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 안부로 시작해, Peanuts 캐릭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되찾고, 각자의 인생책을 나누며 세대·국적을 넘은 우정이 한층 깊어진 밤이었습니다.
일시: 2026년 10월 20일 (화) 저녁장소: TGI Friday's Multiplaza, Panamá
참석: 릭키, 세진, 신애, 영진(첫 참석), 마호, 로미 — 총 6명
흔들린 밤, 흔들리지 않은 안부
모임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의 첫마디는 같았습니다 — "지진, 괜찮으셨어요?" 다행히 모두 무사했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건물이 흔들리는 듯한 감각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이 유난히 반가웠습니다. 급하게 공지된 일정 탓에 몇 분은 아쉽게 함께하지 못했지만, 다음 모임에 꼭 오겠다는 연락을 보내주셨습니다.
시내로 향하는 길, 어둠 속에 할로윈 장식과 벌써 얼굴을 내민 크리스마스 불빛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파나마다운 풍경이죠 — 계절이 바뀌지 않아도, 거리의 색깔은 계속 바뀝니다.
1부 — Peanuts, 만화의 옷을 입은 철학

사전에 준비한 Peanuts 주인공 10명의 소개와 대표 어록 유인물을 나눠드렸습니다. 찰리 브라운, 스누피, 루시, 라이너스, 슈로더, 샐리, 페퍼민트 패티, 마시, 우드스탁, 피그펜 — 한 명 한 명의 어록을 읽으며 각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9월 모임에서 릭키가 《채식주의자》의 첫 문장 "꿈을 꾸었어"에서 출발해 어린 시절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몽상을 즐기던 기억을 꺼냈던 것,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그 몽상가의 이야기가 Peanuts와 자연스럽게 만났습니다.
찰스 슐츠가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간 단 한 편도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그린 17,897편의 만화. 75개국, 21개 언어, 3억 5천만 독자. BBC가 "만화의 옷을 입은 철학"이라 불렀던 그 작품을 우리도 오늘 밤 펼쳐보았습니다.
"앨범은 봤는지", "피너츠를 어린 시절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 질문이 오가면서 각자의 어린 시절이 하나둘 펼쳐졌습니다. 릭키는 담요를 꼭 쥐고 별을 올려다보는 철학자, 라이너스 반 펠트가 자신과 가장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하나만 고르기가 어려웠다는 게 모두의 공통된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애님이 슈로더의 피아노 장면을 가리키며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
"Quien es amante de la música, sabe qué música es eso!!"(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곡인지 알아요!!)
찰스 슐츠는 만화 안에 가끔 실제 악보를 삽입했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눈과 귀가 바로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만화 한 컷이 음악이 되고, 음악이 대화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찰리 브라운은 말합니다 — "In the book of life, the answers aren't in the back." (인생이라는 책에는 뒷장에 정답이 없다.) 그 말이 오늘 밤, 각자의 인생책을 꺼내 드는 순간과 정확히 맞닿았습니다.
2부 — 각자의 인생책, 하나의 밤하늘
Peanuts 속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 "그럼, 11월을 위해 각자의 인생책을 한 권씩 추천해볼까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책들이 쏟아졌고, 그 이유를 듣는 것이 진짜 선물이었습니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Cosmos, 1980) — 영진님 추천

오늘 처음 참석하신 영진님이 꺼내신 책입니다. 우주의 바닷가에서 시작해 별의 탄생과 죽음, 은하의 흐름, 생명의 기원, 그리고 인류 문명의 여정까지 — 칼 세이건은 700페이지에 걸쳐 138억 년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단순한 과학 교양서가 아닌 이유는, 결국 우주 끝에서 발견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1977년 보이저 1호가 64억 km 밖에서 촬영한 지구 — 0.12픽셀의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앞에서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저기가 바로 우리 집입니다. 바로 우리. 그 위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이 살았습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70주 연속 기록, 출간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과학서 중 하나입니다.
"조금 더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면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빅 히스토리》도 좋습니다"라는 따뜻한 가이드까지 덧붙여주셨습니다. 빅뱅부터 오늘날까지 문자 그대로 모든 역사를 하나의 틀로 이해하게 해주는 거대사 입문서입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Siddhartha, 1922) — 세진님 추천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졌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하나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길을 떠나는 청년 싯다르타의 이야기입니다. 고행자의 숲으로, 붓다의 곁으로, 사랑과 부(富)의 도시로, 그리고 마침내 강가의 뱃사공 곁으로 — 그가 걸어간 모든 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원이었습니다. 헤세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적 유산을 시적으로 승화해, "가르침은 전달할 수 없고 오직 경험만이 깨달음이 된다"는 메시지를 단순하고도 서정적인 문장 안에 녹여냈습니다.
세진님이 짚어주신 것처럼, 코스모스가 우주 바깥에서 인간을 발견한다면, 싯다르타는 인간 내면에서 우주를 발견합니다 — 출발점은 다르지만 도착지는 같은 곳입니다.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1994) — 신애님 추천
"미학이, 예술이 이렇게 쉽게 읽히는 것이었다니!" —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감상입니다. 에셔의 불가능한 계단, 마그리트의 파이프, 피라네시의 감옥을 길잡이 삼아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3권짜리 지적 모험이죠. 진중권 특유의 말을 거는 듯한 구어체 문장이 철학, 정신분석학, 기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어렵지 않게 풀어냅니다.
신애님이 말씀하셨듯이, "아름다움이란 개인의 인생과 의미에 따라,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각자의 기준 위에 서 있었다는 것 — 독서 모임에서 같은 책을 서로 다른 눈으로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El Poder del Ahora / The Power of Now, 1997) — 마호님 추천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이 아닌 삶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전부이자, 동시에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진실입니다. 톨레는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생각과 감정 —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 이 곧 '나'라고 착각하는 것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은 '현존(Presence)', 즉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삶의 연습입니다. 실제로 한 독자는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 선생님이 처방전처럼 건네준 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파나마에서 과거(한국)와 미래(정착) 사이를 오가며 흔들리는 우리에게, '지금'이라는 닻을 내려주는 책입니다.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Cien Años de Soledad, 1967) — 로미님 추천
콜롬비아의 가상 마을 마콘도에서 부엔디아 가문 7대에 걸쳐 펼쳐지는 100년간의 서사 — 마술적 사실주의의 정점이자,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입니다. 마르케스는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일은 절대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가 그린 마콘도의 기적과 재앙, 사랑과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죽은 자가 돌아와 말을 걸고, 온 마을이 불면증에 걸리는 이야기가 — 놀랍게도 —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라틴아메리카 한복판인 파나마에서, 스페인어로 이 책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마술적 사실주의입니다. 로미님이 어린 시절 빠져들었던 그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셨죠 —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님을 직접 확인해보시길.
《풀꽃》 나태주 (2015) — 릭키 추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이 세 줄이 10년간 교보문고 최다 판매 시집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1971년 등단 이래 50년 넘게, 충남 공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써온 나태주 시인. 광화문 한복판에 이 시가 내걸렸을 때, 출퇴근길 사람들이 멈춰 서서 읽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오히려 "이 시는 한국에서 폐기되어야 한다"고 깜짝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 한국인들의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이 시가 사랑받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짧고 담백한 언어 안에 사랑과 그리움, 일상의 온기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코스모스의 138억 년도, 백년의 고독의 100년도 결국 이 세 줄 앞에서 멈춥니다 — 지금, 눈앞의 사람을 자세히 보라는 것.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Project Hail Mary, 2021) — MJ님 추천
"영화보다 꼭 소설을 먼저 읽어보세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난 중학교 교사 라일랜드 그레이스. 함께 탑승한 동료 둘은 이미 숨졌고,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씩 되돌아오는 기억 속에서, 그는 자신이 태양을 죽이고 있는 미지의 미생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미션에 투입되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광활한 우주에서 예상치 못한 존재와 마주합니다 — 언어도, 종(種)도, 생존 환경도 완전히 다른 외계 동료와 과학적 문제 해결과 우정을 동시에 쌓아가는 여정. 우주를 배경으로 결국 인간다움, 신뢰, 다정함이 무엇인지 묻는, 단순한 우주 SF를 넘어선 우정과 협력의 이야기입니다.
2026년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가 이미 개봉했지만, MJ님의 당부처럼 소설의 몰입감은 영화와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별자리 한 바퀴 — 밤이 깊어지다
인생책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재미있는 고백이 하나 나왔습니다 — 처음엔 용맹한 사자자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처녀자리였다는 것. 그 순간부터 감수성이 더 풍부해졌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생일과 별자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코스모스에서 시작해 별자리로 끝나는 밤이라니 — 슐츠가 봤다면 스누피 개집 위에 누워서 미소 지었을 겁니다.
11월 예고 — 같은 책, 다른 눈
11월에는 오늘 추천된 인생책 중에서 골라 읽어온 뒤, 같은 책을 서로 다른 눈으로 어떻게 느꼈는지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나이도, 국적도, 세대도 다른 우리가 같은 문장 앞에 서면 —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그리고 12월, 올해의 마지막 모임에서는 2026년 Libro Puentes에서 읽은 모든 책 중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한 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In the book of life, the answers aren't in the back."— Charlie Brown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참가 문의: WhatsApp 610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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