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에디터가 아닌 다른 분들의 조약돌들은 어떠셨나요?
언젠가는 구독자 여러분들의 조약돌 이야기를 레터에 실어보고 싶어요.
그럼 목요일의 특별호도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
Mon
유니 / 나를 나답게 만들기 위하여!
링고 / 방구석 작가의 이야기 쓰기
Thu
하늘 / 왕의 후원을 거닐어 보다
후라이 / 유럽의 겨울엔 울지 않아
- 왕의 후원을 거닐어 보다
안녕하세요. 주민의 동반자 하늘입니다 :)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더 재미있는 시간은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취향이나 취미를 공유했을 때 다른 사람도 그 취미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주민 양과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데요, 바로 고궁 산책입니다.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집에 가만히 있기는 싫고 만날 사람은 없을 때, 가까운 창덕궁이나 경복궁으로 가 해설을 들으며 걷고는 합니다. 만 24세 이하는 무료입장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금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더 열심히 다니는 것 같기도 해요.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창덕궁 후원입니다. 창덕궁 후원은 바깥출입이 어려운 왕족을 위한 정원으로, 숨겨진 정원이라 해서 ‘비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정원이라 해서 ‘금원’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지금까지도 금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예매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절별로 방문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번 가을 단풍 구경은 인터넷 예매도, 현장 예매도 장렬히 실패했지만 내년을 노려보려 해요.
지난 여름, 주민 양과 처음 후원에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것들이 아직도 떠올라요. 단아한 한복을 입은 해설사님의 차분한 음성과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 서울이 아닌 것만 같은 푸릇한 냄새 같은 것들이요. 언덕을 지나면 여기 어디서 봤는데? 하는 장소가 나오는데 바로 부용지입니다. 사극 드라마에서 꼭 나오는 장소가 이곳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연못에 가득한 연꽃들과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들이 저를 마치 백투더 조선으로 보내준 것 같은 기분.
후원에는 여러 개의 정원이 있는데 부용지가 그 첫 번째 정원으로 휴식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랍니다. 사진 속2층짜리 건물이 바로 규장각이고 그 옆에 있는 영화당은 과거시험에 최종적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불러 왕이 보는 앞에서 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곳입니다. 후원에 대한 첫인상을 강렬하게 남기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규장각이나 부용정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영화당은 앉아도 된다고 안내해 주셔서 저도 한 번 앉아봤는데요... 아 이곳에 앉으니 시험을 치르는 선비를 응원하는 임금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러더라고요 하하!!
여러분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보셨나요?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냐고요? 저도 해설을 들으면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갑자기 왜?’ 같은 반응을 보였답니다. 박보검이 연기한 세자가 바로 효명세자인데, 이 후원 뒤쪽으로 갈수록 효명세자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 많이 등장합니다. 부용지를 지나면 두 번째 정원 애련지가 있어요. 애련지 바로 앞에는 궁궐 안에 있는 건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작고 소박한 건물이 나옵니다.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당시에 공부를 위해 지은 서재라고 합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을 본방송으로 시청하던 제 안의 오타쿠 기질이 깨어나서 이때부터 효명세자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이걸 어쩌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지은 연경당이라는 곳이 해설의 마지막 장소인데요 저는 이곳이 제일 좋더라고요. ’궁궐 안에 있는 사대부의 집‘, ’왕족들의 백성 주택 체험‘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게 만드는 건물이었어요. 넓은 마당과 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 초록 잎, 계단 같은 것들이 제 취향을 저격하는 요소들이었습니다.
제가 저의 취미를 제대로 소개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땐 마음이 급해지잖아요. 말하고 싶은 건 많은데 어디까지가 적당할지... 그런 고민이 이 레터를 쓰는 내내 드네요.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창덕궁 후원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제가 소개한 곳 말고도 여러 전각과 정원이 있으니 여러분도 시간이 될 때 꼭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걸 추천할게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럽의 겨울엔 울지 않아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리는 후라이입니다. 구독자님은 '유럽'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낭만과 꿈,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 대학생 배낭여행의 종착지, 전통을 고수하는 대륙…
저의 경우, 별 생각 없이 떠난 서유럽 6개국 패키지 여행으로부터 유럽을 향한 짝사랑이 시작되었어요. 그 짝사랑이 10년이 지나도 흐려짐 없이 더욱 선명하게 부풀어올라 지금 이곳, 프랑스에 저를 데려온 게 아닐까 싶네요. 약 5개월동안 프랑스에 거주하며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 제가 사랑하는 곳에서 계절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무더운 8월은 푸른 신록이 가득하여 여름의 정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도시인 릴은 프랑스 내에서도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가을의 정취를 맞았던 것 같습니다. 가을을 유럽에서 보내는 것은 처음이라, 괜히 센치한 마음이 들기도, 울적하기도, 그럼에도 설렘이 비집고 나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시간은 퓨즈 없이 흘러 어느새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한국의 겨울은 반전없이 춥겠지요?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영하의 기온과 한파가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겨울을 많이 사랑하게 되었어요. 계절마다 특별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냄새에 민감한 저는, 그 계절 공기가 바뀌는 순간을 특히 사랑하는데요. 겨울에는 알 수 없는 창백한 냄새가 온몸으로 밀려 들어올 때가 좋더라고요. 매년 비슷한 냄새의 공기지만, 또 매년 맡을 때마다 초등학생 시절 눈을 맞으며 친구들과 눈 싸움을 했던 시절이 떠올라요. 그럼 또 매년 조금씩 자라는 제가 대견하면서도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12월 무렵 유럽의 겨울은 그 창백함 속에서도 크리스마스 특유의 따뜻함이 있어서, 올해 겨울은 마냥 춥지만은 않게 보내고 있어요. 구독자님도 알고 있듯이, 유럽은 크리스마스에 매우 진심이거든요! 이르면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거리에 달기 시작해서 12월 한달은 매일이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져요. 반짝이는 주황 불빛들과 거리 곳곳에 산타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먹는 따뜻한 계피 향 뱅쇼가 이 추운 겨울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어줘요. 한국에서의 저는, 12월 내내 집에서 빈티지 캐롤 재즈만 들으며 약간은 밋밋한 연말을 보냈기에 이런 성대한 축제 분위기의 12월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구독자님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무엇인가요? 또 그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제가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될 때마다 하는 질문인데요, 각자 자기만의 취향과 가치관이 드러나서 흥미롭더라고요. 일단 저는 10대 시절에는 벚꽃이 만발한 봄을 가장 좋아했고, 스무살이 넘어서부터는 쨍한 연두색이 거리를 물들이는 5월의 초여름을 가장 좋아했어요. 그리고 20대 중반이 되어가는 지금은 9월, 10월 무렵의 가을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좋아하는 계절이 바뀌는 것도 참 신기하네요. 영원히 좋아할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다른 취향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 이 과정이 곧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지요. 새해가 한달도 남지 않은 지금, 겨울의 추운 공기까지 더해져 이런 감성적인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시간이 흐르는 것에 더 이상 아쉬움을 갖지 말고 어림과 멀어지는 것에 슬픔을 느끼지 말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피드백 남기기⬇
민짱🌈 : 이 세상의 귀여운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제토🧚 : 주로 갓생을 추구합니다. 밖으로 쏘다니는 외향 인간.
주민💎 :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고양이가 우주 최고입니다.
온다🫧 : 직업은 트래블러, 취미는 여유와 낭만 사이에서 유영하기.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