는데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잔뜩 집중한 동그란 뒤통수와 반짝이는 눈빛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동화책을 다 읽고 난 뒤, 아이들은 각자의 자그마한 손으로 달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제법 고학년 친구들이라 그런지,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직접 고민하고 꾹꾹 눌러쓴 내용들은 저희 단원들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정도로 기특하고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활동 시간, 예상치 못한 아주 유쾌한 이벤트가 벌어졌는데요 !

달력을 완성한 친구들이 저마다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레 들고 오더니, 덜컥 자신의 이름 옆에 선생님들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렇게 아이들의 맑은 호기심으로 시작된 '뜻밖의 사인회'는 무려 30분이나 이어졌습니다. 종이 한편에 모든 선생님의 이름과 사인을 소중하게 받아 든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리로 돌아가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름을 꾹꾹 눌러 적어주던 그 따뜻했던 30분의 기억은 제 마음속에 아주 오래도록 머물 것 같아요.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있는 물리적인 세상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반짝이는 눈으로 탐험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며, 저는 제가 왜 이곳 동티모르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선명하게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남아 있었고, '나 역시 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다정한 희망 하나쯤은 건넬 수 있겠구나' 하는 벅찬 확신이 차올랐습니다. 손때가 새까맣게 묻은 책을 소중히 쥐고 자신의 세계를 기꺼이 확장해 나가는 아이들. 살면서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바다의 고래와 상어, 그리고 문어에게 책을 통해 서슴없이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이 아름다운 아이들처럼 말이에요.

이렇게 오늘도 딜리의 낡은 도서관 안에서는, 책을 징검다리 삼아 더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아이들의 씩씩한 모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궤도를 도는 일상 속, 반짝이는 변수들을 껴안으며

긴 3주의 시간동안 사무실은 계속해서 돌아갔습니다. 지난 3주의 시간은 일상이라는 견고한 궤도를 부지런히 돌면서도,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별똥별 같은 이벤트들이 쏟아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는데요.

가장 큰 변화는 사무실의 공기가 눈에 띄게 더욱 다정해졌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도 부지런히 현지어(테툼어) 수업을 받은 덕분일까요? 이제는 직원들과 무리 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대화가 통하는 순간이 잦아졌습니다. 가끔은 '나 이제 진짜 동티모르 사람이 다 되었나?' 하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죠.

우리의 유대감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준 건 매주 수요일의 만찬과 점심시간의 작은 유희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다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제는 현지 직원들이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세심한 취향까지 파악하게 되었거든요. 친구들은 갈비탕을 정말 좋아하더라구요.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에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못지않은 동료 선생님의 주도하에 '007빵', '손병호게임' 같은 한국의 게임을 즐기며 사무실을 커다란 웃음바다로 만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동티모르의 얄궂지만 잦은 불청객, 정전이 찾아온 날에도 우리의 끈끈함은 빛을 발했는데요. 에어컨마저 멈춰버려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 찼지만, 저희는 바람이 통하는 커다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캄캄한 사무실 안, 작은 불빛에 의지해 다 같이 작업을 이어나가는 풍경은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묘한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불평 대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업무를 해내는 그 시간, 우리는 직장 동료를 넘어 정말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고 있음을 뭉클하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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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단단해진 일상 위로, 바다를 건너온 반가운 손님도 도착했습니다. 지난 3월, 한국에서 출발한 컨테이너가 드디어 동티모르에 닿은 것인데요. 새로운 책들이 박스에서 쏟아져 나오자 사무실은 그야말로 라벨 작업의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현지 직원들은 라벨들을 책에 맞추어 붙이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고, 저희는 테툼어로 번역된 문장들을 책에 입히기 위한 라벨 디자인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애정과 섬세함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원본 동화책의 한글이 가진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테툼어 폰트의 모양과 텍스트의 느낌, 배경 색상까지 완벽하게 구현해야 했거든요. 텍스트가 길고 디자인이 까다로운 책을 만나면 라벨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3일을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색감을 맞추다 보면 '내가 사서인지, 디자이너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찾아왔지만, 마침내 현지어로 새 옷을 입은 동화책을 마주할 때면 마치 제가 직접 책을 써낸 작가가 된 것 마냥 가슴 벅찬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특별한 외부의 인연들도 이 3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는데요. 도서관 사업을 함께하는 제주도청의 담당자분들과 대표님께서 모니터링을 위해 동티모르 사무실을 방문해 주셨거든요.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실무적인 흐름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멀리서 찾아와 건네주신 응원의 말씀들은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 커다란 동력이 되기도 했어요.

지난 금요일엔, 코이카(KOICA)에서 주최한 '한국 문화의 날' 행사는 이 길었던 3주의 완벽한 마침표가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현지 직원들과 다 함께 참석해 한국의 전통 놀이를 직접 체험하고 다채로운 공연을 관람하며 정신없이 웃고 떠들었는데요. 국경을 넘어 문화를 매개로 하나가 되었던 그 시간 덕분에, 저희는 또다시 다음 주를 씩씩하게 살아낼 에너지를 가득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 우리가 서로의 든든한 섬이 되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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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 생활에서 문득문득 밀려오는 한국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옅게 만들어주는 건, 다름 아닌 곁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낯선 동티모르 딜리에서의 일상이 이토록 든든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제나 커다란 힘이 되어주는 좋은 한국 봉사단원 동료분들께서 곁에 함께해주시기 때문이겠죠. 서로에게 기대어 보낸 다정했던 시간의 조각들을 나누어 봅니다.

5월의 첫 주, 황금 같은 휴일을 맞아 단원 선생님들과 함께 아따우로(Atauro)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 스노클링이었는데요. 사실 발이 닿지 않는 깊고 푸른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곁에 있던 동료 선생님께서 섬세한 배려로 이끌어주시고 다정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덕분에 마침내 용기를 내어 바다로 뛰어들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마주한 아따우로의 바닷속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다채로운 물고기들과 눈을 맞추며 두려움을 환희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또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늦은 저녁에, 노을이 내려앉은 해변가에서의 시간은 한 편의 청춘 영화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뛰놀던 아따우로 아이들에게 악뮤(AKMU)의 '소문의 낙원' 안무를 알려주고, 바다를 배경 삼아 다 함께 춤을 추며 영상으로 남겼던 순간은 그 자체로 완벽한 낙원이었죠.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팔찌와 목걸이를 골라주며 웃음꽃을 피웠던 시간들은 아따우로가 선물해 준 또 하나의 눈부신 추억이 되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아주 반가운 얼굴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동티모르에 함께 파견된 이번 기수 단원 중, 유일하게 홀로 먼 로스팔로스(Lospalos) 지역으로 가셨던 선생님께서 출장 차 딜리에 방문하셨거든요. 오랜만에 마주한 애틋한 동료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다는 소중한 마음의 단원쌤들과 함께 저희는 한달음에 달려가 딜리의 맛집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가 맛있는 저녁을 나누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도 헤어짐이 못내 아쉬웠던 저희는, 마트에 들러 양손 무겁게 쇼핑을 한 후 한 단원 선생님의 집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간 밀린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타지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끈끈한 위로가 되는지 깊이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감사한 PAO 선생님 덕분에, 모처럼 동티모르에서 진한 음악의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포르투갈 문화원에서 열린 'Hasoru malu'라는 야외 콘서트에 함께 다녀왔거든요. 시원한 밤공기 속에서 딜리 특유의 리듬과 현지 음악들을 실컷 즐기며, 팽팽했던 일상의 긴장을 부드러운 음악으로 씻어내는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한국과 멀리 떨어진 낯선 동티모르에서 떄로는 흔들리고 지치는 날도 있지만, 이렇게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기꺼이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는 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오늘도 씩씩하게 딜리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오래간 뉴스레터가 발행되지 않자, 저를 꾸준히 응원해 주시는 한 독자분께서 제게 사진 한 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완벽한 직선만이 꾸준함이 아니라, 굽이치고 때론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것 역시 '꾸준함의 진짜 모습'이라는 다정한 위로와 함께요. 그 따뜻한 응원과 사진에 힘입어, 다시 씩씩하게 돌아오게 된 [하리 한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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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직선이 아니어도 괜찮은, 나만의 둥글고 유연한 꾸준함을 찾아가는 3주를 보냈어요.

캄캄한 정전 속에서 온기를 나누던 커다란 책상, 까다로운 라벨 작업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 깊은 바다로 뛰어들 수 있게 손을 내어준 다정한 동료들, 그리고 바다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까지. 처음엔 그저 '매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지쳐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가끔 멈춰 서거나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기어코 내 몫의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현장이 가르쳐준 진짜 꾸준함이라는 사실을요.

가끔은 또다시 뜻대로 되지 않는 변수들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거나 멈칫하는 날도 오겠지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여덟 번째 조각의 기록과,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다정한 응원을 꺼내 보려 합니다. 굳이 매일 완벽하지 않아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동료들과 웃으며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궤도를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모양의 꾸준함으로 하루를 채워가고 계신가요?

매일 완벽한 성과를 내지 못해도 괜찮아요. 삐뚤빼뚤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서투르지만 기어코 나만의 궤도를 돌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여러분의 모든 '유연한 꾸준함'을 진심으로 응원해요.

굽이치면서도 끝내 앞으로 흘러가는 동티모르의 파도를 담아, 하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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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

    0
    1일 전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근데 하영이의 매순간은 좋은 것들로 채워지고, 값진 경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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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line

    0
    약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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