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레터

작은 박새의 부고

2025.06.05 |
from.
a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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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

평화와 서로 배움의 이야기, 피스모모의 이야기를 전해요.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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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는 매주 월요일 오후 2시에 사무국 회의를 합니다. 교육출장이 많은 피스모모의 특성 상 일주일에 하루, 사무국이 모두 함께 모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기도 해요. 지난 월요일, 여느 때처럼 회의중이었는데, ‘쾅’하고 사무실 유리창에 무언가 세게 부딪혔습니다. 

아주 작은 박새였어요. 정면에서 날아온 것도 아니고 갑자기 대각선 방향으로 내리꽂히듯 창에 와서 부딪혔는데, 얼마나 전속력으로 날아왔는지, 그 작은 머리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컸어요. 베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박새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다들 회의를 중단하고 우왕좌왕 분주해졌지요. 

사무실에서 지낸지 2년이 되어가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새들이 그렇게 날아온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사무실에서는 주변에 많이 보이는 큰부리 까마귀들에게 쫒긴 것이 아닐까 추정했어요. 다급하게 도망치다가 난 사고가 아니었을까 하고요.

수건을 가지고 나가 쓰러져 있는 박새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습니다. 몇 년 전, 산비둘기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고 쓰러진 것을 목격한 적이 있거든요. 정신을 잃은 산비둘기에게 물을 먹이고, 그늘 아래 두었더니 몇십분쯤 지나 힘을 되찾고 날아갔던 기억이 났어요. 

사무국 사람들은 박새를 위해 물을 가져오고 넣어둘 상자를 찾느라 모두 분주했어요. 박새의 입에 물을 흘려주었더니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눈을 떴습니다. 오, 괜찮은가 보다 싶어 상자에 넣어주려 하는데, 제 손에서 작은 몸이 축 처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 이미 떠났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손가락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박새의 몸이 여전히 따듯하고 보드라왔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료들이 준비해 준 상자 안에 수건을 갈고 박새를 눕혀두고,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함께 회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조금 일찍 나가보아야 하는 일정이어서 혹시 살아난다면 잘 날려보내주고, 아니라면 잘 부탁한다 이야기하고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쿨쩍거리는 저의 어깨를 다독여준 동료들 고맙소.)

계속 자책감이 들었어요. 제가 들어올릴 때 힘이 너무 셌을까, 물을 먹인 것이 잘못일까, 산비둘기는 커서 괜찮았던 걸까, 처음에 아예 건드리지 말고 지켜만 볼 걸 그랬나… 사실 저도 방법은 잘 모르고, 일단 살리고 싶은 마음에 몸이 먼저 반응해버렸거든요. 박새가 깨어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동료들이 박새를 묻어주었다고 알려왔습니다.

빨간 목마가렛 옆, 작은 박새의 무덤 
빨간 목마가렛 옆, 작은 박새의 무덤 

 

살아있던 존재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게 되는 그 순간은 언제나 당혹스러운 것 같아요. 따스하던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순간, 서서히 차가워지는 피부와 굳어지는 몸의 느낌. 뜻하지 않게 작은 박새의 임종(臨終)을 지키게 된 저는, 그간 저에게 도착했던 부고들을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내 동료의 부고,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셨던 성소수자 활동가님의 부고, 잠깐 만나뵈었지만 깊이 애정하게 되었던 작가님의 부고, 지난 5월 22일,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의 부고, SPC 공장에서 또 다시 발생한 끼임사고로 돌아가신 노동자님의 부고,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다시 발생한 끼임사고로 돌아가신 노동자님의 부고,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사람이 제안한 가족여행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엄마와 두 아들의 부고, 산불현장에서 구조되었지만 너무 심한 화상으로 치료 중 별이 된 고양이 ‘나비’의 부고, 아침마다 펼쳐보는 종이신문의 한 구석에 작게 실린 무연고자의 부고…삶의 순간들은 어쩌면 온통 부고로 채워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케빈 킬리언이 죽었다. 그리고 추도식이 있었다. 내 친구들은 죽어가고 있다. 바버라 바그는 지난해 여름에 죽었다. 팀은 1990년에 죽었는데 에이즈 때문이었고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시인 아일린 마일스(Eileen Myles)가 쓴 글입니다. 당시 대선에는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로스 페로가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아일린 마일스를 지지하며 조이 레너드(Zoe Leonard)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도 다시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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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하여 백혈병에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열여섯 살에 낙태를 경험했던 대통령을 원한다. 두 명 중 덜 악랄한 자가 아닌 다른 대통령 후보를 원한다. 인생의 마지막 사랑을 에이즈로 잃어버린 사람, 아직도 누우면 매일 눈 앞에서 그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 그를 품에 안고 있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실직자, 명예퇴직자가 되고, 성희롱을 당해본 경험이나 동성애자로서 학대를 당하고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무덤에서 밤을 지새고 자기 집 잔디밭에서 십자가가 불태워지는 걸 보고 강간에서 살아남은 그런 사람을 원한다. 사랑을 하고 상처를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를 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은 사람을 원한다. 나는 흑인 여성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충치가 있고 태도가 안 좋은 사람, 그 역겨운 병원 밥을 먹어본 사람, 다른 성(性)의 복장을 하고 마약을 해보고 치료도 받아본 사람을 원한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 본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 대통령은 항상 광대여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대통령은 항상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여야 하는지,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여야 하는지, 항상 도둑질을 하면서도 결코 처벌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조이 레너드,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1992)

 

이 시를 읽은 제 지인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불편하다고 했어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부당하고, 밀려난 존재들을 가장 중심으로 불러들이고자 하는 마음, 취약한 존재들을 지나칠 수 없는 그 마음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 모모레터를 마무리하며, 한 달 후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고 적었는데요. 6월의 모모레터를 띄우는 오늘은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 둘째날입니다.

모두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그 선택들이 모여 지금, 여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계속해서 만들어져가는 무엇이어서, 앞으로의 선택들도 계속해서 중요하고, 의미있겠지요.

서로의 기대가 어긋나고,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도 있지만, 혐오와 갈라치기에는 단호한 결별을 선언하고, 그 너머의 다양성들은 가능한 더욱 얽히고 설켰으면 좋겠습니다.다른 존재들이 서로 더욱 얽히며, 그 취약함을 나누어가지는 사회, 그래서 더 이상 취약함이 취약함이 되지 않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배롱나무 아래, 정말 작았던 아기 고양이의 무덤
배롱나무 아래, 정말 작았던 아기 고양이의 무덤

 

피스모모의 정원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습니다. 하나는 배롱나무 아래, 작은 아기고양이의 무덤, 그리고 빨간 목마가렛 옆, 작은 박새의 무덤. 지나치고 싶은 순간들을 지나치지 않을 때,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을 때, 이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떠난 존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이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2025년 6월 5일, 
피스모모 아영 드림 

 

 

참고자료

아일린 마일스 저, 송섬별 옮김, <낭비와 베끼기: 자신만의 현재에 도달하는 글쓰기에 관하여>

https://www.macba.cat/en/obra/r5775-i-want-a-president/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2/sep/26/i-want-a-president-who-has-been-gaybashed-americas-underground-anthem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36709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98133.html

https://www.animals.or.kr/center/essay/70592

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36645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03113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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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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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후의 프로필 이미지

    선후

    0
    23 days 전

    이땅에 생명 가진 모든 이, 차별 받는 모든 이,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고통을 극복하고 좀 더 평화롭고 억압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ㄴ 답글 (1)
  • Jev의 프로필 이미지

    Jev

    0
    23 days 전

    무덤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다른 새의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새를 살리는 점박이 스티커를 붙여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모든 안타까운 죽음은 그러한 실천적 노력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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