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1] 🌻 이 노래는 백 절까지 부를 수 있어

계절의 왕 중 왕, 5월을 앞두고 레터를 쓰는 숑🌻입니다. 지난 주 구독자님들이 보내주신 응원에 힘입어 벅찬 맘으로 100호를 발행했죠. 그런 뒤 101호째의 편지 서문을 적는 기분이란, 두텁게 쌓아올린 기록에 두 발을 딛은 듯 든든하면서도 다시 1호로 돌아간 듯 생경한 마음입니다. 새해 첫 레터를 고민할 때의 기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역시 1이라는 숫자가 주는 처음의 들뜬 느낌 때문인가 봅니다.

4월이 30일까지니까 그렇게 짧은 달이라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럼에도 요즘은 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벌써 4월이 다 갔어!' 하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봄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 요상했기 때문인지, 주말이 애매하게 걸쳐 평일이 4주뿐이라 그런 것일지... 아무튼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날씨입니다. 모쪼록 외투를 꼭꼭 챙겨 다니세요! 조만간 맞이할 완벽한 봄 날씨를 건강하게 누려야 하니까요.

이번에 골라본 노래들은, PRIIISM을 처음 시작하던 마음과 과정이 닮았습니다. 특정한 주제보단 지금 이 순간 제가 가장 즐겨 듣는 음악들을 모았어요. 올해 어디쯤의 봄에서 띄워 보낸 음악 취향이 누군가에게 꼭 닿으리란 마음으로! 언제나처럼 반갑게 읽고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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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승은 - 생각나는 얼굴들

요즘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이 싱어송라이터에 푹 빠져 있다. 통기타 하나 들고 마치 시를 쓰듯 자신을 둘러싼 인생을 노래하는 이들 앞에서 마음을 뺏기지 않기란 정말 어렵다. 그의 최근 앨범 [인간관계]부터 시작해 걸어온 발자국을 따라가듯 차곡차곡 귀에 담고 다녔다.

2021년 발매한 싱글 <생각나는 얼굴들>은 제목 그대로 여러 얼굴들을 떠오르게 한다. 마음 속에 현상한 얼굴들이 벽지가 되었다고 느낄 만큼 생생하고도 애틋한 추억을 손에 쥐여준다. 무척 단순한 멜로디가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데, 그가 지은 가사 말마따나 ‘이 노래는 백 절까지 부를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정한 친구들과 1박 2일 놀러가서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술에 취해 돌림노래처럼 부르고만 싶다.

눈 떴을 때부터 산책길은 물론 혼자 와인을 꼴꼴 따라 마시던 주말 저녁까지 신승은의 목소리에 빠져 지내다가, 뒤늦게 그에 대해 검색해봤다. 알고 보니 그는 에세이 <아무튼, 할머니>의 저자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귀를 즐겁게 하는 방향으로 따라 걷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도, 이렇게 다재다능한 여성 창작자를 발견하게 됐다. 그가 쌓아 올린 우주는 아직도 구경할 거리가 가득하게 넓고 깊다. 이럴 땐 가끔 부자라도 된 듯 마음이 넉넉해진다.

🌻 전기뱀장어 - 비밀

벌써부터 초여름의 플레이리스트를 고민한다고 하면 너무 이른가? 패션 멋쟁이들도 계절을 앞서가듯 나는 계절을 앞서 듣겠다...라고 하면 허풍이고, 아침저녁으로 달릴 때 듣기 좋은 노래를 고르다 전기뱀장어의 [Fluke] 앨범을 떠올렸다. 만인의 여름 BGM으로 대활약했던 <적도>가 실린 바로 그 앨범. 언제 들어도 여름의 밤바다와 그 언저리의 아스라한 추억을 또렷하게 재생시키는 보컬 황인경의 그 목소리 말이다.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전기뱀장어의 노래는 2011년 발매한 EP [충전]에 실린 <비밀>이다. 그들이 인디 밴드로서 공식적으로 발매한 첫 음반이라 그야말로 인디 오브 인디의 거친 감성이 물씬 풍긴다. 나로서는 전기뱀장어라는 밴드를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음악으로만 기억했기에 걸걸한 록 사운드로 담담한 독백처럼 시작하는 <비밀>이 도입부부터 맘에 들었다.

전기뱀장어의 여러 노래에 등장하는 특징이기도 한데, 이 노래에서도 중간에 길게 흐르는 베이스 독주가 단연 킬링 파트다. 내가 생각하는 베이스의 매력은 무릎 아래 어딘가에 흐르는 음율을 묵직하게 꾹꾹 짚어 누르며 귀 기울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같은 곡을 여러 번 들었을 때 끝내 가장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도 베이스인 경우가 많았다. <비밀>에 밀도 있게 흐르는 드럼도, 기타도 매력적이지만 나는 역시 베이스에 한 표를!

🌻 강산에 - 하루아침

요 근래 유독 뮤직 바를 자주 찾았다. 80~2010년대 가요 신청곡만 받는 술집, 세월을 먼지처럼 뒤집어 쓴 엘피바, 플레이리스트를 컨셉으로 기획한 와인 바 등... 항상 음악과 술의 페어링을 중시하며 살아왔으면서도 요즘 들어 더욱 실감하는 것이다. 음악은 확실히 술자리의 맛을 좌우한다! 나는 뭐든 확신하기보다 여지를 남기는 편이지만 이 명제만큼은 타협 없이 주장하고 싶다.

엘피바에서 소주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렇게 엘피바를 즐기는 이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단 한번도 없었다(1차로 소주를 잔뜩 걸치고 가면 갔지). 보통 와인이나 위스키, 맥주를 각자 흥겹게 들이켜는 분위기가 흔하다. 그래서 최근 어느 엘피바에 앉아있을 때 이 노래의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소주나 한 잔, 소주나 두 잔'으로 시작해 노래의 끝에선 '소주나 아홉 잔'까지 늘어나 있는 게 웃겼다.

<하루아침>은 강산에가 1999년 발매한 동명의 리메이크 앨범에 실렸다. 앞서 1974년에 발표한 한대수가 원곡이다. 하지만 노랫말을 살짝 바꿔 소주를 아홉 잔까지 파격적으로 늘린 점(!), 흥겨운 분위기까지 강산에 버전이 더 맘에 든다. 편한 친구와 엘피바에서 맥주병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을 때, 신청곡이 마땅치 않은 그 시점에 이 노래를 적어보길 추천한다. 분위기를 단숨에 띄우는 역할까진 아니지만 공간의 감칠맛을 분명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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