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쭘마인서울] 전화위복

구독자님께 전하는 "쭘마인밀란" 열 세번째 이야기

2022.01.27 | 조회 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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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밀라노에 입성한 한국 아줌마의 유쾌한 생활밀착형 밀라노 이야기

 

vol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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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자는 소식이 없다. 남편은 본사 출근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추석을 앞두고 미리 예약해 둔 기차표를 취소했다. 갑자기 시작된 온라인 수업을 설 명절 동안 하게 되었다. 8시간 시차 때문에 혹시나 수업을 놓치게 될까 봐 온종일 시계를 본다. 분주한 나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째깍 째각 잘도 흐른다. 벌써 한국에 온 지 3주가 되었다. 

온라인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건만 그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왔지만, 대면 수업이 계속되었다. 한 반에 확진자가 두 명 이상 나온 경우, 그 반만 10일 동안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지금 밀라노 프랑스 학교는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이 오락가락하고, 밀접 접촉자의 경우엔 학교에 가지 못해 선생님이 올려준 과제를 보고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에 있는 내 아이들은 선생님이 사이트에 올려준 데일리 과제를 체크한 후 스스로 공부하고, 숙제를 한 후 사진 찍어 올리고 있다. 

알지도 못하는 프랑스어와 씨름 하느라 꽤나 힘들다. 내 아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는 엄친아, 엄친딸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엄그아, 엄그딸"이기 때문에 아이의 숙제는 곧 엄마의 숙제가 된다. 

사실 선생님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제대로 과제를 하지 않으면 엄마인 내 잘못 같아서 더 안달복달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알지도 못하는 프랑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자조 섞인 고백을 했다. 

10개월 된 아이를 안고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가난한 나라에 간 이유는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사명감이나 소명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남편을 따라 간 그곳에서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하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곤 했다. 

그건 인도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긴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곳이 아니고 남편 때문에 왔다고 생각했다. 책임 전가적인 무의식이 내재해 있으니, 무엇을 해도 불만이었다. 

밀라노에 갈 때는 조금 달랐다. 머뭇거리는 남편을 설득하고 불안함보다 기대를 더 품었다. 밀라노에서 겪은 낯섦이 좋았고, 새로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도 신났다. 그래서 비자가 나오지 않아 밀라노를 잠시 떠나야 했을 때 견고하던 내 마음은 더 와르르 무너졌다. 

"힘든 것이 당연해, 지금까지 잘 견딘 게 대단한 거야." 

남편이 이 말을 해주었을 때 나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는 왜 밀라노에 갔던 것일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힘든 그때는 절대 알아챌 수 없게 베일에 싸여 있다가 현재의 일이 과거가 되었을 때, 베일이 걷히면서 조금씩 실루엣이 나타난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곳에 갔었던 것인지 삶의 이유를 깨닫게 된다. 나는 그것을 삶의 “페이드 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페이드 인( fade in) : 영상이 검정색 상태에서 다음 이미지가 점차 선명하게 나타나는 장면 전환 효과. 

 

“인도에서 참 많이 힘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많은 걸 배운 것 같아. 지금 밀라노에서 그걸 써먹고 있는 걸 보니 말이야.” 

“난 여기서 방글라데시 사람을 만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어. 잊고 있었던 벵골어가 생각나더라니까~”

 

약 10년 동안의 해외 생활이 바로 지금을 위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현재의 고통은 별것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 한날을 위한 준비였음을 깨닫게 될 테니까.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것은 어쩌면 신이 우리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자 용기인 것 같다. 

 

학교 친구들에 코로나에 걸렸거나 밀접 접촉자가 되어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금 이 시국에 밀라노가 아닌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 비자가 빨리 나오지 않았는지, 중요한 시기에 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는지 한 달 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그건 바로 커다란 시간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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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사랑해서 결혼하긴 했지만, 결혼 후 더 중요한 것은 신뢰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의 감정은 결혼하고 석 달만 지나도 흐릿해지기 마련이고 이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인지 모를 지경에 다다른다. 흔들리는 마음을 단디 붙잡을 수 있는 건 (사랑 + 신뢰× 배려)가 아닐는지. 

애로부부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것은 신뢰와 배려뿐만 아니라 솔직함이었다. 부부 사이에 어느 정도까지 솔직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 처음부터 숨기지 말고 자신의 과거와 과오를 모두 밝혀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해 보였다. 한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실을, 사실은 아이가 있다는 진실을, 가정에 큰 빚이 있다는 비밀을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고 결혼한 순간 그 사람의 마음엔 지옥문이 열리고 만다. 에로부부가 애로부부로 한순간에 변하는 순간이다.

나 역시 소소한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며칠 전에 홍 군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오랜만에 연말정산을 하던 그는 내 체크카드 이용 내역을 보고는 날 큰 소리로 불렀다. 한국에서 지냈던 지난 8월, 9월, 10월 이용 금액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 것이었다. 나는 어디에 썼는지 카드 내역을 모조리 보여주었다. 그는 이렇게나 많이 쓴지 몰랐다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변명할 거리는 많았다. 부산 레지던스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도시락을 사 먹었고, 두 아이와 지내느라 간식도 많이 사 먹었고, 매일 서점에 가서 책도 많이 샀고, 커피도 많이 마셨으며, 여기저기 놀러도 많이 다녔었다. 이렇게 말 했지만 그는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눈치였다. 

하루 뒤에 그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얼마인지 물어보더니 이제부터는 고정 금액만 나에게 보내줄 것이고 나머지 돈은 자신이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동안 내가 쓴 돈은 모두 가족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 쓴 것인데, 내가 돈을 엄청 헤프게 쓴 것처럼 말하는 것이 화가 났다. 그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단지 계획적으로 돈을 쓰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난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정말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한국에선 당연히 생활비가 많이 나간다고, 그동안 해외에서 생활비 받아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고생했다는 말은 못 할 망정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래, 다 가져가라~ 나도 돈을 벌고야 말 테다!!"

라고 말했지만, 밀라노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안다. 에잇,

꼭 에로틱한 글을 발행하면 그다음에 이렇게 싸우게 된다. 다시는 19금 에세이를 쓰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19금 이야기를 쓸 때 제일 재밌기도 해서 다시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며칠 전에 주문한 화장품이 배송 중에 있었다.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쫄렸다. 택배 상자를 들고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가서 조용히 화장품을 꺼내고 상자를 버렸다. 그리고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화장품을 올려놓았다. 별것 아닌 비밀에도 괜히 콩닥콩닥 심장이 떨리는 걸 보니, 그냥 거짓말하지 말고 당당히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번 달엔 50만 원은 써야겠어."

"서울에서 한달에 50만원 쓰겠다고?"

"응, 나도 생활비 필요해."

"아니, 너무 적잖아. 부족할텐대...."

"아... 그래? 써보고 부족하면 더 말할게...."

에잇, 백 만 원 부를걸.... ㅜㅜ 

 

재미있게 보던 애로부부를 더이상 보지 않는다. 보다 보니 부부의 모습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 역시 완벽한 부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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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일 집중력이 완전히 떨어졌어요. 지난주부터 언니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아이들 네 명이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온종일 정신이 혼미합니다. 그래도 나와의 약속, 그리고 구독자님과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어서 정신을 차리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어요. 역시 마감이 글을 쓰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운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어요. 바로 "쓰담쓰담, 짧은 글쓰기" 모임인데요, 온라인 모임 없이 오롯이 글만 쓰는 모임이에요. 매일 아침 7시에 글감이 배달되고, 글감에 따라 딱 3문장 이상만 쓰면 된답니다. 제 인친님들 중에는 해외에 계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분들과도 함께 하고 싶어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없애버렸어요. 다행히도 모집이 잘 되어서 12명의 멤버들과 글로 소통하고 있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부담 2스푼, 설렘 2스푼, 그리고 즐거움 6스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잘 어울려져야 글쓰기를 잘 유지할 수 있지요. 너무 부담스러워도 안 되고, 너무 설레기만 해도 안 됩니다. 그리고 꼭 즐거워야 하지요. 

쓰담쓰담 멤버 중에 이처럼 글을 쓰시는 분이 계세요. 저와 슬로우리딩도 함께 하셨던 조르바 님이신데요, 며칠 전에 만났던 조르바님의 글이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 쭘마인밀란 구독자님들께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가져와 보았습니다. 


가방의 역사

입학 전, 가방은 필요 없었다.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넣을 것이라고는 과자 하나, 색종이 하나. 걱정 뺀 가방은 무척 가벼웠다. 그것도 팽개치고 그냥 놀았다. 그때는 어렸다.

초등학생이 되며 책가방이 생겼다. 알림장, 준비물, 물통과 수저. 엄마는 어린 내가 메기에 제법 무겁다고 걱정하셨지만 이정도 무게쯤 감당할 수 있었다. 아직은 어렸다.

고등학생이 되며 가방은 돌덩이가 되었다. 도시락 두 개와 혹시나 볼까 하며 들고 갔다가 역시나 보지 않는 책들이 들어 있었다. 옆 친구들도 다 하나씩 돌덩이를 메고 다녔고 꿈의 무게라 하기에 견뎠다. 그때는 젊었다.

청년이 되며 서류 가방을 들었다. 가방 속에는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가 서류로 둔갑해서 들어 있었다. 얼른 버리고 싶은 보기만 근사한 가방이었다. 그래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아직은 젊었다.

때때로 여행 가방을 멨다. 어떻게 이 무거운 걸 메고 돌아다니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풍선처럼 가벼웠다. 나를 하늘 위로 뜨게 만들어 주었다. 잠깐 다시 젊어졌다.

아이가 생기고 가방이 커졌다. 내 짐을 하나씩 빼고 네 짐이 담겼다. 처음 들어보는 가방이라 좋았다. 무거웠지만 무겁다고 하려니 미안했다. 이제 젊지는 않았다.

지금 내 가방은 단촐하다. 어깨 병이 도지고 무거운 걸 들 수가 없다. 화장품, 지갑이 먼저 떠났다. 핸드폰과 일터의 열쇠는 그대로 남았다. 열쇠는 챙겨도 책은 못 본 척할 때가 많다. 아직도 꿈은 생계에 밀린다. 여전히 젊지는 않은데.

내 가방에 앞으로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빼게 될까?


가방 하나로 모든 지난 삶을 담아낸 글을 읽고 배시시 웃음이 났어요. 그리고 어른이 되어 짊어지고 가는 가방, 그 가방의 무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구독자의 가방엔 무엇을 담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무엇을 빼고 싶으세요? 

저는 유쾌함을 좀 더 담고 싶어요. 인문학적인 지식도 담고 싶고요, 언어적인 센스도 담고 싶어요. 빼고 싶은 건.... 소심함과 급한 성격, 그리고 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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