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ꥸᅦퟗ'이라는 글자 보이시나요? 구독자 님이 사용 중이신 폰트에 따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듯 해 아래에 이미지도 함께 넣어두었습니다. 당연히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용하는 일이 없는 글자입니다. 어떻게 읽는 글자인지도 모르겠고요. 이 글자의 초성도 종성도, 어디서도 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입력이 된다는 건 적어도 초성, 중성이 어딘가에 사용된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ꥸᅦퟗ은 1922년 이필수의 '선문통해'에만 예시로 등장하는 글자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서 실제로 어떤 단어에 사용된 글자인지, 어떤 발음이 나는 글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선문통해에서 이 글자가 등장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네? 뭐라고요?' 할 만한 구간들이 속출합니다.

자음이다 모음이다 칭하는 것은 인생의 윤리에 빗대는 것과 같으니, 만약 자식과 어머니가 서로 합하여 어떤 사물이든지 생성한다 하면 이는 이치에 심히 부당한 말이니라. 고로 혹자는 말하되 모음(母音)이라 하기보단 부음(父音)이라 하는 게 나으며 자음(子音)이라 하기보단 모음(母音)이라 함이 나으니, 부모음이 서로 합하여 자음(子音)을 낳는다 하는 게 옳다 말하는 학설도 있느니라. 그러나 이 또한 불완전한 점이 많으니一예를 들건대 '짧', 'ꥸᅦퟗ', 'ᄋힳᆫ', 이 같은 글자는 부음이 몇 개며 모음이 몇 개인가. 첫 글자는 4개의 모음과 1개의 부음이 합한 자며, 두 번째 글자는 6개의 모음과 2개의 부음이 합한 자며, 세 번째 글자는 1개의 모음과 4개의 부음이 합한 자니라. 고로 이상 양자의 학설에 대하여 원만한 칭호를 만들고자 할진대 양음(陽音), 음음(陰音)이라 하는 게 가능하겠다.
선문통해 25쪽. 이해하기 좋게 제가 단어 단위로 조금 수정했습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하나의 글자를 만드는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문통해에서는 이것을 자식과 어머니가 몸을 섞어 무언가를 낳는다고, 충격적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모음+자음=음' 대신 '부음+모음=자음'을 사용하자는 학설이 있다고 소개하는데, 이 경우 ꥸᅦퟗ은 두 사람의 아버지와 여섯 사람의 어머니가 합하여 낳은 자식이라며 이 또한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필수가 주장하는 바는 양음, 음음이라고 부르자는 것인데요. 글쎄요, 저는 그런 논리라면 양음, 음음은 뭐 적절한가 싶습니다.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해버려서 '으악, 나는 썩었어'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지요. 그래도 아직까지 모음과 자음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서, 이 사례를 보면서 '그래, 아직은 덜 썩었다'라는 위안을 조금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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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y
ㅋㅋㅋㅋ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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