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ibur lia-fuan!
테툼어로 'Halibur(할리부르)'는 무언가를 모으고 수집한다는 뜻을 가졌어요. 마음을 모았다는 첫 테툼어 문장처럼, 딜리의 풍경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온기의 장면들을 하나둘 차곡차곡 수집해봅니다. 처음엔 조개를 수집하는 취미만 생긴 줄 알았는데, 한 주를 돌아보니 저는 티모르에서 장면들을 수집해내는 취미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뜨거운 햇살 아래 흙먼지가 날리는 길 위에서, 저는 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조각들을 주워 담아가요.
손끝에 닿는 모든 소중한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나만의 언어와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집해 내는 시간.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풍경 속에서 우리가 함께 빚어낸 10가지 반짝이는 장면들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해요 !
🐚 딜리의 자연에서 주워 올린 발견들
햇살 맞으며 가만히 바다를 거닐고, 바닥을 가만히 쳐다보며 돌만 주워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여유로운 주말 티모르 바닷가를 거닐며, 생각보다 저는 더더욱 바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귀엽게 생긴 돌들과 유리가 파도에 의해 둥글게 깎여 내려간 조각들, 서핑보드를 닮은 서퍼 돌멩이까지 조심스레 주워담아 손바닥에 모두 올려놓아보아요. 돌들을 수집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긴 줄 알았는데, 실은 그저 이런 장면들을 수집하는 것을 행복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집을 가득 채워버린 조개 껍데기들을 이제는 진짜 무언가를 만드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조개에 구멍을 뚫는 도구를 사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영상들을 찾아가며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는데요. 사무실 친구들이 모두 모여 함께 고민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친구는 제 이름의 이니셜을 조개로 만들어서 액자에 만들어 보관하라는 아이디어도 주었는데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간 이 시간이 실은 엄청나게 유익한 아이디어들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수집하기에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 되었어요.

사무실 앞자리에 앉아있는 친구가 일을 하던 도중, 혹시 NAUTILUS라는 단어를 아는지 물어봤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기에, 구글에 쳐서 찾아보고 있었는데요. 엄청나게 커다란 조개 안에 낙지처럼 생긴 친구가 사는 생물이더라구요. 그런데, 사진을 보고있는 제게 다가와 갑자기 그 친구가 이 커다란 조개껍데기를 건넸습니다. 사진이랑 똑같이 생겨서 마치 화면에 있는 물건을 제 앞으로 옮겨온 마술을 부린 것 같았어요. 저는 이 커어어다란 조개를 한국에 가져갈 수 있을까요?
많은 조개 껍데기들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던 저는 결국, 바닷가에 가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모빌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낚시줄에 조개를 하나씩 끼우니 주변에 있는 현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렇게 하나씩 완성이 되어가는가 싶더니.. 조개가 생각보다 모자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은 부분은 또 새로운 조개껍데기들을 수집한 뒤에 만들어보려구요 ! 그렇게 조개 모빌은 현재 미완성 상태로 제 집 앞에 걸려있답니다.
🫂 사람들과 함께 엮여가는 온기
여유로운 주말,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레몬에이드를 호로록 쫍쫍 마셔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야할 것들을 적고 있는 와중 누군가 제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이 느껴져 깜짝 놀라버렸는데요. 뒤를 돌아보니 반가운 얼굴의 한인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이방인으로 생각되어 움츠러들었던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서일까요. 금새 잔잔해지고 편해지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과 짧은 이야기들 나누며, 마주치는 것만으로 온기가 전해지는 찰나가 있다는 건 정말 행운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
혼자 피크닉을 하러 나간 여유로운 금요일 오후, 바닷가에 앉아서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는데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학생 한명이 옆에 다가와 앉아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습니다. 그 물음에 기꺼이 응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한국어와 테툼어를 섞어 나눈 후, 그 친구는 갑자기 제게 혹시 핸드폰을 구경해도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고는, 핸드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즈줄을 달아주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 학생에게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게 없다고 말했지만, 그 친구는 괜찮다며 우리가 마음을 나누었다는 증거라고 말해주며 선물을 주고 떠났어요. 이렇게 엮여진 온기는 오래간 잊혀지기 어려운 기억으로 남아질 것 같아요.
동료선생님의 따스한 선물도 있었습니다. 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색의 실을 엮어서 예쁜 팔찌를 만들어주셨는데요. 대단한 실력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매일 바쁜 하루하루 와중 저를 위해 팔찌를 만들어주신 귀한 마음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종종 저희 집에 놀러오는 옆집 고양이 맹꽁이도 옆에 가만히 앉아 팔찌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는데요. 고양이도 탐내는 제 선물, 부럽지 않으신지요 ~
🥗 맛있는 일상과 가벼운 발걸음
저를 위해 차린 소중한 음식들을 수집하기도 합니다. 귀엽게 생긴 토마토 두알과, 직접 만든 레몬딜버터를 올린 사워도우빵, 좋아하는 에그타르트, 그리고 유리병에 새롭게 담근 오이와 무 피클까지. 이렇게 하루의 장면을 수집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매일 같은 점심을 먹던 회사생활과 다르게, 다채롭게 꾸며지는 제 식탁이 뿌듯하기도 합니다.
친한 봉사단원 선생님들이 한 곳에 모인 저녁, 디저트로 레몬 포셋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레몬 포셋은 혼자 먹는 것보다 같이 먹는게 훨씬 맛있는 것 같아요. 맛난 디저트는, 함께 나눠 먹어야 제맛이죠. 이제 레몬 포셋과 함께 웃는 모습이 곁들여진 장면은 여러번 수집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저는 길을 걸으며 먹는 것을 생각보다 좋아합니다. 왜인지 모르게 자유로운 기분이 드는 행위라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제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수용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 이 동티모르에서는 더 자주 자유롭게 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먹습니다. 동티모르의 저녁 길거리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닭꼬치/돼지고기꼬치 같은 느낌인 '사태'라는 음식을 많이 파는데요. 1달러, 2달러에 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 방금 구운 따끈따끈한 꼬치는 제게 정말 좋은 느낌을 줍니다. 이 '사태'를 집가는 길에 사서 먹으며 걸어가면, 배가 차서 힘도 나고 나쁜 사람이 나타나면 꼬치를 무기로 쓸수도 있다는 일석이조의 장점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거대한 왕 조개 껍데기의 신비로움부터 바닷가에서 주워 올린 매끄러운 돌멩이들, 잠깐이지만 마음을 나눴다는 말과 함께 건네받은 비즈 한 줄과 다 함께 배꼽 잡고 웃던 모임의 레몬 포셋까지.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날들도, 마음을 열고 눈을 맞추면 이토록 반짝이는 보물들이 됩니다. 낯선 땅 딜리의 흙먼지 속에서 손끝으로 하나둘 주워 모은 이 사소하고도 다정한 장면들은, 어쩌면 앞으로 남은 날들을 버티게 해 줄 가장 단단한 힘이 되어주겠지요. 실은, 내 삶 속 하루하루마다 깊은 애정들이 담기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소중한 순간들을 수집하고 있을 당신에게, 이 작은 조각들이 따스한 온기로 닿기를 바라요. 다음 주에도, 마음 한편에 반짝이는 조각들을 품고서 또 만나요 ! ✨
수집한 장면 속 깊어지는 애정을 발견하는 동티모르의 시간을 담아, 하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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