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소주병뚜껑을 만들 수 있는 업체는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 단 두 곳입니다. 각종 페트병, 맥주병, 위스키병, 브랜디병 등등의 병뚜껑은 일부 다른 업체도 생산하지만 참이슬, 처음처럼 등의 초록색 소주병뚜껑은 딱 이 두 업체에서만 생산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병뚜껑이 뭐 대단한 첨단 기술이라고 두 회사만 만들 수 있는 걸까요?

이유는 다름 아닌 세금입니다. 2023년 기사에 따르면 1380원짜리 참이슬 후레쉬 1병에 세금만 617.1원이라고 합니다. 세금의 비중이 상당히 크죠? 이렇게 걷히는 세금이 연간 조 단위에 이릅니다. 당연히 탈세(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음), 탈루(소득 자체를 적게 신고해 내야 할 세금을 줄임)를 막을 방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탈루를 막을 방법이 바로 '납세 병마개'입니다. 국세청이 주류업체의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해 1972년에 도입한 제도입니다. 주류 제조업체는 생산한 술을 국세청에 신고하고 병뚜껑 제조업체는 생산한 병뚜껑을 신고하게 하여 양쪽 수량을 비교해 탈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낼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와 비슷합니다. 프랜차이즈 카페 가맹점을 낸다면 본사에서 가맹점의 수익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원두나 브랜드 로고가 찍힌 컵 등을 매장에 공급하는데, 비슷한 원리로 국세청은 병뚜껑이 얼마나 팔렸는지를 보고 소주가 얼마나 팔렸는지를 가늠하는 것이죠.
그런 까닭에 소주병뚜껑은 국세청이 지정한 업체만이 제조할 수 있습니다. 1972년 삼화왕관이 최초로 지정을 받았고, 1985년 세왕금속공업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40년 간 소주병뚜껑에 대해서 새로운 업체는 단 한 곳도 지정받지 못했습니다.
이 제도 때문에 다른 병마개 제조업체들은 아무리 기술력이 있어도 주류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1997년에는 이 제도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청구인 측은 특정 업체에만 독점권을 주는 것은 다른 기업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각하하였습니다.
덕분에 두 업체는 폭발적인 성장은 없을지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수백억 원 규모의 이 시장을 법의 보호 아래 두 회사가 독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꿀단지 회사이기 때문에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의 경영진과 주요 임원 자리를 대대로 국세청 출신 인사들이 꿰차왔다는 지적을 하는 기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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