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커피 한잔"의 약속은 꽤 가볍다. "밥 한번 먹어요!"는 왠지 무겁고 부담스럽다. 그래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말 밥을 먹고 싶은 상대에게는 "언제, 어디서 만나서 밥을 먹자!"라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밀라노에서 "커피 한잔"은 어떤 의미일까?
"나중에 Un caffee insieme 해요!"
의미를 따지기 전에 횟수를 헤아려보고 싶다. 밀라노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신 횟수가 인도에서 3년 동안 커피를 마신 횟수보다 많다. 질보다 양을 더 좋아하는 나는 가벼운 "커피 한잔"의 약속이 이렇게 잘 지켜진다는 것에 감탄하고 만다.
그녀를 만난 건 인스타그램에서였다. 언제 인친이 되었는지는 나도 그녀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렴풋이 짐작 하건대 우리 가족이 뉴델리를 떠나 밀라노 행을 결정하고도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잡지 못했던 때였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밀라노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인스타그램에서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을 검색해 그들의 삶을 엿보곤 했었다)
얼굴도, 나이도, 진짜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단편적인 글과 사진으로 만났을 때는 몰랐던 그녀의 삶을 들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제가 인터뷰를 해야겠어요!!" 그렇게 갑작스러운 만남이 갑작스러운 인터뷰가 되었다.
선량 : 밀라노에는 언제 오셨어요?
hdue : 1994년도에 왔으니까.... 거의 30년 돼가네요.
선량 : 어머나 세상에.... 그렇게 오래되셨다고요? 엄청 젊어 보이시는데.... 연세가...
hdue : ㅎㅎㅎ 많아요. 50이 넘었어요.
선량 : 어머, 정말요? 완전 동안이세요. ^^ 90년대면 정말 오래전인데요, 지금도 이탈리아 행정이 너무 느려서 제가 속이 타들어 가고 있거든요. 인도가 얼마나 빠르고 스마트한 나라였는지 깨닫고 있어요. 처음 여기 오셨을 때 어떠셨어요?
hdue : 지금은 정말 많이 빨라지고 좋아진 거예요. 그때는 체류증 받으려고 새벽부터 경찰서에서 줄 서서 기다렸어요. 추운 겨울에 기다리려고 서 있다보면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요. 은행이나 이런데 가도 번호표가 없었어요. 얼마 전에 백신 접종을 하는데 번호표를 나눠주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선량 : 헐..... 번호표가 이제야 시행되고 있군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처음에 밀라노는 어떻게 오시게 되셨나요?
hdue : 남편과 결혼하고 바로 유학을 왔어요. 저는 패션디자인 전공이었고, 남편은 성악 전공이었죠. 여기서 유학하면서 아이들 둘을 낳았어요.
선량 :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hdue : 음...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이 그때 이탈리아 현지 학교를 다녔는데, 한국에 가서 다시 적응시켜야 하는 일이 가장 마음에 걸렸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돌아갈 시기를 놓쳤어요. 지금 큰 아이는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는 대학 다니고 있어요.
선량 : 여기서 낳고 여기서 다 키우셨네요. 정말 고생 많으셨겠어요. 저도 사실 한국에 돌아간다면 가장 걸리는 게 아이들 교육이거든요.
hdue : 맞아요. 이곳 아이들은 정말 행복하게 학교 다녀요. 학원도 없고요. 다녀봤자 스포츠나 예체능 위주로 보내고요. 그래도 교육이 꽤 깊이가 있어요. 인문학적인 걸 깊게 파고, 토론도 해야하구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고학년이 되면 오후 2시면 끝나요. 왜냐하면 숙제가 많거든요. 우리나라와 정 반대죠.
선량 : 정말 신기하네요. 아이들은 어떤가요?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하나요?
hdue : 네. 한국에 가서 잠깐 놀다 오는 건 좋아하지만 가서 사는 건 싫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에 워낙 한국 문화에 대한 게 많이 나오니까요, 둘째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하더라구요. 자기들 인생이니 맡겨야죠.
선량 : 밀라노에 30년 동안 사시면서 정말 많은 경험을 하셨을 것 같아요.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hdue :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여행 가이드도 해봤고, 패션 사업체도 운영해 봤고, 통역 아르바이트도 해봤죠. 한참 명품 공동 구매 열풍일 때는 그런 것도 해봤고요, 전시회 아르바이트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어요. 특히 남편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지금은 여기서 직장을 다니고 있지요.
선량 : 정말 다양한 일을 하셨네요. 사실 전 너무너무 이 경험들이 가까워요. 이게 다 글감이거든요. 요즘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글을 쓰는 시대에요. hdue님이야말로 글을 꼭 써야 할 분이시네요.
hdue : 저도 한번 써보고 싶어요. 짧게 쓴 글들이 페이스북에 꽤 있는데, 그걸 모아서 써볼까 싶었어요. 그런데 길게 쓸 자신이 없더라구요.
선량 : 제가 도와드릴게요. 꼭 쓰세요.
hdue : 아이고 감사해요. 도움 필요하면 꼭 말씀드릴게요.
선량 : hdue님 말을 듣다 보니, 제가 한 고생은 정말 별거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마다 경험의 높낮이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 나라에서 30년을 살아내신 게 너무 대단해 보이세요. 전 이제 겨우 두 달이 되었는데, 이탈리아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비자도 아직 안 나왔구요. 그런데 조금 희망을 가져볼까 싶어요.
hdue : 그럼요. 이탈리아 비자는 정말 오래 걸려요. 저희는 지금 체류 기한이 없는 비자를 가지고 있지요. 처음엔 2년마다 매번 경찰서에 줄 서야 했어요. 이곳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선량 : 오늘 이렇게 먼 걸음 해주시고, 커피도 사주시고, 인터뷰도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주 토요일, 성탄 예배를 마치고 그녀를 따라 옆 건물에 있는 카페에 갔다. 기본 20년 이상 밀라노에 사신 한인 분들이 커피를 마시다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긴 정말 "커피 한잔"이 가볍지만, 진심인 곳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구독자님은 새해 계획을 세우셨나요? 어떤 분들은 아주 자세한 계획을 세우곤 하더라구요. 예를 들면, 하루에 물 10잔 이상 마시기, 새벽 5시에 꼭 일어나기, 한 달에 책 10권 이상 읽기, 5킬로 그램 이상 살 빼기 등등. 계획은 자세히 세울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랍니다. 계획을 아무리 세워도 잘 지키지 않는 제 자신을 너무 잘 알거든요.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도 커피 줄이기와 와인 끊기를 다짐했지만, 매일 아침 새롭게 다짐을 하고 있답니다.
제가 2년 전부터 새운 계획이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1년에 책 한 권 이상 쓰기" 인데요. 조금은 과대한 계획이죠? 하지만 2년 동안 그 계획을 모두 성공시켰답니다. ^^ 역시 질보다 양....
책을 쓰기 위해서는 글이 필요하죠.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이 필요하고요. 글감을 구하기 위해선 경험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책을 읽어 지식을 얻고,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1년에 책 한 권 이상 쓰기"를 위한 것이에요.
며칠 전에는 이탈리아어가 가득 쓰여진 다이어리를 하나 샀어요. 다이어리를 펼치고 새해 계획을 써볼까? 하다가 덮었습니다. 지금 저는 아무런 계획을 세울 수가 없거든요. 글쓰기 모임에 대한 계획도, 운동에 대한 계획도 세울 수가 없어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이 불안정한 상황이 저를 "무계획자"로 만듭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지켜내고 싶어요. 매주 목요일, 쭘마인밀란을 발행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사진 찍고, 글을 쓰려고 해요. 이 매거진이 결국엔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지금 제 책의 초고를 읽고 계시답니다. ^^ 제 계획에 동참해주신 구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구독자 님의 새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계획의 부피가 작든 크든, 계획의 깊이 깊던 얇든, 당신이 세운 그 계획을 응원하겠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이른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반짝이는 밀라노의 크리스마스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다 지하철을 타고 두오모 성당으로 향했다. 일곱 정거장만 가면 볼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두오모 성당이 있다.
성당 앞에 세워진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여기저기 반짝이는 전구, 반짝이는 노점상과 반짝이는 명품관까지. 모든 것이 화려했다. 스노우 볼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딸 아이가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모른 척하며 손을 잡아끌었다. 이미 지하철역 앞에서 5유로짜리 장갑을 샀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하나에 1유로 하는 손가락 인형을 6개 샀으며, 서점에 가서 해리포터 책도 샀고, 젤라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도 잔뜩 먹은 상태였다. 사실은 나도 스노우 볼을 사고 싶었지만, 작은 숙소에 점점 늘어나는 우리 짐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화려한 두오모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걸어 다닌 후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핫초코를 마셨다. 내일 점심때는 식당에서 외식을 해야지,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 밖으로 나가봤지만,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았다. 집 근처 마트도, 피자집도, 그 옆에 일식집도 문을 닫았다. 두 달 내내 문을 닫지 않았던 수선집도 오늘은 문을 닫았다. 아.... 여긴 크리스마스가 정말 휴일이구나....
알고 보니, 크리스마스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가게도 마트도 상점도 모두 문을 닫고 고향으로 간다고....
그러고 보니 홍군 회사도 연말 내내 쉰다고 했다. 한국 사람인 홍군은 그것과 상관없이 출근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들은 정말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것 같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시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텅텅 빈다고 한다. 여름 휴가를 위해 일 년 동안 돈을 번다는 사람들. 우리와는 뇌 구조가 다른 것 같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이집트 사람이 하는 케밥 집은 문을 닫지 않았다. 그게 어디냐며 감사한 마음으로 케밥을 시켜 먹었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땅 땅 땅!"
지안이가 국자를 손에 들고 바닥에 내리치며 말했다.
"자,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말해보시겠습니까? 엄마부터 말해보세요."
"네. 사실 저는 며칠 전부터 화가 조금 나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아빠가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았으니까요. 평일에는 회사 일 때문에 힘들다는 거 이해해요. 하지만 주말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보면서 누워있으니까 너무 꼴보기가 싫었습니다.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음.... 쫌 너무 한 것 같긴 하네요. 자, 아빠 말씀해보세요."
"네, 저는 다른 것보다도 엄마의 말투에 화가 났습니다. 제가 뭘 부탁하면 좋게 대답을 안 해요. "아이씨~"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까 전 좀 짜증이 났습니다.
"음... 그건 좀 그렇네요. 엄마, 뭐 할 말 있으세요?"
"내가 그렇게 반응한이유가 뭔데? 당신한테 화가 나서 그런 거잖아~ 나는 주말 아침부터 밥하고 애들 숙제 봐주고, 지안이 시험공부 시키고, 청소하고, 또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 영어책 읽어주고. 그동안에 자긴 누워서 핸드폰 보고 있었잖아. 내가 화 안 나겠어? 주말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월요일 아침에 옷을 다려 달라고 하면 내가 화 안 나겠냐고~ 도시락도 그래. 도시락 싸려면 밥하고, 메뉴 정하고, 요리를 해야 하는데해, 도시락 안 싸도 되면 미리 말을 해야지. 아침에 말을 하면 어떡하냐고~ 내가 무슨 메이드야? 난 도대체 이 집에서 뭐냐고."
"아빠, 할 말 있…. 어?"
"아니...."
"아니,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그런 말이라도 해야지. 그냥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이렇게 말만 하면 다냐고~~"
"음... 소은아, 넌 할 말 없어?"
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이는 낄낄거리며 말했다.
"나한테 물어보지 마~~~"
"자, 그럼...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음... 아빠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 어디죠? 안방 침대죠? 그러면 오늘은 아빠가 안방을 정리해주시고요, 저는 설거지를 하겠습니다. 소은이는 거실 정리를 해주시고요, 엄마는.... 쉬세요.... 땅 땅 땅!"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 이 말은 진리입니다.
며칠 전에 유투버 제인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뽀샵 효과 덕분에 많이 뽀샤시 하게 나왔습니다. 많이 부끄럽지만, 그 영상을 공유합니다.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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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song
툭탁거려도 정말 행복한거 같아요!!!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늘 지금처럼 행복하세요~ // 글 너무 잘보고 있습니다. 🙂🙃
zzumma in Milan (118)
마라님☺️ 매번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사는 게 뭐 다 비슷하겠지요? 저희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ㅎㅎㅎ 결국 미안하다는 말은 못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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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카
닉네임을 불러주시니 정말 편지받는 기분이였어요~^^ 커피한잔이 가볍지만 진심인 곳~ 정말 매력적인 곳이예요~ 항상 글 잘보고 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기다릴게요~😍
zzumma in Milan (118)
😍😍 모카님. 매번 잘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다음 호는 내년에 발행하게 되겠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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