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없는 삶에 대하여

구독자께 전하는 스물 세 번째 쭘마인밀란

2022.06.02 | 조회 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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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밀라노에 입성한 한국 아줌마의 유쾌한 생활밀착형 밀라노 이야기

쭘마인밀란 Vol 23
쭘마인밀란 Vol 23

몇 달 전, 길거리 광고판에서 티치아노 전시회에 대한 광고를 보았다. 그 옆엔 샤갈 전시회 광고도 있었다. 티치아노와 샤갈이라니.... 책에서만 보던 거장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설레었다.

'아, 여기가 정말 밀라노구나.... 내가 정말 밀라노에 있구나....'

미술과는 거리가 참 멀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도 없고, 좋아하는 작품도 없었다. 그저 '다락방 미술관', '방구석 미술관' 같은 관련 책들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뜬구름 잡는 느낌이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느껴보지 않은 것을 다른 작가의 눈과 손으로 전한 글로 접하니, 좀체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일본인 친구 나오꼬와 함께 카푸치노를 마시다 함께 티치아노 전시회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파리에서 오래 살았는데, 프랑스어를 꽤 잘하는 친구이다. 나오꼬도 꼭 가고 싶다며 함께 그 자리에서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바로 예약을 했다.

5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티치아노 전시회에 갔다. 

Palazzo Reale 
Palazzo Reale 

티치아노 전시회를 하는 곳은 밀라노 두오모 광장 바로 옆에 있는 "Palazzo reale"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을 다양한 전시회가 일 년 내내 열린다. 우리는 오픈 시간인 10시에 맞춰 미술관 앞으로 갔다. 

예약을 한 사람들은 티켓을 보여주고 바로 입장했고, 현장에서 발권하는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티치아노의 고향은 원래 돌로미티산맥에 자리하고 있는 카도레라는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그곳은 알프스산맥이 너우러져 있는 그림 같은 곳이다. 어린 시절을 그런 곳에서 보낸 후 베네치아로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피렌체가 미술의 도시로 유명했다. 각종 유명한 화가들이 피렌체로 모여들었다. 그 이유는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네치아는 상업으로 유명할 뿐이었다. 하지만 티치아노는 베네치에서 미술 활동을 하며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배의 돛으로 사용하던 천에 화려한 색감의 유화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캔버스에 유화"가 되었다. 특히 베네치아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것으로 점점 유명해졌다고 한다. 

Tiziano e bottega, 1550 (Venus, Mars and Cupid)
Tiziano e bottega, 1550 (Venus, Mars and Cupid)

티치아노는 신화를 이용한 그림도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그림이 꽤 많았다. 특히 사랑의 화살을 들고 다니는 큐피드를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었다. 

 Tiziano e bottega, 1554 (Danae)
 Tiziano e bottega, 1554 (Danae)

이 작품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아크리시오 왕은 손자의 손에 죽을 거라는 예언자의 예언을 듣고 자기 딸을 청동 탑에 가둔다. 그런데 다나에를 사랑한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해 이 탑으로 들어와 다나에를 임신시키는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페르세우스이다. 

 

Tarquin and Lucretia)
Tarquin and Lucretia)

나는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펐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의 손에 들린 칼, 그 뒤에서 여인을 붙잡고 있는 남자. 섬뜩하면서도 아름답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작품이라고 알려져있지만, 확실치는 않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다른 베네치아 출신 화가들의 작품도 꽤 많았다. 

Jacopo Tintoretto, 1550~1560 (Leda and the Swan)
Jacopo Tintoretto, 1550~1560 (Leda and the Swan)
Palma il vecchio, Venus
Palma il vecchio, Venus
Paolo Veronese, (The Rape of Europa)
Paolo Veronese, (The Rape of Europa)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고용한 흥분이 느껴졌다. 다들 한 손에 오디오 가이드를 들고 작품 하나하나에 깊이 몰입한 모습이었다. 나는 작품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고 싶었지만, 회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오랫동안 붙잡아 두기가 힘들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책을 찾아보고, 배경지식이 있어야 그 작품이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 작품을 감사하며 천천히 미술관을 걸어 다녔다. 이들의 문화생활이 괜히 부러웠다. 

 

밀라노에는 여러 미술관이 도시 곳곳에 숨어 있다고 한다. 이런 미술관을 다니며 그림을 보고, 그에 관련된 책을 읽기만 해도 내 인문학적 지식이 쑥쑥 자랄 것만 같다. 미술과는 너무 먼 사람이지만, 밀라노에 사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조금 더 미술과 가까워져 볼까 싶다. 

 

지난 일요일, 우여곡절 끝에 구한 숙소로 이사를 했다. 한국에서 밀라노로 올 때 가져왔던 짐 가방이 모두 5개. 그런데 한 달 만에 살림살이가 점점 늘어나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당장 필요치 않은 것들을 따로 모아서 남편 회사 창고로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했는데도 여전히 짐은 많았다. 어째서 먹고사는 일은 이다지도 과도한 물건들을 남기는 것일까? 

다행히도 학교에서 가까운 숙소를 구할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딱 일주일만 지낼 수 있었다.  그 일주일을 잘 보내기 위해 열심히 짐을 쌌다. 

 

두 번째 숙소는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방 하나, 거실 하나였지만, 소파 겸 침대가 있어서 아이들과 넉넉하게 잘 수 있었다. 현관문 바로 앞엔 마당도 있어서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기 좋았다. 테이블엔 웰컴 선물로 캡슐 커피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커피를 한잔 내려 마당으로 나가 의자에 앉았다. 담벼락을 따라 드리워진 초록의 등나무가 더욱 상쾌하게 만들었다. 아~~ 너무 좋다.

그때 사방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모기가 내 품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모기약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팔꿈치가 가렵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에 적군에게 피를 보이고 말았다. 낭패다.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해야겠다. 벌떡 일어나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갔다. 

구글 맵을 켜고 새로운 숙소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가는 길엔 꽤 큰 로터리가 있다. 이탈리아 화가인 Lorenzo Lotto의 이름을 딴 곳으로, 그 로터리 중앙엔 잔디밭이 있고, 그 주위로 버스 정류장이 복잡하게 있다. 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길치, 방향치인 나는 미리미리 걸어야 하는 길을 가늠하여 아침나절의 시나리오를 만든다. 

여행 같은 삶이지만,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니, 꼭 그렇지도 않다.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나는 어떠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뿌리가 없이 부유하는 삶이라고 나를 정의하곤 한다. 뿌리라 함은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 부모님이 일구어낸 땅에 단단하게 내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뿌리가 없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단언컨대 정서적으로는 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밀라노에서의 삶을 가족들에게 모두 말할 수 없다. 즐거운 근황을 주로 전하지만, 대부분 침묵을 지킨다. 가끔은 일부러 숨기기도 한다. 내가 해외 생활의 고난을 전하는 순간, 가족들은 염려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처럼은 못 살겠다." "나는 우리나라가 제일 좋아." "너무 고생이 많다."라는 염려 가득한 말이 이상하게 나를 억누른다. 

그런데 잠잠히 침묵을 지킬 때 언니 중 한 명이 카톡을 보낸다. 나의 근황을 전혀 모르는 언니가 전하는 진심이 나를 깨운다. 

"오늘 새벽에 널 위해 기도했어. 언니가 기도하고 있어." 

"언니, 고마워.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날 위해 기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분명 깊게 내린 정서적 뿌리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자매라는 관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장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미 정서적 뿌리를, 비옥한 옥토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던 남의 편이 말했다.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은 말이야, 몸에 열이 많거나 몸에서 냄새가 나거나, 몸이 붉은 사람이래. 모기는 10미터 밖에서도 사람 냄새를 맡는다네. 좀 씻어~"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뭔소리야~~ 내가 제일 잘 씻는데~쫓

"발바닥 물린 거 봐. 발 좀 씻어." 

웃고 있는 그의 주둥이를 때릴 수도 없고.... 

 

가족 중에 가장 모기에 잘 물린다. 모기가 한 마리만 있어도 잠을 못 자는 편이다. 자다가 위잉~ 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모기를 좇는다. 이상하게 불을 켜면 모기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모기를 잡을 때까지 보초를 서다가 너무 피곤해 까무룩 잠을 잔다. 그러면 다시 위잉~~~  아.... 미치겠다.

나와 다르게 그는 아랑곳없이 잠을 잔다. 모기가 있었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아.... 미치겠다. 

 

날이 잔뜩 흐린 날, 비가 내릴 듯 말 듯한 날이었다. 날이 조금 추워 긴 소매 옷을 꺼내 입었다. 그런데 남의 편이 자꾸 에어컨을 켜는 것이 아닌가? 

"안 추워?"

"응, 더워."

"난 추운데.... 에어컨 좀 끄자."

"몸에 열도 많으면서 왜 춥대."

"아 몰라. 추워. 진짜, 안 맞네, 안 맞아. 몸의 온도도 안 맞고, 식성도 안 맞고, 취미도 안 맞고. 다 안 맞아."

이런 내 말에 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날도 안 맞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아들이 아빠를 향해 말했다. 

"아빠, 그날이야? 아빠 꼬추에서 피나?"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선량 작가입니다.  

드디어 이번 주에 쓰담쓰담 4기 회원을 모집했습니다. 이번에도 정말 감사하게 하루 만에 마감이 되었답니다. 1기부터 참여하셨던 분, 2기에 참여하셨던 분, 3기에 참여하셨던 분, 이번에 새롭게 참여하시는 분, 그리고 제 지인 몇 분까지. 총 15명의 쓰담 메이트와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음 주부터는 쓰담 메이트들의 글도 함께 수록할 예정입니다. 매번 멤버들에 따라 단톡방의 분위기가 다른데요, 이번엔 또 어떤 분위기일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글을 쓴지 5년 차가 되었고, 작가가 된 지 3년 차가 되었고, 선량한 글방을 시작한 지 2년 차가 되었습니다. 과연 계속 글을 쓰며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여러 독자님 덕분에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어요. 

선량한 글방은 온라인 글방이지만, 언젠가는 오프라인 글방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나중에... 나~~ 중에.... 한국에 돌아가 살게 되면, 저만의 글방을 만들어서 온오프라인으로 독자님들을 만나고, 글 메이트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선량한 글방은 계속 할 생각이에요. 

이번 주엔 월든, 슬로우 리딩클럽 4기가 끝납니다. 책 읽기는 모두 끝냈고, 이제 '나만의 월든'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주간이었어요. 그 에세이를 예쁘게 엮어서 문집을 만들 생각입니다. 책만 읽고 끝나는 모임이 아니라 글도 써보고, 나만의 문집을 남길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편집하는 일이 조금 수고롭긴 하지만, 덕분에 저도 편집 실력이 많이 좋아졌답니다. 

 

선량한 글방의 한 파트인, 쭘마인밀란을 구독해주신 모든 구독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일주일 동안 행복하시고,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뵐게요.

 

Buon Gior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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