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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PH

크레도 에르고 숨(Credo, ergo sum)

-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2026.03.28 | 조회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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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yeyoon

크레도 에르고 숨(Credo, ergo sum)

-나는 믿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여러분은 신을 믿나요? 파스칼은 믿는 게 낫다고 합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기발하고도 세속적인 방식으로 신앙의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인생이라는 도박판 위에서 '어디에 베팅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인

'를 따졌죠.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파스칼의 내기'입니다. 이 논리는 370년이 지난 오늘날,

종교의 틀을 넘어 현대인의 자기 확신과 자기 불신이라는 자아의 문제로 치환됩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갓생(God+)’ 열풍은 단순히 성실함의 찬가를 넘어선 하나의

사회 현상입니다. MZ세대 10명 중 7명이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SNS 언급량이 연간 63만 건을 상회한다는 통계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갓생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하죠.

 

흥미로운 지점이 보입니다. 갓생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꼽는 요소 1위가 재테크 및 자기 계발

공부(41.6%)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갓생이 실질적인 자아의 성숙보다는 자기 성취의 이미지

소비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해시태그를 부지런히 다는 것은

어쩐지 운동하는 나를 전시하는 퍼포먼스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일면 생산성 강박처럼 보이는

갓생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는 제스처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기 믿음이 결여된 퍼포먼스는 기회비용의 무한 손실을 초래하는

밑지는 장사가 될 위험이 큽니다. 그러니 남는 장사를 위해 다시금 믿음을 살펴볼 때입니다.

 

파스칼의 내기

 

파스칼은 <팡세>에서 신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대신, '신을 믿는 것이 실리적으로 얼마나

유리한가'를 따졌습니다. 신이 존재할 확률이 극히 낮더라도, 존재할 때 얻을 보상이 무한대라면

그 기대 가치는 항상 양의 무한대라는 논리였죠. 한편, 오늘날 우리에게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나를 믿는가? 라는 질문은 종교적 질문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며, 파스칼의 내기는 우리 자아라는 판 위에서 그대로 재연됩니다.

 

믿음의 본질: 크레도(Credo)

 

믿다'를 뜻하는 라틴어는 '크레도(Credo)'입니다. 이 단어는 심장(Cor)과 내어주다(Do)

합성어에서 유래했습니다. , 믿음이란 단순히 머리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심장을

내어주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나를 믿는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가장 뜨거운 핵심을

내 미래의 가능성에 먼저 던져두는 베팅입니다. 파스칼이 성수를 뿌리고 미사에 참석하며

믿는 척이라도 하라고 권했던 것처럼, 우리도 믿는 척이라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데카르트의 의심을 넘어선 도약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을 말하며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세상도, 수학적 진리도

가짜일 수 있다고 보며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끝없는 의심이 아니라, 존재를 확장하기 위한 과감한 믿음일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의심을 통해 존재의 최소 단위를 확인했다면, 우리는 믿음을 통해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 의심하고 망설이며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생각하는 주체로 남을지는 몰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기회비용의 무한 손실을 겪으며 사회적,

성취적 자아로서 부재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의심은 멈추게 하지만, 믿음은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위험한 베팅은 '기권'입니다

 

다시, 파스칼의 수식으로 돌아가면, 자기 확신의 기댓값은 압도적입니다. 내가 실제로 성공할

확률이 단 1%라 해도, 그 뒤에 곱해지는 보상이 무한이라면 결과는 언제나 무한입니다.

반면 자기 불신로 인한 체념의 짧은 위로는 그 무한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죠.

 

오늘도 우리는 내기 판 위에 앉아 있습니다. 베팅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 불신' 쪽에

칩을 올리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무모한 베팅은 전 재산을 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을 접는

것입니다. 기회비용의 무한 손실, 마이너스 무한대의 삶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밑지는

장사 같은데요?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허약하지만 사유함으로써 우주를 초월한다는

뜻이죠. 저는 여기에 한마디 보태겠습니다. ‘갈대는 자신이 갈대임을 알기에, 꺾일지언정 바람을

향해 몸을 던지는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크레도 에르고 숨. Credo, ergo sum.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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