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해시태그 시그네>로 보는 피로사회

안녕하세요 옥수수🌽여러분, 영평입니다. 🏃🏻‍♀️

오늘은 제가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고있던...^^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를 소개하며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레터를 전달드립니다. 이 영화를 본건 1월 즈음인데 발행을 하는데에는 거의 3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네요. 😅

<해시태그 시그네>는 작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작품으로,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의 젊은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영어 제목은 <Sick of Myself>.

좀처럼 접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사실 북유럽 영화들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간혹 냉소적인 시선을 굉장히 색다르고 또 유머러스하게 표현해내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작품도 비슷한 이유에서 저를 사로잡았는데, 이번 레터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긍정성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위험성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난호 인트로가 너무 주저리 주저리 길었던 관계로 오늘은 잡소리는 생략하고 바로 스타트하겠습니다. 🤣

구독자님께 보내는 <해시태그 시그네>로 보는 피로사회

By 영평🏃🏻‍♀️

우리의 주인공 시그네는 카페에서 근무하며 평범한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는 젊은 여성입니다. 그녀는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남자친구 토마스와 동거를 하고 있는데, 이 커플에게는 어딘가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이 이 커플이 레스토랑에서 값 비싼 와인을 훔치는것으로 시작되고 있죠.

이 외에도 둘의 대화는 건강한 연인 관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를 면박 주는 언행이 반복됩니다. 토마스는 아티스트로서의 나르시시즘이 있어 보이고, 시그네는 어딘가 이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것처럼 비쳐지기도 합니다. 사실 토마스는 본인의 전시에 쓸 설치물을 훔쳐서 사용하는 인간인데도요. (거의 도벽...)

그러던 어느날 시그네가 일하던 카페 앞에서 어떤 여성이 개에 물려 피투성이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시그네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이 일에서 본인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행동했는지에 대해 설파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내 대화의 주제가 토마스의 전시로 넘어가게 되요. 대화 주제를 빼앗긴 시그네가 토마스의 새 전시를 무시하는 듯 발언하는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전시 후 애프터 파티에서 시그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진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것처럼 연기를 해서 주목을 끄는데에 성공합니다. 다만 일시적인 관심이었죠.

주변인들의 걱정과 관심을 맛을 한번 본 시그네는 급기야 이제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의 강아지를 도발하여 자신의 목을 물어보라며 괴롭히는 이상 행동까지 하게됩니다.

개가 자신을 물지 않고 견주에게 욕만 잔뜩 먹은 시그네는 인터넷에서 '리덱솔'이라는 의약품으로 인해 희귀 피부병을 앓게 된 사람들의 기사를 보게 됩니다. 리덱솔은 금지 되었으나, 시그네는 어둠의 거래를 잘 하는 친구를 찾아가서 대충 핑계를 대고 리덱솔을 구해달라고 하죠.

리덱솔을 손에 넣은 시그네는 무턱 대고 하루에 몇 번씩 이 약을 섭취하고, 결국 피부병을 얻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서부터 시그네의 망상이 시작됩니다. CT기계에 들어갔다가 의사한테 자신이 리덱솔을 복용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불안한 상상을 한 시그네는 검사를 받지 않겠다며 몸부림을 치지만, 기괴스럽게 행복한(?)망상도 있죠. 교회 밖까지 줄이 길게 늘어선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는것입니다. 상상속 장례식에서 많은 사람들은 슬퍼하고, 병문안에 오지 않은 친구는 입장이 거부됩니다.

이제 시그네는 더더욱 유명해지기 위해 시동을 겁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피부병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사용하여 기자인 친구를 통해 매체 인터뷰를 장식하고 기뻐하는 시그네.

친구들의 파티에서도 위로와 주목을 받는 시그네는 점점 TV까지 출연하는 유명인사가 되는 행복한 상상에 잠기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계속해서 비밀이 탄로나는 상상도 번갈아 나타나게 됩니다. 그 옆에서 마치 관종 대결(?)을 하듯이 유명해지는 시그네를 견제하는것처럼 보이는 토마스의 모습도 아이러니합니다.

그 와중에 시그네는 특별한 모델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Inclusion(포용)을 목적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이 회사에는 시그네 말고도 한쪽 손이 없는 여성이 모델로 활동하고 있죠.

시그네는 모델 활동이 너무나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 그녀의 병세가 점점 심각해져갑니다. 시시때때로 피를 토하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경련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안간힘을 다해 멀쩡한척 하는 시그네는 '당신의 건강에 대해 내 책임이 없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겠다'는 CEO의 말에 끄덕이며 결국 잡지 표지 모델로 데뷔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향한 시그네의 욕망은 멈추지 않습니다. 병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병원 대신 광고 촬영을 택한 시그네. 점점 얼굴의 형태를 잃어가는 시그네의 모습을 본 촬영 관계자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시그네는 급기야 한쪽 손이 없는 모델을 화장실에 가두어버리고 스탭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몹시 불안정한 시그네는 또 망상을 시작합니다. 기자인 친구를 찾아가 사실을 다 털어놓는 상상을요. 시그네의 상상속 친구는 기사를 크게 새로 쓰자며,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출판하자며 격려하고 상상속 시그네의 자서전은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결국 시그네는 광고 촬영 도중 온몸에 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촬영이 중단됩니다. 여기서 모델 에이전시의 CEO와 촬영 관계자들은 쓰러진 시그네를 앞에두고 서로 내 책임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하죠. 모델 에이전시도, 특별한 모델들을 고용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유명 광고도 결국 Inclusion(포용)에 실패했다는것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토마스는 (아마도 절도죄로) 감옥에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시그네는 기자인 친구를 불러 상상속의 자신처럼 자신의 만행에 대해 고백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넌 자기 연민에 빠졌어. 미친 소리라고"라는 꾸짖음 뿐입니다. 시그네는 아직도 자신이 만들어 낸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파괴적인 욕구를 갖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어?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사실대로 지금 털어놓고 있잖아."

시그네는 끝끝내 상상속 베스트셀러 자서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파파라치들이 자신을 쫓는 상상을 끝으로 재활센터에 입소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끝까지 냉소의 아이러니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시그네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친구를 잃은 것도 이 병의 간접적인 결과죠. 그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상대하기 싫어해요."

"난 살아가는걸 사랑한다" 라 중얼거리며 울고 웃는 시그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는 크게 세가지 대비점이 있습니다. 서로 관종력을 다투는 토마스<->시그네의 캐릭터 대비 구도 (연인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듯 사랑하지 않는 듯한), 유명인사가 되고싶은 마음과 비밀이 탄로날까 두려워하는 시그네의 행복한 상상<->불안한 상상의 구도, 그리고 간혹 보여지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면모(개에 물린 여성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음, 말로는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하지만 시그네가 쓰러졌을 때는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CEO)<->Inclusion(포용 - 시그네의 매체인터뷰, 모델 활동)의 대비 구도이죠.

<해시태그 시그네>는 이렇게 대비 구도를 통해 냉소적 아이러니가 가득하고 또 피로사회라 불리는 현대사회의 병리학적 현상을 위트있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 동정과 연민을 원하는 시그네 (그리고 만만치 않은 관종인 토마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데요.

철학자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서는 현대 사회를 자율성 과잉에 따른 피로가 누적된 사회라 말하고 있습니다.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규정하는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해서는 안 된다’ 가 여기서는 지배적인 조동사가 된다.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근대사회가 '~해서는 안된다'는 금지와 규율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율사회였던 반면, 현대 사회는 '누구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율성이 주어지는 성과사회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누구나 무엇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무언가 해내지 못했을 때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탓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 반면 긍정성이 과잉된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이 우울증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에렝베르에 따르면 우울증은 규율사회의 명령과 금지가 자기 책임과 자기 주도로 대체될때 확산되기 시작한다.

즉, 끝없는 관심을 원하지만 왜 본인이 관심을 원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듯한 주인공 시그네 또한 성과 사회가 생산해낸 우울한 낙오자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뭐든지 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아티스트로 성공궤도를 달리는것 처럼 보이는 남자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것 같은 평범한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을 수도 있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 특별한 나 자신을 만들어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이 나 본연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기전에 결국 자신을 집어삼킨것입니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시그네는 자기 착취를 넘어서 자기 파괴의 행위를 멈추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본인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요. 결국 성과사회에서는 모두가 이렇게 자신이 자신을 착취하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기 때문에 사회가 개인을 착취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입니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비단 노르웨이에 사는 시그네의 일만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낙오될 것 같은 불안, 무언가 이루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것 같은 성과주의는 대한민국 사회에도 만연합니다.

홍가빈 정치 경제학자는 사람을 '자본'으로 보아 그 자산 가치를 매기는 '인적 자본'을 향해 청년들이 본인의 자본 가치를 계산하여 치열한 경쟁으로 돌입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어요.

청년층이 느끼는 사회적 압력의 내용을 보면, 그 ‘인적 자본’의 평가는 명시적인 자격증이나 ‘스펙’ 같은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것저것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 능력과 AI 이해력을 키우기 위해 이런저런 강좌와 교육을 신청하여 비용을 지출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 ‘인적 자본’ 형성의 ‘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뻔한 범주를 벗어나면 투자인지 소비인지 애매한 광활한 회색지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성형수술은? 외국 여행은? 필라테스 1년치 티켓은? ‘슈트발’ 세울 수 있는 명품 정장은?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핫플’에서 폼나게 찍는 SNS 사진의 생산 비용은? ‘인적 자본’의 ‘매력’이여, ‘네트워크의 마력’이여. ‘지식 자본주의’와 ‘네트워크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청년 세대는 이제 일상의 매 순간이 자신의 ‘자본 형성’의 계기라는 강박 속에서 살아가야 하며, 거기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서면 빚을 내서라도 질러대야 하는 상황에 살고 있다.

이야기의 결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저는 시그네가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파괴하는 과정이 애정결핍 때문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그네가 무리하게 금지된 약을 복용하며 자신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간 행위가 과연 그녀 혼자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시그네의 관종력에만 혀를 차면 그만인걸까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스스로를 착취하고, 연대 의식 대신 서로 '불행 배틀' 이나 '행복 배틀'을 초래하는 피로사회에서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배틀 상대로만 바라보고 있는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레터로 인해 <해시태그 시그네>가 궁금해지셨다면! 현재 TVOD 서비스까지만 릴리즈 된 듯 한데요. 네이버 시리즈온, 티빙, 웨이브, 왓챠에서 단품구매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예고편도 첨부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