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관식 퇴계 이황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퇴계의 가족 사랑 이야기

2025.07.20 | 조회 1.0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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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폭싹 속았수다' 보셨나요? 저는 원래 드라마를 잘 못 보는 편인데요, 이 드라마는 10L 쯤 눈물 흘리면서 끝까지 다 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대한 일이기도 하다는 걸 이 드라마를 보며 많이 생각했습니다. 영웅이란 게 특별한 게 아니라, 이 드라마의 '양관식'처럼 주변 사람들을 사랑으로 물들이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봤던 최고의 슈퍼히어로물이란 생각도 했었습니다.

사실 양관식과 같은 따뜻한 남편, 따뜻한 아버지보다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아버지의 모습을 더 찾아보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유교 전통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유교 입장에선 억울할 것입니다. 공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라고 가르친 적은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최고의 유학자가 동시에 가족들에게 누구보다도 따뜻한 사람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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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은 20대에 첫 부인을 여의고, 2년 후 권씨부인과 결혼했습니다. 그가 다시 장가를 든 이유는 권씨부인의 아버지 권질의 부탁 때문이었습니다. 권씨부인의 할아버지는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갑자사화에 화를 입었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물러난 이후에도 권씨부인 집안의 불행은 계속 되었습니다. 무고한 일에 휘말려 삼촌은 곤장을 맞다 죽고 아버지도 유배를 가게 되는 불행 속에서 충격으로 권씨부인은 정신질환을 얻고 말았습니다. 권질은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와중에 남겨진 정신이 온전치 못한 딸을 돌봐주길 이황에게 부탁했고 이황은 그녀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이런 집안과 혼인한 까닭에 이황의 출세도 지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권씨부인이 죽는 날까지 권씨부인을 변함없이 아껴주었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아들들에게 친어머니의 장례와 다름 없는 예를 다하도록 하였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권씨부인과의 결혼 생활은 많은 에피소드들을 낳았습니다. 이황이 직접 글로 남긴 것은 아니고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들이므로 신빙성은 의심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제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권씨부인이 제사상의 배를 몰래 가져가 치마 안에 숨겼습니다. 이를 본 이황의 형수가 권씨부인을 나무라려 하자 이황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물론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음식을 먹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 일입니다. 하지만 조상님께서도 손자며느리의 행동을 귀엽게 여기실 테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제사가 끝난 후 이황이 부인에게 행동의 이유를 묻자, 권씨부인은 솔직하게 배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황은 말없이 배를 가져다 정성스럽게 깎아서 부인에게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이황이 조문을 가려고 흰 도포를 입으려 했는데 옷이 찢어져 있었습니다. 권씨부인에게 수선을 부탁했더니, 그녀는 엉뚱하게도 빨간 천으로 옷을 기웠습니다. 하지만 이황은 아무 내색 없이 그 옷을 입고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유교 예법 마스터 이황이 상가에 빨간 헝겊이 붙은 옷을 입고 나타나자 사람들이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이황은 담담하게 "붉은색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색이 아닌가. 우리 부인이 좋은 일이 생기라고 일부러 붉은색으로 기워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라고 답했다 합니다.

권씨부인이 직접 두루마기를 만들어준 적도 있었는데, 한쪽 소매는 길고 다른 쪽은 짧았으며, 앞자락도 제자리가 아닌 곳에 이상하게 달려 있었습니다. 이황은 그 옷을 입고 웃어 버렸고 권씨부인도 따라 웃었는데, 이황은 그냥 그 옷을 입고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는 사랑스런 일화도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두루마기가 아니라 버선으로 전해지는 버전도 있는데, 어쨌든 이황은 감사히 여기며 아껴 신었다고 합니다.

사실 첫 번째 아내를 여읜 후 권씨부인과 재혼하기 전에 이황은 첩을 두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황 가정의 살림을 정성스럽게 돌보았습니다. 권씨부인과 혼인한 후에도 정신적 어려움이 있던 권씨부인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았습니다. 이황은 그녀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족보에 올렸고 이 아들이 적서 차별을 받을 것을 염려하여 족보에서 적서의 구별을 없애버렸습니다. 이후로 이황 가문의 족보에는 적서의 구분이 없습니다.

이황의 가족 사랑은 아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맏며느리인 봉화 금씨의 집안은, 이황 집안과의 혼사를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 혼수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이황이 사돈 집을 방문했을 때조차 냉담하게 대우하여 며느리가 난감해 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황은 화가 난 가문 사람들을 달래며 며느리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 맏며느리가 이황의 버선이나 옷을 수선해주면, 이황은 그 정성을 잊지 않고 바늘이나 실 등을 선물로 주며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봉화 금씨는 이황을 진심으로 존경하였습니다. 그녀는 "죽어서라도 아버님을 모시겠으니 근처에 묻어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고 지금도 이황의 묘로 올라가는 길에 봉화 금씨의 묘를 볼 수 있습니다. 죽어서도 시아버지를 모시고 싶다는 유언을 동서고금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오른쪽 아래에 사진 출처 블로그 주소가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사진 출처 블로그 주소가 있습니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처럼, 싸가지 없는 재벌이 백마 탄 왕자로 등장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관식과 같이 삶이 좀 어려울지라도 마음만은 어렵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백마 탄 왕자 아닐까요? 이 메일을 보내고 아내를 한 번 더 안아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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