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던 적 있으신가요? 꿈에서 대단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적은요?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두고 싶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종종 꿈에서 멋진 음악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스마트폰의 음성 메모 기능을 통해 곡을 기록하고 다시 잡니다. 결혼한 이후에는 아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 다른 방에 가서 음성 메모를 하는데 그러다 잠이 다 깨버릴 때도 있습니다. 침대에서 꼼짝도 않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기술이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루이스 캐럴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의 시대에는 밤에 기록을 남기기가 훨씬 더 불편했습니다. 그는 '겨울 새벽 2시에 일어나 촛불을 켜고, 기록해 두지 않으면 잊힐 법한 행복한 생각을 기록'하는 일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 침대 밖으로 나와 몽롱한 정신으로 더듬거리며 성냥을 찾고 초에 불을 붙이고 책상에 앉아 펜촉을 적셔 글을 적었으리라 상상해 보면 그의 불편이 이해갑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독특한 장치와 문자를 발명했습니다. 루이스 캐럴다운 해결책입니다.
위 이미지가 루이스 캐럴이 만든 '닉토그래피(Nyctography. 밤을 뜻하는 Nyctos로부터 만들어낸 단어입니다.)'라고 하는 문자 체계입니다. 영어에서 쓰는 모든 알파벳이 점과 선으로 된 독특한 기호들과 상응합니다. 하나씩 살펴보면 대체로 원래 문자와 닮아 있기 때문에 외우기 어렵지도 않아 보입니다. 'The'와 'and' 같이 자주 쓰는 단어도 따로 문자 하나를 배정 받았습니다. 숫자나 날짜를 쓸 때에는 'digit', 'date' 문자를 적어 뒤에 오는 문자들이 숫자, 날짜를 의미한다는 것을 표시하고, 다시 'letter' 문자를 적어 문자 입력으로 돌아옵니다. B와 C는 1, D와 W는 2, J와 T는 3, 하는 식으로 몇몇 문자들에 숫자의 의미도 배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자를 쓰는 게 밤에 기록을 남기기에 어떤 점에서 더 편하다는 걸까요? 아래의 도구 사진을 함께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 장치는 닉토그래프라고 하는 도구로 두꺼운 판을 오려 만든 것입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침대에서 팔만 뻗어 노트를 잡습니다. 노트에는 이미 이 도구가 끼워져 있습니다. 도구의 칸 하나하나에 닉토그래피 문자를 한 글자씩 적습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더라도 모든 닉토그래피 문자는 정사각형 칸에 딱 맞기 때문에 틀에 맞춰 적으면 반듯하게 쓸 수 있습니다. 점과 선으로만 되어 있어 가독성이 걱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자를 다시 확인해 보면 모든 문자의 왼쪽 위에 큰 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 덕분에 헷갈리지 않고 점과 선들이 어떤 단위로 묶여 한 글자를 이루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줄을 다 적었으면 닉토그래프를 내려 다음 줄을 써나갑니다. 이런 식으로 눈을 감고도 깔끔하게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닉토그래피는 단순하고 닉토그래프도 만들기에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자다 일어나서 불을 켜거나 핸드폰 불빛을 보지 않고 기록을 남기고 싶으신 분이라면, 한글 버전도 하나 만들어서 사용해 보시면 어떨까요? 재밌는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더 알아보기
Wikipedia, Nyctography
폰트로 사용하고 싶다면 이곳. 그러나 숫자를 적는 방식이나 The, and를 적는 방식 등이 오늘 소개된 내용과 다릅니다.
영어문장을 적으면 바로 닉토그래피로 옮겨주는 사이트. 하지만 마찬가지로 숫자를 적는 방식이나 The, and를 적는 방식 등이 오늘 소개된 내용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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