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5월의 하늘은 충분히 만끽하셨나요? 구름이 흐르는 방향을 보면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가고있는 듯 합니다. 기분좋은 바람과 조금 뜨거운 햇빛, 때때로 쏟아졌던 당황스러운 물방울들, 그런 것들이 지난 5월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올록볼록클럽 5월 호의 주제는 ‘비’입니다. 여름의 티저같았던 오월의 소나기를 기억하고 다가오는 여름의 장마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함이지요.
비에 붙는 이름들은 참 다양합니다. 똑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인데도 어떤 비는 소나기가 되고 어떤 비는 장마가 되고 어떤 비는 여우비나 호랑이 장가가는 날로 불리기도 합니다. 비를 부르는 말들은 또 조합되어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마라는 말이 되기도 하고, 시기가 맞다면 단비라고 이름붙여지기도 하지요.
각각의 비들은 모이고 모여서 물줄기가 되어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흐르고 흘러 어디로 갈 지 모르는 물들은 마치 이면지 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우리들과도 닮은 듯 합니다. 이번 호에는 필진 중 두 활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새롭게 이번 호의 이면지 위에서 잠시 떼굴떼굴 굴러보기로 한 몇몇 잉크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담아 보았습니다.
이번 호를 다 읽은 잉크들의 마음에는 어떤 비가 내려서, 어디로 흘러갈까요?
빗소리와 함께 들어주세요. << 여기를 클릭!
1
감기
아마 초등학교 4학년의 어느 비 오는 날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랑 가위바위보해서 지면 밖에서 비를 10초 동안 맞고 오기로 했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2초도 안 돼서 머리는 완전히 젖어갔고 굵은 빗줄기는 내 살을 아프게 때렸다. 그치만 재밌었다. 아주아주 재밌었다. 그 잠깐의 10초 동안 느꼈던 희열이 아직도 간간이 떠오른다.
당연히 다음날 심한 감기에 걸렸다. 사실 초등학생의 나는 몸이 많이 약했기에 그 흔한 태권도 학원도 부모님은 반대했고 조금이라도 몸을 다치는 일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흠뻑 젖은 날 본 엄마는 기절초풍하셨다. 고작 10초간의 비 맞기. 그건 아마 내 인생 첫 번째 저항이었을 것이다.
비를 맞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내 살에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들린다. 세상과 단절된다. 내가 비가 되어 떨어지는지, 아니면 다시 증발해 하늘로 올라가는지 알 수가 없다. 땅에 떨어지는 커다란 빗방울이 된 것 같다.
요즘 비를 맞고 싶다. 비를 흠뻑 맞고 싶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리에 상처가 나고 싶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서 온몸으로 비를 맞고 싶다. 비를 잔뜩 맞은 채로 세상에 외치고 싶다. 사랑한다고. 사실 널 되게 많이 좋아했다고. 세상과 단절될 때 비로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외칠 수 있게 된다.
내 목소리는 세찬 빗소리에 흩어질 것이다. 내 귀에는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리고 10초가 끝났다고 어서 들어오라고 하는 친구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빗방울이 된다. 비가 된다.
비를 맞고 싶다. 비를 흠뻑 맞고 싶다.
2
배는 마음
안녕하세요, 주제가 ‘비‘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비를 맞으며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해 봐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현재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즐기는 중이고, 이곳에 온 지는 7개월 정도 되었어요. 기후위기 때문인지 잦은 단기 폭우에 힘없는 양우산은 금방 고장 나 버렸고, 우산 없이 산 지는 꽤 되었습니다. 이제는 비를 맞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맞는 비는 또 다르더라고요. 거진 일주일 내내 비와 함께하고 있고, 이곳은 이제 겨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요 근래 비를 맞으며 미소 지었던 순간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바로 엊그제의 이야기입니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는 저에게 날씨는 꽤나 큰 영향을 미칩니다. 출발하기 이십 분 전 비가 내리 쏟아졌고, 출발할 때 즈음 멎어들었어요. 하늘이 나의 출근을 응원하나 보다 했죠. 살짝 힘든 오르막을 오를 때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고, 차들과 함께 달리는 구간이라 긴장한 와중에 ‘내가 빠르게 달려서 비를 더 많이 맞는 건지, 아니면 정말 비가 더 많이 내리는 건지‘ 긴가민가 한 채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어요. 맞은편에서 차들 사이로 자전거를 함께 타고 등교하는 아이와 아이 양육자를 보고는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또 있구나 하고 웃음이 나왔어요. 앞뒤로 온기를 나눠가지고서 등교하는 모습이 퍽 따듯해 보이더라고요. 저렇게 바짝 붙어있으면 양육자와 유대감을 더 느낄 수 있으려나. 자동차는 널찍이 여유 공간이 있잖아요(자동차는 크기가 좀 줄어들 필요가 있어).
강가가 훤히 보이는 산책로를 달릴 때 강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비가 세차게 내렸어요. 빗물이 얼굴을 때리고 옷과 신발을 적시고, 젖은 바지의 물기가 속옷까지 침범하기 시작했을 때, 일터에 도착했습니다. 헬멧을 벗으니 방금 전 샤워를 마친 사람 같았어요. 바지를 조금씩 짜내고 머리를 털고 있을 때 아기 아버님께서 문을 열어주셨어요. 현재 제 직업은 베이비시터입니다. 이 집의 반려견 코라는 늘 저를 반기며 달려와주는데, 마시는 물을 제외한 물이라고는 질색하는 녀석답게, 이날은 젖은 제 몸과 닿기 싫었는지 가까이 오지 않더라고요.
집 안에 도착했을 때 아기 어머니가 아기를 재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작업복으로 바로 갈아입을 수 없었어요. 마른 바닥을 적시며 비가 그친 하늘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을 때, 아기 아버님께서 수건과 율무차를 건네주셨어요. 고소한 율무차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으니 곧이어 아기를 재우고 나오신 어머님께서 저의 안부를 물어주셨고, 필요한 건 뭐든 말하라며 새 옷을 주셨어요. 작업복은 바지뿐이었거든요. 티셔츠와 플리스를 갖춰 입고 고소하고 따듯한 율무차를 마시니, 비를 맞고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웃음이 났습니다. 양말까지 빌리기엔 민망해서 맨발을 감추며 아기와 노는데 그게 감춰질 리가 있나… 어머님이 놀라시면서 왜 말을 안 했냐고, “분명 발이 시려웠을 텐데”라며 걱정을 해주시더라고요. 마음이 내내 따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해는 진즉 져버렸고, 이 궂은 날씨에 한 손으로 유아차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우산이 유아차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번거로운 걸음일 수 있으나, 그 와중에 비치는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다정이 저를 미소 짓게 합니다. 기압과 함께 축축 처지는 기분, 눅눅해져 마르지 않는 옷들, 파란 하늘이 보이려나 싶다가도 금세 몰려오는 먹구름, 그쳤나 했는데 다시 쏟아지는 비, 멈추지 않는 비, 비비비, 지쳐버린 몸과 마음, …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은 날들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다정‘이라는 마음입니다. 물웅덩이, 가라앉은 먼지, 씻긴 공기, 돋보이는 풀잎향, 느린 달팽이, 빗물과 함께 떨어진 낙엽, …… 아, 네가 거기 있었구나. 다정이 내게도 있었구나!
제게 다정을 건네주는, 오늘을 살아가는 멋진 생명들에게. 그대들이 안녕하길 바라는 저의 소박한 다정을 건네봅니다.—다정하려면 체력도 중요한 거 아시죠? 저는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페달을 밟아보겠습니다.—그럼 이만!
3
비와 사랑 · 연대
작년 즈음에, 저는 햇빛이 내가 보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비'와 관련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비와 사랑·연대
한국에서는 비가 안 오는 날이 기본값이라, 비가 오는 날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추억으로 자리를 더 잘 잡는 거 같습니다.
비와 관련된 저의 소소한 에피소드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날씨를 잘 확인 안 하고 나가는 편입니다. 악습관이죠.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이 없어서 곤란했던 적이 한두번 아닙니다.
등교를 하던 고등학생 어느날, 저는 정문에서 등교메이트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왔죠. 커다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얘야'라며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검정색 차 안에서 들렸습니다.
그분이 조수석 창문으로 긴 장대우산을 건네며, 이 우산 쓰라고 주셨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학교 언덕을 향해 가셨습니다.
또 다른 날, 그날은 시험이 끝난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노란우산을 빌릴 수 있었지만, 너무 귀찮고 집도 가까운데
그냥 걸어가자 싶어서 큰 시험지를 반으로 접어 머리 위에 갓처럼 쓰고 가고 있었습니다.
예의상 한 손으로 종이를 잡으며 터덜터덜 사람이 붐비는 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같은 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다행이 가는 길 도중 저희 집 앞을 지나기에, 중간에 인사를 하며 헤어졌습니다.
얼굴과,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같은 학년이었던 그분과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또, 저의 모교 선생님 혹은 구성원일지 모르는 그분이 건넨 우산과 그날의 기억이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덕분에 하루종일 기분이 몽글몽글하고 좋았었거든요.
저에게 우산을 씌워준 이름과 얼굴모를 수많은 분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우산을 씌워, 저의 마음에 환한 해를 띄워주셨습니다.
큰 사랑을 심어주셨습니다. 어쩌면 살아갈 힘을 조금이라도 얻었을지모릅니다.
이 모든 말에 과장은 없습니다.
마법에 걸린 거 같았습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의 호의와 선행이었기 때문일까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받은 사랑을 다른이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며칠내로 깨달은 사실은 이 행동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단 것이었습니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기를 수십번 반복했습니다.
나의 소소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소소한 행복의 순간이 되길 .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주위를 살피며 걷게 됩니다. 다음엔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길.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제 일부가 된 거 같다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하게됩니다.
저의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 빗속에 스쳐간 인연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 들이 있나요?
'비'는 어떻게 여러분들의 추억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나요
ps. 비는 저에게 많은 시련(축제 날 비오기..)을 가져다 주지만, 소중한 기억들이 많기에 마냥 미워할 수 없네요
세상이 더 따뜻해지길 사랑으로 가득해지길 바랍니다.
사소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 그랬듯이
4
여름 착각
서늘한 온도와 높은 상대습도가 만들어낸 촉촉한 공기가 팔에 닿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습도에 둘러싸이는 기분은 언제라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극단적인 여름에 단비를 받아서 살아갑니다. 태양에 말라가다가도 우중충한 장마가 내리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나는 우산 아래에서 아늑하게 걸어갑니다. 그래도 비가 오면 나를 감싸던 더러운 것들이 함께 씻겨내려가는 착각이 듭니다. 즐거운 착각입니다.
겨울 동안에 식물은 봄을 준비하기 위해 웅크리고, 동물들도 꼭꼭 숨겨둔 보금자리에서 잠을 잡니다. 그들은 그렇게 겨울을 보냅니다. 나는 겨울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름이 오면 그 더위를 어떻게든 견디려고, 겨울잠같은 여름잠을 자고는 합니다. 나른한 낮잠의 연속입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아까 꾸었던 꿈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네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꿈이었어. 나도 모르게 불쾌해집니다.
비가 오는 꿈을 꿉니다, 봅니다. 내리는 장마를 감상합니다. 단비가 계속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내 팔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가 나의 더러운 생각들을 씻어줍니다. 거품도 나지 않았는데 참 깨끗합니다. 비누와 샴푸에 대해 썼던 글이 떠오릅니다. 공모전에서 떨어진 글들은 바이트가 되어 노트북 한 켠, 휴지통 옆 폴더에 잠들어있습니다. 그 글들은 다시 열리지 않을 계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먼지가 쌓여갑니다. 그래서 가끔씩 잠든 파일들을 열어 전기 신호들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주어야 합니다.
나는 여름을 착각합니다. 나를 둘러싼 공기도, 습도도, 비도, 그리고 나도 착각합니다. 심지어는 너를 사랑한다고까지 착각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구별할 수 없으니까요. 나의 즐거운 여름, 나의 즐거운 착각입니다.
5
비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아직도 비 와?” 네가 한 말에 답을 해줘야 한다. 어두운 하늘은 봐도 소용이 없다. 빗방울이 옅어서 잘 안 보이는 건지, 비가 안 오는 건지 확신이 안 선다.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길가를 달리는 자동차 전조등에 비가 비친다. 아! 비가 오는군! “비 많이 오는데?” 우산을 펼치며 너에게 얘기한다. 너는 자연스레 나의 우산 안으로 들어온다. 너의 책가방 옆 주머니에 꽂혀 있는 조그마한 우산은 오늘도 예비용이 되었다. 우리의 우산이 부러질 때 쓸 대안. 플랜B.
비 오는 날 밤거리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온전히 우리만 있는 것 같으니까. 우리가 걷는 도로 바로 옆 이 건물 안에서는 누군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겠고, 맞은편 저 건물 안에서는 이미 누군가 자고 있겠지만, 뭐, 어떠하리.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건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 두자. 여기에는 우리만 있는 거야.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 귓가를 때리는 경적,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험한 말들. 이 모든 게 없는 안전한 우리의 영역이야.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너와 나는 오르막길을 걷는다. 말은 없다. 그저 걷고 또 걷는다. 드디어 평지가 나왔다. 우산을 접는다. 핸드폰을 꺼내 김뜻돌 님의 <비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를 튼다. 그리고 시작된 우리의 춤바람 시간. 나왔다, 우리의 전매특허 춤동작. 나는 손을 ㄴ자로 꺾으면서 옆으로 흔들흔들 춤을 추고, 너는 양손을 ㄱ과 ㄴ으로 만든 다음 손을 앞으로 흔들흔들 춤을 춘다. 솔직히 우리 둘 다 이 춤 안 추면 아쉬워서 안 된다.
“아직은 아무것도 몰라, 아마도 넌 그럴 테니, 아무도 보지 않는 지금, 비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이 구간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옷이 흠뻑 젖었다. 너를 보니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음, 한 20번은 더 듣겠군. 한 15번 즈음 더 들었을까. “아~~ 좋다~~!!!!” 너의 신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의 춤동작은 더 커지고 힘 있어졌다. 5번을 더 들었을 때 네가 노래를 껐다. 역시 지금 이 타이밍이지. 개구지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는 네가 보인다. 너의 눈동자에 비친 나 또한 이를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제 집에 가자.” 내 말에 네가 우산을 집어 들곤 포르르 뛰어온다.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점심에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일, 과제 하다가 머리 싸맨 일, 알바 뒷타임 사람이 늦게 온 일, 길 가다가 검은색 고양이를 만나서 한참을 가만히 바라봤던 일.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이 전부 끄집어 나온다. 집에 도착해도 대화는 끊임이 없다. 그렇게 잠에 들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의 오늘을 살았다. 오늘을 두 번 살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말소리가 점차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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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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