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7 적응하리 !

이곳의 온도와 내 마음의 온도를 따뜻하게 섞는 중 ~

2026.04.27 | 조회 145 |
1
|

"Hau Ema Korea~"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인인 제가, 동티모르 딜리에서 일곱 번째 조각을 보내요.

'나'라는 뜻의 떼뚠어 'Hau'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Ema'를 합쳐서 말하게 되는, 나는 한국인이라는 문장은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다 보면 참 많이 내뱉게 되는 문장입니다. 처음엔 저를 향해 어디나라 사람인지 물어보는 질문이 왠지 쑥스러워 고개를 살짝 숙이곤 했는데요. 어딘가 나를 '이방인'으로 구분 짓는 듯한 거리감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7주가 지난 지금, 이제는 어디나라 사람인지 묻는 질문이 들리면 자연스럽게 웃으며 현지인 같은 발음을 선보여봅니다. 어느새 이 문장은 제 이름표처럼 꽤 익숙한 것이 되었어요.

문득, 진정한 적응이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곳 동티모르 사람이 되기 위해 'Ema Timor' 를 꿈꾸는 것일까요? 확실히 그건 아니더라고요. 나는 영원히 'Ema Korea'로 살아가겠지만, 그 이방인이라는 경계를 억지로 지우려 애쓰기보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로 이 땅의 풍경 속에 더 깊숙이 스며드는 것. 그 거리감을 인정하고, 이방인으로서 이곳의 삶을 기꺼이 안아주는 것이 진짜 적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번 주는 오히려 이방인과 현지인의 경계에서 고민하며, '이방인인 내가 여기서 무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요. 익숙한 한국의 맛을 찾으면서도, 현지의 동료들과 비빔밥을 비비며 문화를 나누는 시간까지, 모든 것이 조금 더 편안하고 다정해졌습니다.

그저 동일하게 녹아드는 삶을 꿈꾸는 것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이곳의 온도와 저의 온도를 섞어나가며 뿌리를 내리고자 즐겁게 살아내었던 일주일이었어요.

서툴지만 이곳의 온도에 맞추어 서서히 따듯해지고 있는 저의 일곱 번째 조각, 저와 함께 살펴볼 준비되셨나요?

 

첨부 이미지

💗 아따우로에서 접은 하트, 이방인 선생님의 적응기

이번 주는 선배 단원님, 동료 선생님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아따우로(Atauro) 섬으로 출장을 다녀왔어요. 설렘과 긴장을 안고 도착한 항구에서, 저희는 '앙구나'라 불리는 오픈형 트럭 뒷자리에 몸을 실었는데요. 덜컹거리는 트럭 위로 아따우로의 먼지바람을 잔뜩 맞으며 도착한 비켈리 마을 도서관. 그곳에서 저희의 첫 번째 활동은 ‘바다야 사랑해’라는 책을 활용한 환경 교육 활동이었어요. 선배 단원님이 책을 읽어주고 바다 생물을 붙이는 캘린더 활동을 진행하시는 동안, 저는 곁에서 아이들을 돕고 도서관 운영자인 마나들과 소통하며 현장의 온기를 익혔습니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마나들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죠.

예상치 못했던 문제는 둘째 날 발생했는데요. 본래는 더 많은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자 새로운 친구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려 했으나, 소통에 문제가 있어 어제 왔던 친구들 몇명이 다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저희는 빠르게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해나갔어요. 선배 단원님은 발 빠르게 ‘하트’와 관련된 동화책을 찾아내셨고, 저는 급하게 어릴 적 배웠던 ‘하트 팔찌 종이접기’를 복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계속해서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어떻게 이 복잡한 종이접기를 아이들에게 설명하지?’ 아직 떼뚠어가 그정도로 유창하지는 못하기에, 동료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 한참이나 머릿속으로 대본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때 다행히도 구세주처럼 마나가 다가왔습니다. 마나는 아따우로 섬의 사투리를 섞어 아이들에게 제 서툰 설명을 통역해 주었고, 덕분에 아이들은 금세 하트 팔찌를 완성해 손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첨부 이미지

모두가 하트 팔찌를 차고 기념사진을 찍던 순간, 문득 제 팔목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이들과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가진 저 혼자만 묘하게 이질적으로 튀어 보였거든요. 순간 ‘아, 나는 완전히 섞이지 못했구나’ 하는 서글픔이 스치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그러면 뭐 어때!’ 저는 이곳에 똑같이 섞이러 온 것이 아니라, ‘이방인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연결되러 온 것이니까요. 활동이 끝나고 헤어질 때까지 제 이름을 잊지 않으려 공책에 적어가는 아이들, 종이접기 방법을 잊어버릴까 봐 다시 배우러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며 확신했습니다. 내가 낯선 색깔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하트를 접어준 다정한 선생님’으로 충분히 각인되었음을요.

계획이 틀어지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다함께 협동하여 유연하게 대처하고, 이방인이라는 제 자리를 인정하며 아이들과 깊게 소통했던 이번 출장은 저에게 아주 값진 적응의 기록이 되었어요. 앞으로의 도서관 활동을 고민하고 계획할 때, 나아갈 방향의 길잡이도 되어주었답니다 ! 


⛴️ 경계의 맛 ; 티모르인과 한국인, 그 사이 어디쯤

아따우로 섬을 뒤로하고 딜리로 향하는 길, 저희는 에어컨도 없는 낡은 배 ‘나끄로마(Nakroma)’호에 몸을 실었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견디기 힘들었던 2시간 반의 더운 뱃길. 하지만 그날 창문으로 솔솔 들어오는 습한 바닷바람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 그리고 앞에서 자유롭게 먹고있는 사람들의 컵라면 맛이 궁금해지는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나, 동티모르의 속도에 조금은 길들고 있구나.’ 뜨거운 햇살을 불평하기보다 바람의 서늘함을 찾아내는 여유,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발견한 첫 번째 적응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평온함도 잠시, 딜리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현실의 파도가 밀려왔는데요. 퇴근 시간인 저녁 6시, 딜리의 도로는 미끄롤렛(현지 버스)을 잡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미 만석인 미끄롤렛들 사이에서 저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길을 잃어가고 있었죠. 그때, 한 친절한 아저씨께서 저희를 발견하고 맨 앞좌석을 흔쾌히 내어주셨습니다. 하마터면 더위에 지쳐 터벅터벅 걸어갈 뻔했던 저희를, '안쓰러운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선뜻 손을 내밀어주신 덕분에 저희는 무사히 식당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요. 좌석을 양보받은 미끄롤렛 안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한국인"이라 답할 때, 왠지 모를 쑥스러움이 밀려왔어요. 어쩌면 '완벽한 현지인'으로 보이고 싶었던 마음과, '티를 낼 수밖에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식당에 도착해 마주한 김치찌개는 그야말로 FURAK (아름답다는 뜻의 떼뚬어) 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습니다. 두 달 만에 만난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 한 숟갈에, 꽁꽁 얼어있던 한국인의 얼이 단숨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어요. 식당 안은 익숙한 공기로 가득했고, 비로소 편안해진 마음을 얻을 수 있었어요.

첨부 이미지

티모르인이 되고 싶은 마음과 한국인으로서의 본능, 그 사이에서 매일 갈팡질팡하는 저의 모습. 하지만 돌이켜보니 이 갈등이야말로 가장 '적응'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억지로 나를 지우고 티모르인이 되려 애쓰는 대신, 한국인인 나를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온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이방인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의 풍경을 즐길 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저는 오늘 아주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 우리들의 비빔밥, 다름이 모여 '우리'가 되다

 이번주 금요일 점심은 우리 사무실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어요. 일주일간의 긴장을 내려놓고, 조금 특별하게,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랜덤 비빔밥' 파티를 열었습니다. 제 집이 사무실 바로 옆이라는 작은 이점을 살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한가득 가져갔어요. 한국인에게 '갓 지은 밥'이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탄수화물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환대이자 마음의 중심이니까요.

식탁 위에는 저마다의 비밀을 담은 반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는데요. 카사바 잎을 볶아 만든 현지식 반찬부터 양파와 당근 볶음, 고소한 버섯구이, 입맛을 돋우는 가지무침과 햄, 싱싱한 상추, 삼겹살 볶음,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계란후라이와 숙주나물까지. 그야말로 '동티모르와 한국의 미식 대통합'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비빔밥의 핵심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고추참치'였죠. 현지 직원들에게 아직 고추장은 낯설고 매울 수 있겠다는 배려에서 고추장 대신 넣게 된 고추참치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어요. 매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고추참치가 베이스가 되어, 현지의 채소들과 우리식 볶음 반찬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든든한 접착제가 되어주었어요.

첨부 이미지

양푼에 모든 재료를 넣고 숟가락으로 힘차게 섞기 시작했습니다. 양념이 하얀 밥알을 물들이고, 서로 다른 식감을 가진 재료들이 엉키며 비로소 '비빔밥'이라는 하나의 요리로 완성되는 그 과정은 너무 아름다웠어요. 누가 더 돋보일 것도 없이, 서로의 색을 조금씩 내어주며 맛의 균형을 맞추는 모습. 저는 그 순간 비빔밥 속에서 제가 그토록 고민하던 '적응'의 정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적응이란,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이곳의 색으로 완전히 덧칠하는 것이 아니더랍니다. 나의 색깔(한국의 맛)과 그들의 색깔(현지의 재료)이 만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우리만의 조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적응이었음을 깨달았어요. 한 그릇 가득 담긴 비빔밥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웃음꽃이 피어날 때, 비로소 저는 동료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 속에 깊숙이 안착하고 있음을 느꼈어요. 현지 친구들과의 거리가 물리적인 밥상을 넘어 마음의 거리까지 좁혀지는 기분. 국경도, 문화도 비빔밥 한 그릇 앞에서는 모두 '맛있다'는 언어로 통일되었는데요. 이렇게 저는 오늘도 배불리, 그리고 마음 따뜻하게 이방인에서 현지 일상의 일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여러분의 오늘 점심은 어떤 맛인가요?
혹시 낯선 상황과 익숙한 재료를 섞어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


나는 한국인이라는 짧은 문장을 건네며 기꺼이 이방인으로 머무는, 적응의 한 주를 보냈어요.

아따우로 섬에서 아이들과 하트 팔찌를 접으며 느꼈던 낯섦도, 꽉 찬 미끄롤렛 안에서 건네받은 따뜻한 자리도,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섞어 먹던 비빔밥의 조화까지. 처음엔 그저 '티모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조급함에 갈팡질팡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완벽한 현지인이 되려 애쓰기보다, '한국인'이라는 고유한 색깔을 소중히 쥔 채로 이 땅의 일상에 다정하게 스며드는 법을요.

가끔은 또 다시 이방인이라는 경계 앞에서 마음이 멈칫하는 날도 오겠지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일곱 번째 조각의 기록을 꺼내 보려 합니다. 굳이 나를 지우지 않아도, 서로 다른 재료들이 모여 비빔밥이라는 하나의 맛을 내듯,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섞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곳에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이름표를 달고 어떤 풍경 속에 서 계신가요?

완벽하게 녹아들지 않아도 괜찮아요. 낯선 곳에서 씩씩하게, 때로는 조금 서툴게 나만의 속도로 길을 내고 있는 여러분의 모든 '적응'을 진심으로 응원해요.

이방인이기에 더 뜨거울 수 있는 동티모르의 따스한 온도를 담아, 하영 드림.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하리 한 조각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수집의 프로필 이미지

    수집

    0
    22일 전

    한 조각, 한 조각 흘려보내지 않고 꾹꾹 눌러담는 하영이의 따뜻한 시선이 넘 좋다!

    ㄴ 답글

다른 뉴스레터

© 2026 하리 한 조각

동티모르에서 NGO 봉사단원이 보내는 매주의 한 조각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