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타쿠인가 뭔가 그거냐?

시도 때도 없이 벅차오르는 삶을 위하여

2022.07.22 | 조회 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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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영화과를 졸업하진 않았지만 영화 주변을 맴맴 도는 우리에게 운명 같은 영화가 나타났어! 영화를 사랑하는 이, 영화를 사랑하지만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가 주인공인 영화라니.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영화제에 가면 나와 닮은 영화를 꼭 한 편은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제목만 보면 액션 영화인가 싶은데, 춘화레인저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 꿈꾸고 열망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27분 남짓의 다큐.

영화는 요훈이 비디오 가게에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 영상시대라는 간판을 보니 나의 첫 비디오가 생각났어. 어릴 때 친한 친구 집에서 '책과 비디오 마을'이라는 가게를 운영했거든. 엄마 손 잡고 가서 빌려온 비디오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쿠스코쿠스코>, <홍반장> 등이었어. 아무래도 엄마가 콘텐츠 조기 교육을 한 것 같아. 영화에 빠지게 된 건 다 엄마 덕(?) 탓(?)인 거지. 엄마는 항상 '자식들이 혼자 가서 비디오 빌려올 만큼만 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셨다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때부터 영화에 빠진 게 분명해.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되감아 재생하고 또 보고. 머리가 조금 큰 다음엔, 직접 비디오 방에 갔는데 수줍었지만 품 가득 빌렸던 기억이 나. OTT 세상이 된 현재로선 상상도 못 할 호랑이 담배 태울 적 이야기 같네.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인데 말이야.

비디오 가게에 대한 감상 때문에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를 다시 잡아볼게. 가게에서 본인 '덕질' 콜렉션을 위해 비디오를 사려던 요훈은, 춘화에게 이런 소리를 들어. "너 오타쿠인가 뭔가 그거냐?" 그 순간 요훈도 영화를 보던 나도 동시에 타격을 받아버렸지. 하지만 여기서 짚고 나갈 게 있어. 덕후는 덕후를 알아보는 법👀 알고 보면 춘화도 남다른 '영화 덕후'야, 비디오 가게를 운영함과 동시에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세 단계.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정확한 출처가 없는 말이라고 하지만, 영화광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기에 여태껏 전해진 명언이라고 생각해. 춘화는 결국 영화를 만들어냈으니 그야말로 완전한 영화 덕후가 된 것이지. 

영화를 보는 내내 춘화의 눈빛을 머리에 새겼어. 꿈꾸는 사람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거든. 요즘 흔히 말하는 '동태눈'의 인간은 꿈이 소진된 사람이거나, 본인이 원하는 일로부터 멀어진 사람일 수 있어. 그래서 난 매번 거울을 보며 내 눈빛이 얼마나 흐릿해졌나 확인해.

덕후의 눈을 되찾기 위해, 영화를 꺼내 보며 노력 중이야.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jpg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jpg

예로부터 오타쿠라 하면 '신기한, 마이너, 이상한' 등의 키워드가 따라오는데, 난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고 생각해. 영화 속 전대물 덕후 요훈과 영화 덕후 춘화가 결국 지구를 구한 것처럼. 대상을 무한히 사랑하고 몰입할 수 있는 힘은 아무나 가질 수 없거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2년 연속으로 내건 stay strange (이상해도 괜찮아)라는 슬로건처럼, 우리 계속 이상한 덕후로 살아가자.

아마 춘화도 요훈도 영화제를 휩쓰는 듀오가 되었으리라 믿어. 가끔 섬광을 맞아 요훈처럼 스러진다면, 서로를 구원해주자. 70살에도 영화하는 우리이길.

 


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으니
트뤼포 감독의 3단계에 다다랐네.
상영회에 꼭 초대해줘!

FROM.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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