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 기승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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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 손가락이 이끄는대로 따라가 도레미🎶
주민 / 자연이자 사슴의 이야기들에 관해
- 손가락이 이끄는대로 따라가 도레미🎶
안녕하세요, 온다입니다.
종강 후 저의 최근 일상은요…유유자적 한량이 따로 없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데다 특별히 할 일조차 없거든요. 다만 새로운 루틴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가끔 아침이 아닐 때도 있지만- 물을 마시고, 피아노를 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요. 잠도 덜 깬 상태에서 한 시간 반 정도 피아노를 치고 나서야 하루가 제대로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아침 창을 통과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과 하얀 솜이불, 그리고 하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듭니다.
이전부터 엄마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셨어요. 몇 년간 고민만 하시길래 ‘지금이 제일 빠를 때니 어서 배워!’라는 저의 재촉 끝에 결국 시작하게 되셨습니다. 동시에 집에도 피아노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해오던 Y사의 피아노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사라진 지 6년 만이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빈자리를 채워주던 거라지 밴드가 있었지만…역시 타건감 있고, 스케일도 넓은 실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요. 원래 방학이 되면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려 했는데 피아노 덕분에 그러려던 계획이 대폭 수정되었어요. 피아노와 함께 딸려 온 클래식50 악보집에 재미 들렸거든요.
오랜만에 피아노를 치다 보니 악보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음도 음이지만, 박자가 어려워서요. 기본 중의 기본인 4분음표조차 감을 못 잡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나마 피아노에 내장된 곡들이 많아, 청음을 통해 겨우 박자감을 익히고 있습니다. 유구한 버릇이라 오랜만이라는 것은 핑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어렸을 때도 헷갈리는 부분은 선생님께 연주해달라고 하던 아이였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난이도 별 세 개인 아는 곡이, 별 하나인 모르는 곡보다 비교적 더 쉽게 느껴집니다. 전자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후자는 홀스트의 ‘목성’입니다. 그래도 이름만 알았던 곡을 알게 되어 좋았어요. 항상 클래식에도 관심이 있었거든요. 계속하다 보면 클래식으로도 관심사가 확장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긴 점은 더 쉬운 악보도 어려워할 때가 많지만, 어릴 적부터 꾸준히 쳐오던 곡들은 악보 없이도 연주가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바로 히사이시 조의 ‘Summer’와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인데요. 피아노 연주의 근본은 역시 클래식이지만 이런 뉴에이지와 재즈풍의 연주도 좋아해서 악보집을 새로 사볼까 고민 중입니다. 사실 50개 곡 중 칠 수 있는 난이도의 곡들은 이미 다 끝낸 상태여서요. 나머지 곡들은 제겐 아직 너무 어렵더라고요😂
페블스를 처음 시작할 때엔 <일간 이슬아>처럼 일상을 속속들이 담은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언젠가 피아노 연주를 구독자님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P.S.
연주하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엘가의 ‘사랑의 인사‘ 도입부예요. dolce는 일반적으로 부드럽고 우아하게 연주하라는 뜻이지만, 사랑의 인사라서 그런지 원형 그대로의 뜻인 ‘달콤하게‘로 다가오더라고요. 구독자님의 오늘도 달콤한 하루가 되길!
- 자연이자 사슴의 이야기에 관해
최근에 송소희의 미발매곡 ‘Not a Dream’ 라이브 영상이 인급동 순위에 올랐어요. 구독자님도 그 영상을 보셨을까요? 저는 쇼츠로 먼저 접한 뒤 풀 영상을 찾아 봤었습니다. 익숙한 밴드사운드 위에 상대적으로 낯선 민요 창법이 얹어지니까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앨범 단위로도 자주 듣게 될 것 같아요.
거기에 더해, 저는 추천 영상으로 뜬 송소희의 수록곡 ’사슴신(Forest Spirit)’ 라이브 영상의 제목을 보고 혹시 내가 아는 사슴의 이야기인가 싶어서 영상을 틀어봤답니다. 댓글들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에 나오는 사슴신을 모티브로 만든 곡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어서 괜히 곡을 더 돌려듣게 되었죠. <원령공주>의 사슴신을 어떻게 곡으로 표현하게 된 걸까요?
먼저 사슴신에 대해 알아볼까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나오는 신은 대부분 상징보다는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생과 사에 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세계의, 특히 인간들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들을 무용한 태도로 관망하며 선과 악을 구분 짓지도 않죠.
사실 제가 이 수록곡을 들으며 떠올렸던 사슴 상징이 하나 더 있는데요. 지난 학기에 전공 수업 시간에 읽었던 Чингиз Айтматов의 <하얀 배(Белый пароход)>라는 작품에서 나온 사슴입니다. 이 작품의 뿔이 달린 암사슴은 ‘부구족’이라는 부족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창조자이자 부족의 민족성을 상징이며, 민족이 터를 잡은 마을의 상징으로도 여겨져요. 원령공주의 사슴신보다 인간의 일에 비교적 개입을 하는 편임을 확인할 수 있죠.
제가 이 두 가지 상징을 함께 떠올린 이유는 그들이 자연을 상징할 때 드러나는 공통점 때문이었습니다. 원령공주의 사슴신과 하얀 배의 사슴 모두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존재라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원령공주>의 사슴신도 자연과 평화(선의 일부)를 상징한다고 해석해 볼 건데요. 이것을 알려면 그 대척점을 먼저 언급해야겠죠.
<원령공주>의 인간들은 지역 간, 부족 간 전쟁을 겪고 있습니다. 총기를 사용하는 신식 군대와 총칼을 사용하는 구식 군대의 전투를 보여주는 장면도 존재하죠. 인간들의 전쟁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에게 원인 모를 감염병(저주)을 전이하는 재앙신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재앙신은 사슴신이 있는 숲까지 오염시키려고 하죠. 사람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전쟁, 재앙신, 숲을 통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하얀 배>의 사슴은 인간의 극히 일부인 부구족을 상징하기 때문에 사람에 의해 파괴되는 현상 역시 부족 안에서 발생합니다. 주인공의 삼촌이 이 부족 안에서 도시와 탈양심성을 상징하며 파괴적인 언행을 보여줍니다. 도시를 상징하는 이유는 민족성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을을 떠나 도시로 향하며 부구족으로서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작품 후반부에 그들의 무지에 따른 폭력성은 사슴을 향하죠. 삼촌을 비롯해 도시를 지향하는 인물들은 민족의 상징인 사슴을 그저 사냥감으로 취급하고, 결국 사냥하여 잡아 먹기에 이릅니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을 민족을 만든 신적 존재인 사슴을 사냥하고 먹는 모습을 통해 비쳐주죠.
또 다른 차이점은 이러한 파괴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입니다. <원령공주>의 주인공은 악에 저항하며 싸우지만, <하얀 배>의 주인공은 민족성의 상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에 뛰어 듭니다. 후자의 주인공이 더 어리고 힘 없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충격이 더 컸습니다. 사슴 상징이 파괴되는 모습 역시 더 잔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원령공주>의 사슴신과 숲은 끝내 구해지지만, <하얀 배>의 뿔 달린 암사슴은 그대로 파괴되어버리니까요.
이렇게 사슴을 그려낸 두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두 창작자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을 표현하였죠. 그렇다면 송소희의 음악은 사슴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저는 <원령공주>의 주인공이 처음으로 사슴신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장면이 저절로 그려지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제가 주인공이었다면 그 형상에 눈길을 빼앗겨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쳐다봤을 것 같아요. 압도적인 자연을 향한 경외심을 느끼는 찰나를 잘 표현한 곡인 것 같습니다. 구독자님은 어떤 작품의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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