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은 0의 크기를 이해합니다

꿀벌한테까지 수학 실력을 따라 잡힐 순 없는데....

2024.02.03 | 조회 1.7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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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 중에 하나로 '0'의 발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0이라는 숫자가 있어야 비로소 위치 기수법을 사용할 수 있고, 0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비로소 정교한 방정식 풀이가 가능해집니다.

1은 웬만큼 원시적인 문명에서도 생각해내는 개념이지만 0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한국어만 보아도 하나, 둘, 셋은 고유어지만 영(零), 공(空)은 한자어입니다. 하나, 둘, 셋은 한자 문명과의 접촉이 있기 전부터도 흔하게 사용하던 개념이지만 영은 그렇지 않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은 '없는 것'이 '어떤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0의 존재를 부정했고, 지금도 시계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로마의 숫자 체계에서도 0은 없습니다. 7세기가 되어서야 인도에서 비로소 0을 숫자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도 쉽지만은 않았던 0의 개념을 꿀벌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0이 1, 2, 3, 4보다 작은 수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사이언스 지에 실린 Numerical ordering of zero in honey bees라는 논문입니다.

저는 이 논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꿀벌이 0을 이해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걸 인간이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실험 방법은 이렇습니다.

꿀벌에게 두 개의 각기 다른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 이미지는 흰 배경을 하고 있고, 검은 무늬가 1개에서 4개까지 찍혀 있습니다. 벌이 두 이미지 중 검은 무늬가 더 적은 쪽으로 날아가면 벌에게 상을 주고(벌이 좋아할만 한 달콤한 무언가를 주면 되겠습니다.), 무늬가 더 많은 쪽으로 날아가면 벌에게 벌을 줍니다(꼭 해보고 싶은 말장난이었습니다.).

이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벌은 상당한 정확도로 무늬가 더 적은 쪽을 골라낼 수 있게 됩니다. 벌이 80%의 정확도로 무늬가 더 적은 쪽을 골라낼 수 있을 만큼 잘 훈련되었을 때 벌에게 실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한쪽 이미지는 기존 훈련에서 보던 이미지이지만, 한쪽 이미지는 흰 배경만 있고 검은 무늬가 아예 없는 이미지, 즉 0을 의미하는 이미지입니다. 벌은 이 이미지를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64%의 확률로 이 이미지를 골라냅니다. 즉 0이 1, 2, 3, 4보다 작은 수임을 벌은 이해합니다.

혹시 처음 보는 이미지가 흥미로워서 그러는 게 아닐까 의심하실 수 있겠지만, 논문은 무늬가 더 많은 쪽을 골라내도록 훈련한 벌의 경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더 높은 74.5%의 확률로 빈 이미지를 피해 검은 무늬가 있는 이미지를 골라냅니다. 논문에는 그 외에도 충분한 대조군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뉴런은 약 1,000억 개에 달하는 데 비해 꿀벌의 뉴런은 100만 개 정도에 그친다고 합니다. 그런 꿀벌도 0<1 정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퍽 신기한 실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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