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n fresku (아닌 프레스꾸)"
떼뚠어로 '신선한 바람', 혹은 '맑은 공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방 안에 고여 있던 공기가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훅 밀려 들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죠. 마치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때 얼굴로 직접 맞이할 수 있는 공기처럼요.
동티모르는 지금 건기를 지나가고 있는데요. 이 시기엔 한국의 가을처럼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어옵니다. 아마 한국의 여름보다 살만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가끔은 이 시원한 바람이 제 마음에 불어오는 것이 간절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낯선 곳에서 나만의 루틴을 단단하게 세워가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다정함을 촘촘히 나누는 시간들은 참 소중하지만, 매일 같은 쳇바퀴를 굴리다 보면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의 공기가 조금 무겁고 눅눅해지기도 하거든요. 그럴 땐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묵은 숨을 비워낸 뒤 맑은 새 숨을 들이마시는 '환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는 정성껏 차려낸 나를 위한 식탁 위에서, 사무실 친구들과 떠난 푸른 섬 아따우로에서, 그리고 씩씩하게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는 작은 생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 안의 공기를 아주 산뜻하게 환기해 낸 한 주였습니다. 저와 함께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기분 좋은 새 숨을 들이마셔 보실래요?
🍴나를 아주 귀하게 대접하는 식탁, 일상의 공기를 바꾸다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무겁고 눅눅해지는 때가 찾아옵니다.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오래간 꽉 닫혀있는 방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어쩔 수 없이 갇혀있는 공기가 고이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죠. 그럴 때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듯, 내 안의 고여 있는 공기를 맑게 환기해 줄 무언가가 절실해집니다.
이번 주, 지쳐있던 저를 위한 가장 완벽한 환기법은 다름 아닌 '나를 위해 가장 귀한 음식을 차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친절한 쌤께 물려받은 유리병에는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새콤달콤한 피클을 정성껏 담그고, 시원한 소바를 한 그릇 말아냈습니다. 특히 이 소바에는 차를 맑게 우려내고 남은 부드러운 어린 녹차잎을 듬뿍 곁들였는데요. 찻잎을 음식에 넣어 먹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구운 야채들과 함께 먹으면 스근스근 향이 올라오는 것이 아주 훌륭한 음식이 되어준답니다. 거기에 달콤하고 향긋한 얼그레이복숭아 토스트까지 디저트로 곁들이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산뜻해지는 저만의 훌륭한 식탁이 완성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대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재료를 다듬고 예쁜 그릇에 정성스레 담아내는 과정. 그 시간 자체가 저에게는 참 몽글몽글하고 행복한 위로였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차린 이 맑고 청량한 한 끼를 천천히 음미하며 삼킬 때,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아주 상쾌하고 새롭게되는 것을 느꼈는데요. 그것은 단순히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스스로를 아주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주고 있다'는 그 다정한 감각 덕분이었을 겁니다. 스스로를 정성껏 돌보고 대접하는 일. 그것은 지친 일상에 기분 좋은 새 숨을 불어넣고, 낯선 타지에서 저를 다시 한번 단단하게 세워주는 마음의 환기구였습니다.
⛴️ 뱃머리에 부서지는 웃음, 아따우로가 불어넣은 맑은 공기
나를 위한 정성스러운 요리로 내면의 공기를 환기했다면, 금요일에는 밖으로 나가 동료들과 함께 일상의 묵은 공기를 시원하게 뒤집어엎을 차례였습니다. 바로 사무실 친구들과 다 함께 아따우로(Atauro) 섬으로 떠났거든요!
이번 여행이 유독 몽글몽글하고 특별했던 이유는, 다가오는 아구스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깜짝 여정이자 그 아름다운 아따우로 섬이 바로 아구스토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은 토요일에 가려고 했던 이 여정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지부장님께 양해를 구한 뒤 금요일에 떠나게 되었는데요. 다 함께 얼마나 이 시간을 기대했던지, 다들 금요일에 놀러가기 위해 한주간 열심히 근무시간을 채우기 위해 야근을 계속해서 했답니다. 현지 직원 친구들과 다 같이 사무실 밖을 벗어나 훌쩍 놀러 가는 것은 처음이라, 출발하기 전부터 제 마음은 소풍 가기 전날의 아이처럼 잔뜩 들떠 있었습니다.
섬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부터 우리의 유쾌한 환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어쩌면 배 위에서의 시간이 모든 환기의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따우로에서 떠나는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따우로에서는 2시간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배에서는 대략 6시간을 있었거든요. 다 같이 옹기종기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배 옥상에 모여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드놀이에 푹 빠지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사무실 책상 앞에서 쌓였던 크고 작은 업무의 피로들이 파도 너머로 흔적 없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배 위에서는 미리 준비한 깜짝 생일 파티로 아구스토에게 잊지 못할 벅찬 웃음을 안겨주었습니다. 주변에 함께 앉아서 외국인이 현지어를 쓰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시던 현지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함께 웃으며 아구스토의 생일 축하노래를 같이 불러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며 즐겨주셔서 얼마나 기쁘던지요! 현지 아이들도 와서 같이 초코파이를 나눠먹기도, 아구스토 선물로 준비한 장난간 뱀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이어진 여행의 하이라이트, 스노클링 시간! 고향 바다의 품에 안겨 한껏 신이 난 아구스토가 직접 운전하는 배를 타고 맑고 투명한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내 친구가 개인 배가 있는 배수저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에요. 찰랑이는 푸른 물결 속으로 다 함께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구경했던 바닷속 풍경은 당장이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또 다른 아따우로 사람인 우스미의 물개같은 잠수실력을 보는 것도,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히포가 결국 신나게 바다를 즐기는 것도, 핀을 들고 오지 않은 은송쌤이 맨발로 바다를 잔뜩 즐기는 것도 모두 행복하게 새겨진 장면들이에요.
사무실이라는 네모난 공간을 벗어나 거대한 자연과 바다 한가운데서 함께 웃고 떠들며 들이마신 맑은 숨결들. 곁에 있는 동료들과의 관계에도, 그리고 제 딜리에서의 일상에도 아주 산뜻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 완벽한 리트릿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또 오자고 꼬옥 약속도 했어요 !
🌅 지는 해를 나침반 삼아, 기꺼이 돌아갈 곳을 믿으며
아따우로 섬에서의 상쾌한 리트릿을 마치고, 이번 주말의 끝자락에는 Lenuk Tasi(레눅따시)로 향했습니다. Lenuk은 거북, Tasi는 바다라는 뜻으로 바다거북을 지키는 이 곳에서, 저는 막 알을 깨고 나온 아주 작은 아기 거북이들을 넓은 바다로 보내주는 경이로운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작은 아이의 손바닥만한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여린 생명. 이 조그만 거북이들은 앞으로 거친 먼바다로 나아가 수많은 파도와 천적들과 싸우며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어른이 되면, 수만 킬로미터의 바다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바로 이곳, 리키사의 해변으로 다시 돌아와 알을 낳는다고 해요. 이 작은 생명이 그토록 광활한 바다에서 어떻게 길을 잃지 않고 정확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우리가 거북이를 놓아주었던 해 질 녘에 있었습니다. 거북이들은 해의 빛과 방향을 고유한 나침반으로 삼아 바다로 나아가고, 훗날 그 빛을 기억해 자신의 출발지로 돌아온다는 것이었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붉게 물든 바다를 향해 꼬물꼬물 기어가는 아기 거북이의 뒷모습 위로 묘하게 제 모습을 발견했다면 조금 웃길까요?
사실 동티모르라는 먼 타국에 머물며 가장 불쑥불쑥 찾아오던 감정은, 어쩌면 나에게는 명확히 정해진 목적지나 온전히 닻을 내려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어요. 당장 내일의 미래조차 불확실하고, 끝없이 흔들리며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에 마음 한구석이 눅눅해질 때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는 해를 기억에 담아 기꺼이 바다로 뛰어드는 거북이를 가만히 지켜보며, 제 마음을 짓누르던 그 먹먹한 안개가 맑게 걷히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저 작은 생명도 자신만의 빛을 기억하며 넓은 세상을 유영하다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하물며 나라고 다를까. 당장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고 정처 없이 헤매는 것 같아도, 결국 나만의 해를 바라보며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가 돌아갈 곳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어딘가에 나를 따뜻하게 기다려주는 다정한 곳이 존재할 거라는 깊고 단단한 믿음. 거대한 바다를 향해 첫걸음을 떼는 아기 거북이의 씩씩한 독립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며, 저는 덩달아 저의 불투명한 내일을 향한 따뜻한 위로와 맑은 숨결을 듬뿍 얻어 돌아왔습니다.
마음의 방에 고여있는 무거운 공기를 밀어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거창한 태풍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닫혀 있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볼 작은 용기 하나면 충분했지요. 스스로를 정성껏 돌보는 식탁을 차려내며 굳게 닫혀있던 일상의 빗장을 풀었고, 곁에 있는 이들과 맑은 바다를 유영하며 묵은 숨을 비워냈습니다. 그리고는 지는 해를 나침반 삼아 나아가는 생명을 가만히 지켜보며, 마침내 제 마음 한가운데로 가장 시원하고 새로운 바람을 들이마실 수 있었어요.
나를 짓누르던 피로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창밖으로 시원하게 흘려보내고, 그 자리에 나를 다정하게 돌보는 마음과 내일을 믿는 용기를 가득 채워 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공기는 지금 어떤 온도와 습도를 띠고 있나요?
혹시 답답하고 무거운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번 주말엔 나를 위한 아주 작고 귀한 요리를 하나 선물하거나, 탁 트인 곳에서 깊은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어 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일상에도 맑고 기분 좋은 'Anin fresku'가 듬뿍 불어들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요
때가 되면 돌아갈 다정한 곳이 있음을 믿게 된 티모르에서,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둔 하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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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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