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잘못으로 232년 된 은행이 망해 버렸다

1조의 빚으로 돌아온 작은 거짓말

2025.06.22 | 조회 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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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저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 오히려 가장 부정적인 결과를 상상해 봅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너무 떨리면 발표를 완전히 망쳤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아마 조금 부끄러울 뿐일 듯 합니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별 일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걸 알고 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집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더니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어떨까요? 그럴 경우에는 긴장을 완화하거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기는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고 조심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많습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저와 같은 상상을 한 번이라도 했더라면 저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싶은 안타까운 일들이 보도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닉 리슨(Nick Leeson)이라는 인물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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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리슨은 1989년 베어링스 은행에 입사한 평범한 은행원이었습니다. 베어링스 은행은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명문 은행으로, 여왕도 고객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여왕의 은행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큰 은행이었습니다.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나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등장하는 은행도 바로 베어링스 은행입니다.

그는 성과를 인정 받아 1992년, 25살의 나이에 싱가포르 파생상품 거래소의 책임자로 발탁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리슨의 거래는 큰 수익을 올렸고, 1992년 한 해 동안 베어링스 전체 수익의 10%인 1천만 파운드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는 연봉 5만 파운드에 보너스로 13만 파운드를 받을 만큼 인정받는 스타 트레이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88888 계좌'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산매매가 아니라 수신호를 이용한 매매가 이뤄졌기 때문에, 종종 오류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런 오류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회사가 부담했기 때문에 딜러들은 회사가 관리하는 에러계좌에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88888 계좌는 이런 에러계좌였습니다.

어느 날 리슨의 부하 직원이 선물 계약 20개를 사야 할 것을 팔아 버려서 2만 파운드의 손실을 냈습니다. 리슨은 손실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에러계좌인 88888 계좌에 이를 숨겼습니다.

그리고...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리슨은 88888 계좌에 손실을 숨기는 데 서서히 중독되었습니다. 리슨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블링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카지노에서 돈을 잃으면 다음 판에 잃은 돈의 두 배를 거는 전략으로, 자본이 바닥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기면 괜찮지만 연패를 이어 가다 자본이 먼저 바닥날 수도 있는 전략입니다.

88888 계좌에 숨긴 손실이 커져 가면서, 들킬 위험도 커져 갔습니다. 리슨은 이중 장부를 만들어 본사를 속였습니다. 싱가포르 사무소는 본사와도 거리가 있었던 데다, 당시 베어링스의 체계가 허술했는지 리슨은 들키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어쨌든 들키기 전에 크게 한탕 벌어서 그동안의 손실을 메꾸면 모두가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리슨은 도박을 이어 나갔습니다. 1992년 말, 오류 계정의 손실은 200만 파운드로 불어났습니다. 1993년 말에는 2,300만 파운드가 되었고, 1994년 말에는 2억 800만 파운드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리슨은 여전히 런던 본사에는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본사에서는 싱가포르의 천재 트레이더 덕에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기뻐했습니다.

1995년 1월 16일, 그는 또 한 번의 큰 베팅을 합니다. 일본 주식 시장이 요동칠 때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는 대신, 일본 주가지수가 안정적이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포지션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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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일본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리슨의 포지션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정신이 나가 버린 그는 주식 투자자의 흔한 정신 승리를 시전합니다. '지금이 가장 쌀 때다!' 그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일본의 주식시장이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베팅을 했고 2차 폭락을 맞았습니다.

2월 23일, 리슨은 더 이상 눈속임할 수도 없게 된 손실에 "미안합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싱가포르를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손실은 8억 2천 7백만 파운드, 원화로는 1조를 넘어가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는 베어링스 은행의 자본금보다 두 배나 많은 금액이었습니다.

1762년에 설립되어 232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던 베어링스 은행은 단 한 사람의 무허가 거래로 하루아침에 파산했습니다. 네덜란드의 ING 그룹이 단돈 1파운드에 베어링스를 인수했습니다.

리슨은 말레이시아, 태국을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싱가포르로 송환된 그는 6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실제로 4년 4개월을 복역했습니다.

만약 리슨이 처음 실수를 했을 때 "최악의 경우 어떻게 될까?"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혼 좀 나고, 심하면 잘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은행이 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작은 거짓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작은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굴러 결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금융 스캔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실수는 정말 별 일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숨기려다가는... 글쎄요, 혹시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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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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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빈지노의 프로필 이미지

    골빈지노

    0
    6 months 전

    회사에 입힌 손해에 비해 징역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도 놀랍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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