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단 둘 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

크립토파시아(Cryptophasia), 이디오글로시아(Idioglossia), 홈 사인(Home sign)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5.03.02 | 조회 1.0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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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최근 AI 에이전트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재밌는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두 AI 에이전트는 처음엔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곧 서로가 AI 에이전트임을 확인한 뒤 간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삐빅거리는 전자음을 활용해 대화를 나눕니다. 각종 SF에서 보이던 로봇들의 대화가 실제로 일어난 것 같아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두 AI 에이전트가 서로 AI임을 확인한 뒤 전자음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Gibberlink라는 기술로, ggwave라는 프로토콜을 사용해 두 AI 에이전트가 소리로 데이터를 주고 받게 합니다.

사실 저렇게 전자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원리는 간단합니다. 보통 통신에는 전파를 활용하는데 이를 음파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과거 전화 교환기는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입력 받아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에, 휘파람을 불어서 해킹하는 게 가능했다는 내용의 페퍼노트를 보내 드린 적이 있는데 이와 기본적인 원리는 같습니다. ggwave라고 하는 소리에 데이터를 담는 프로토콜을 활용해, 각 음마다 의미를 담고 있는 소리를 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위 영상을 보고 수 년 전 유행했던 쌍둥이들 간의 대화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두 아기가 서로 옹알이로 대화를 나누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어떤 의미가 있기라도 한 듯 서로의 감정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쌍둥이 아기가 옹알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영상

이 영상에 나오는 옹알이는 아직 언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간혹 쌍둥이들이 정말로 둘 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사람 간에는 완벽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 둘만을 위한 특별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이를 크립토파시아(Cryptophasia)라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준 기븐스(June Gibbons), 제니퍼 기븐스(Jennifer Gibbons) 자매가 있습니다. 이들은 웨일즈에서 자란 쌍둥이 자매인데, 서로에게만 대화를 하고 외부 세계와는 거의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침묵의 쌍둥이'라고 불렸습니다. 훗날 준 기븐스는 그들에게 언어장애가 있었을 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고 증언하지만, 당시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크게 독특했는지 부모조차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단 둘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종종 따돌림을 당했고, 학교 관리자들은 이 쌍둥이가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매일 일찍 하교시켰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둘 만의 언어는 더욱 독특하게 발전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만이 이해하는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둘 중 한 쪽이 죽으면 남은 한 쪽은 말을 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됐고, 결국 제니퍼는 스스로 결정하기라도 한 듯 갑작스러운 심근염으로 사망했습니다.

포토(Poto)와 카벵고(Cabengo)라는 쌍둥이 자매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이 들의 원래 이름은 그레이스 케네디와 버지니아 케니디이지만 스스로 포토와 카벵고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들의 부모는 쌍둥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쌍둥이는 정상적인 지능을 갖고 있었음에도 말을 거의 접하지 못해 영어를 익히지 못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들 쌍둥이의 언어는 매우 빠른 템포와 스타카토 리듬이 특징이었습니다. 후에 언어 치료를 받아 영어를 구사하게 된 뒤에도 이런 특성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만들어낸 언어를 분석해 보면 영어(부모의 언어)와 독일어(할머니의 언어)의 혼합 언어였으며, 그들만의 신조어와 독특한 문법적 특징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한 샘플이 남아 있어 첨부합니다.

크립토파시아는 한 사람, 혹은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언어를 가리키는 말, '이디오글로시아(Idioglossia)'의 특수한 예입니다. 이디오글로시아의 또 다른 예로는 Home sig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청각 장애 아동이 수화나 구어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을 만큼 교육받지 못한 경우, 자신만의 수화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기븐스 자매도, 포토와 카벵고 자매도, 홈 사인의 사례도 모두 그 계기가 슬픈 일들이었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냈어야 할 만큼,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이 함께 했기를 바라 봅니다.


더 알아보기

페퍼노트, 휘파람을 불어서 해킹하는 법
gibberlink
ggwave
Wikipedia, Cryptoph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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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pedia, June and Jennifer Gibbons
Wikipedia, Poto and Cabengo
Wikipedia, Home 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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