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라는 의미로 우정이 아주 돈독한 관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관중과 포숙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사람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정치가로, 특히 관중은 중국 역사에 손꼽히는 명재상입니다. 춘추시대에 패권을 움켜쥐었던 다섯 제후를 춘추오패라 하는데, 관중은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면서 제나라의 환공(이하 제환공)을 춘추오패의 첫 제후로 만들었습니다. 관중을 모르시는 분들도 아마 제갈량은 아실 텐데, 제갈량이 자신을 견주곤 했던 두 인물 중 한 사람이 관중으로, 그만큼 관중은 명재상의 아이콘 격인 인물입니다.
관중은 죽기 직전 간신배를 견제하는 말을 남겼는데요, 이 때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오늘의 주제로 다뤄보려 합니다. 고대의 인물들이이어서 그런지(한국사로 치면 고조선 시대입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땐 간신배의 아부 방식도 골 때리는 부분이 있고 관중이 견제한 이유도 의미심장합니다.
명재상 관중이 병으로 눕자 제환공은 관중에게 다음으로 재상을 할 만한 인물이 있는지 물으며 역아, 개방, 수초 등의 인물은 어떨지 의견을 구합니다.
역아는 요리사입니다. 제환공의 애첩인 장위희가 입맛을 잃고 있었을 때 역아는 최고의 요리를 바쳐 장위희의 입맛이 돌아오게 만듭니다. 이 사건 이후 역아는 말그대로 제환공과 장위희의 입맛에 맞게 일하면서 환심을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환공이 농담으로 인육 빼고는 맛있다는 것들 다 먹어보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역아가 이를 듣습니다. 역아는 며칠 뒤 제환공에게 제환공이 일찍이 먹어본 적이 없는 맛있는 고기를 올립니다. 산해진미는 다 먹어봤다고 생각한 제환공도 깜짝 놀라 역아에게 이것이 무슨 고기인지 묻자 역아는 사람 고기라 대답합니다. 자신의 세 살 난 아들을 직접 쪄서 제환공에게 바친 것입니다. 제환공도 처음엔 역겨워 하지만 "군주에게 충성하는 자는 집안을 돌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역아의 충성심에 감동을 받습니다.
개방은 원래 위나라의 공자입니다. 위나라의 의공이 제나라에 패배하여 아들인 개방을 시켜 제나라에 예물을 보냈는데, 이 때 개방은 제나라의 강성함과 부유함에 반해 아예 제나라에 눌러 앉습니다. 이후 오랜 세월 위나라에는 가보지도 않은 채 제환공을 섬깁니다.
수초는 환관입니다. 그는 제환공을 언제나 가까이 모시고 싶어했습니다. 생식 능력이 있는 남자는 후궁과 궁녀들과 스캔들이 날 수 있기 때문에 궁에서 머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수초는 스스로의 생식기를 제거해 죽을 고비를 넘겨(깔끔한 수술 방법 같은 게 없었던 고대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환관이 되었습니다. 이후 대단한 눈치로 제환공의 수족과 같이 일했다고 합니다.
이 세 인물은 제환공을 위해 가장 큰 것들을 희생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역아는 자식을, 개방은 부모와 조국을, 수초는 생식기를 버리고 제환공을 섬겼으니 말입니다. 공주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사과를 먹인 막내가 양탄자, 망원경을 사용했던 형들보다 더 공을 인정 받아 공주와 결혼할 수 있었다는 옛 이야기처럼 제환공을 위해 큰 것을 희생한 세 사람에게 제환공도 마음이 더 향했습니다.
하지만 관중은 유언으로 오히려 세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후임으로는 습붕, 포숙 같은 인물을 추천하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친구인 포숙에 대해서는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 법'이라며, 융통성이 있는 자신과 달리 포숙은 너무 곧고 정직한 사람이므로 포숙을 다음 재상으로 앉힐 경우 이 세 사람을 반드시 내쫓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관중이 이 세 사람을 견제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역아는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던져 버리고 자식을 죽여 음식을 바쳤으니, 어떤 순간이 오면 상대가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간신이라고 보았습니다. 개방은 위나라의 공자임에도 그 자리를 뿌리치고 제나라에 왔으니 위나라의 제후가 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바라는 인물이라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부모가 죽었을 때조차 위나라를 찾지 않았으니, 부모도 사랑하지 않는 자가 군주를 진심으로 섬길 리 없다고 보았습니다. 수초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몸인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생식기를 거세했으니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라 보았습니다.
즉, 인간된 도리로서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것들을 목적을 위해 버린 인물들이니 언제든 제환공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관중의 판단이었습니다.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것들을 포기할 정도의 충성심을 보였으니 가장 곁에 두고 싶어했던 제환공과는 정반대의 생각이었습니다.
제환공은 관중을 매우 신뢰했기 때문에, 관중 사후 그는 습붕, 포숙을 차례로 재상에 앉히고 세 사람을 쫓아 냅니다. 그러나 결국 습붕, 포숙도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제환공은 세 사람을 다시 궁으로 불러 들이게 됩니다.
세 사람을 불러 들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환공은 병에 걸려 눕고, 세 사람은 제환공의 거처를 장악해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막습니다. 제환공을 세상과 차단한 세 사람은 국정을 농단합니다. 제환공은 아픈 와중에 자신의 거처에 갇혀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며 비참하게 죽어 갑니다. 끝내 제환공의 시신은 67일이나 방치되어 나중에 발견되었을 때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까마득한 고대의 이야기지만 현대에도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도를 넘어 잘해준다면, 그것은 순수한 호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