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8] 🌻 터벅터벅 걷기 좋은 봄철에 같이 들어봐요

사월의 어느 멋진 날에 편지를 쓰고 있는 숑🌻입니다. 한 주가 착실히 저물어가고 있네요. 벌써 목요일입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근사하지 않나요. 하루 평균 걸음 수가 부쩍 늘었습니다. 주말 저녁마다 친구들의 SNS에 여기저기 예쁘고 멋진 곳을 다녀온 사진이 속속 올라오더라고요. 저 또한 성실한 격리의 시기를 무사히 지나 짬나는 대로, 아니 짬을 내어 두 발로 봄볕을 만끽하고 있어요. 사월은 왜 발음마저 예쁘게 느껴지는지. 그래서 저희 집 강아지 이름도 사월이랍니다(tmi🐕).

발 닿는 대로 걷기 좋은 날에는 역시 음악이 빠질 수 없죠. 푸르게 돋아나는 이파리를 올려다보며 들을 음악을 고민하다 보니 문득 작년 봄 PRIIISM을 쓰던 날이 떠올랐는데요. 왜인가 하니 다음 달이 벌써 PRIIISM 첫 레터를 보낸 지 딱 1주년이 되는 달이더라고요! 소오름. 그래서 숑, 콜리, 로이도 (실로 오랜만에) 다음 주말 대면으로 작당하여 기념할 만한 뭔가를 모의해보기로 했답니다. 아직 백지 상태예요. 혹시 '이런 거 해보면 좋겠다!'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댓글 혹은 레터 맨 아래 버튼을 눌러 의견을 보내주세요!

그리하여 오늘 골라 본 노래 세 곡은 아무려면 봄철의 산책에 어울리는 노래들입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나눠봤지만 사실 전 시간을 가리지 않고 듣고 있어요. 한낮의 볕 아래선 땀방울이 솟는 듯하다가도 해가 지고 난 뒤 귀갓길에는 외투 깃을 여며야 하는 날씨. 이러나 저러나 편한 신발만 꿰어 신으면 어디까지라도 씩씩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그런 계절에 언제라도 함께하기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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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vard - A Chance Meeting

나에게 좋은 책은 졸린 눈으로 훌훌 읽어도 문장의 탄탄한 결이 머리에 쏙쏙 박히는 것처럼, 좋은 노래는 무심하게 흘려 들어도 고막에 정확히 날아드는 모양이다. 몇 해 전 아무 노래를 랜덤 플레이해 놓고 자취방에 멀뚱멀뚱 누워 있다가 이 노래를 듣고 떠올린 생각이다. 하바드(Harvard)는 2003년 데뷔한 일본의 남성 2인조 밴드다. 습기 하나 없을 것처럼 산뜻한 시부야계 사운드가 매력적이라 2000년 초반 싸이월드 BGM을 숱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그들의 대표곡이라면 역시 <Clean & Dirty>지만 나의 최애는 <A Chance Meeting>이다. 제목부터 미지의 설렘을 품게 하는 '우연한 만남'이라니! 초행길의 여행지에서 마을버스에 올라 흙길을 덜컹이며 달리는 순간, 또는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의 열차가 익숙한 풍경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낯선 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설렘을 한껏 부풀게 할 것만 같다. 아마 늘 걷던 길을 걸을 때여도 이 노래를 귀에 품고 있다면 어디든 여행자의 걸음이 될지도 모르겠다.

봄의 하루 중 이 노래를 듣는 시간대를 하나 골라야 한다면, 단연 아침이다. 더없이 화창하면서도 온몸의 신경이 완전히 깨어나지는 않은 듯 몽환적인 기분에 어울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희망이 뚝뚝 넘치는 가운데서도 어딘지 한 구석이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괜찮은 기분으로 묻어둘 수 있게 된, 필연적이리라 믿었으나 결국 우연한 만남으로 결론지어진 어떤 인연이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든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드일 것만 같다. 그런 느낌을 주는 노래다.

🌻 Tahiti 80 - Crush!

상쾌한 '딩~동~'에 이어 그보다 산뜻한 보컬이 곧장 시작한다. 나는 일주일 꼬박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던 격리 주간에 이들의 음악을 가장 자주 들었다. 갑갑한 속을 고막으로나마 달래고픈 마음이었던 것이다. 가끔 음악, 향기, 책 따위로 꼼수를 부려 육신의 감각을 속일 수 있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몸이 받아들이는 대로만 정직하게 출력하는 삶은 또 얼마나 낭만 없고 팍팍한가.

타히티 80(Tahiti 80)은 1999년 데뷔한 프랑스 출신의 밴드다. 아마 S/S 시즌 찰떡같이 어울리는 밴드를 열 팀쯤 뽑으라면 그들의 이름을 무리 없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제로 칼로리의 칠성사이다를 꿀떡꿀떡 마시는 듯 청량하고 개운하기 그지없다(롯데칠성음료로부터 협찬 받지 않음). 대부분 모국어 대신 영어로 노래하기 때문에 '프랑스 밴드구나' 싶은 느낌이 적나라하지 않지만 가만 듣고 있으면 '이런 게 프렌치 팝인가!' 싶어진다. 아직 파리에 가보지 않아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번 주부터 거리두기가 해제되었고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필두로 이런저런 공연이 다시 기지개를 켤 낌새가 보인다. 타히티 80의 노래도 해가 정수리를 수직으로 찍어내리는 정오쯤 푸른 잔디밭에 벌렁 주저앉아 한량처럼 맥주를 들이 부으며 듣기 참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이들은 2002년 이후 한국에 여러 차례 내한했다. 일단 올해 봄은 언감생심, 내년 5월쯤 한강이나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딱 와주면 좋을 것 같다는 욕심이 있다. 부디 이 글이 성지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 1일차)

🌻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친구가 추천해준 어느 인디 가수 노래를 듣다가, 되려 연관 항목으로 뜬 아티스트와 노래에 꽂혀버렸다. 작년 1월 싱글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세 곡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 허회경에 대한 얘기다. 누구나 저마다의 일상 내지는 일생을 돌아봄직한 제목도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 노래의 킬링 포인트 중 하나는 앨범 커버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니 자신의 돌잔치에 찍은 사진일 뿐 할아버지와 인상깊은 추억은 없었다고 하는데, 정작 보는 이의 심금은 찌릿한 데가 있으니 더욱 묘하게 느껴진다.

군더더기 없는 목소리와 어우러지는 노랫말 중에서도 내게 와닿은 부분은 '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란 표현이다. 날씨만큼 우리 의지대로 되지 않는 변수가 또 있을까? 벼르고 멀리 떠난 여행에서도 소나기를 맞닥뜨리면 꼼짝없이 플랜 비를 세울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나의 의지가 아니란 점에 있다. 적당히 떨어져 관조하다 그에 맞는 계획으로 이내 발걸음을 돌릴 뿐이다. 때론 비가 그친 뒤 무지개처럼 괜찮은 우연과 마주치기도 한다.

'날씨 같은 인생'과 시를 읊듯 반복하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란 노랫말은 그런 의미에서 짝꿍처럼 맞아떨어진다. 어느 귀갓길에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불과 며칠 전까지 벚꽃이 춤추던 머리 위가 금세 푸르러져 있어 새삼스런 서운함을 느꼈다. 벚꽃이야말로 봄의 전령사이거늘 벌써 허무하게 끝나버렸구나 싶어서. 생각해보면 '봄이 짧다는 탄식은 어쩌면 봄꽃만을 바라보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는 어느 책 속 구절처럼, 꽃이 피고 지는 순간이 아니어도 여전히 봄은 그 자리에 있다. 날씨 같은 인생을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듯 계절 역시 조급함 없이 지금의 온도를 피부에 새기면 그뿐이다. 매 계절은, 바로 지금 흘러가는 시간 역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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