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이 오면 정동진으로

2022.08.17 | 조회 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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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밤도 정동진에서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어.

우리가 처음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갔던 게 2019년이었는데, 벌써 3번째 방문이다. 이젠 연례행사처럼 여겨져 안 가면 허전할 듯싶어. 문득 돌아보니 불과 3년 사이에 상황도 우리 감흥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뭐든 처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인지 아직도 정동진독립영화제 하면 2019년의 장면들이 떠올라. 그때 너는 체코에 머물다 돌아왔고 나는 여름 합숙을 끝으로 학보사를 은퇴하던 시절이었더라. 뭣도 모르고 설레서 정동진에 10인실 게스트하우스 방 잡고. 일출 보겠다고 새벽 내내 바다에 앉아서 수영하는 영화제 자원활동가들을 신기하고 부럽게 쳐다봤었어. 그러고도 다음 날 점심 정동초 강당에 가서 기분 좋은 밥상도 챙겨 먹고, 권해효 배우님 옆에서 설거지도 하고. 5교시 영화수업도 신청해서 정동초 교실에서 김새벽 배우님을 보기도 했지. 정말 알차게도 즐겼다. 올여름 정동진은 지독하게 더웠고, 익숙하게 강릉 시내에 숙소를 잡았고, 우리에겐 더 이상 여름방학은 없지.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린 지 올해로 24년이 됐다고 해. 2022년에도 어김없이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라는 슬로건을 수많은 관객과 외칠 수 있는 건 대안·독립·낭만의 영화제라는 초심을 여전히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어.

바다를 옆에 끼고, 여름방학을 맞이한 초등학교의 운동장에 모여 밤이 깊을수록 선명해지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 낭만적인 순간은 드물 듯해. 나는 동네 축제 같은 소박한 화기애애함이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가장 큰 미덕이라 생각해. 정동진의 레드카펫은 교문을 넘어서는 모두를 향해 깔려있지.

ⓒ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코로나 상황을 제외하고는 티켓팅도 없어서 들어오는 누구나 영화제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아. 관객의 입장에서도 비경쟁 영화제랄까. 이에 야외 상영이라는 점이 더해져 함께 영화를 본다는 행위를 만끽할 수 있는 시공간이 만들어져.

극장에서는 조용히 미소 짓고 말 것도 운동장에선 옆 사람과 함께 깔깔 웃게 되더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영화를 보고, 감독과 배우가 무대에 올라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를 들으며 같이 웃고 박수치고 놀라고, 바람도 비도 함께 맞다 보면 무언가 연결되는 걸 느껴. 마치 공연의 성질을 지닌 영화제라고 해야 할까. 음악 페스티벌처럼 계속 이어지는 무대를 함께 보며 힘껏 호응하는 거지. OTT 시대에 채워지지 않는 함께 영화 보기라는 바랜 감각이 생생 해지는 순간이야.

ⓒ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또 정동진독립영화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별밤우체국 아닐까! 별밤우체국에서 우리는 항상 1년 후 도착하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어. 작년 정동진에서 썼던 편지가 집에 도착하면 그 순간의 조각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렇게 작년 여름을 읽고, 올여름의 이야기를 만들러 정동진으로 또다시 향하는 거지.

영화제를 참석하고 자원활동가를 하면서 영화제 존재 자체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어. 영화제 진행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수고로움이 들고, 그 수고로움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영화제가 진행되고, 관객 또한 시간을 쓰고 먼길을 달려 함께할 때 영화제가 존재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다 그저 영화가 좋서, 영화를 같이 보는 순간이 좋아서라는 믿을 수 없을만큼 나이브한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볼 때마다 놀라워.

ⓒ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앞으로도 목적 없이 영화를 좋아하길. 우리의 여름밤은 정동진에 있길 바라.

FROM. L


🏆제24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 동전상 수상작🏆

전세계 유일의 현금박치기 관객상! 당일 상영작품 중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에 관객들이 직접 투전하는 방식으로 선정됩니다.

<빨간마스크 KF94> 김민하 감독

일본 귀신 '빨간마스크'가 마주한 코로나 펜데믹.

 

<벌레> 김해리 감독

수현은 난생처음 상을 받는다.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돌아다니지만,자랑 한번 하기가 쉽지 않다. 

 

<심장의 벌레> 한원영 감독

미숙과 준기는 더 이상 같이 사는 부부가 아니지만, 준기는 매년 한 번씩 미숙의 집에 밥을 먹으러 온다. 올해도 빈둥빈둥 종일 소파에 누워 음식을 기다리던 준기는 딸 은영이 집에 도착하자 미숙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제안한다. 미숙은 마지못해 산책을 따라나서는데, 산책길에 미숙은 준기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어려운 고백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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