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5] 🥦 저는 요즘 이 곡들을 자주 듣습니다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세 차례에 걸친 악기 특집 이후 이전과 같은 편지로 인사하려니 조금 어색한 기분인데요. 그동안 계절이 확 달라졌죠. 이제 낮이면 추위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날씨가 포근해졌습니다. 공원과 길가의 나무들엔 매화, 산수유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목련도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네요. 어느새 봄이 돌아왔습니다. 곧 있으면 벚꽃과 개나리, 그 다음엔 장미, 라일락 등이 얼굴을 비치겠죠. 꽃의 시간은 짧으니 순간을 잘 포착하는 게 좋겠습니다.

꽃은 왜 이렇게 빨리 지지, 봄은 너무 짧아. 예전엔 이렇게 아쉬움을 투덜거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연둣빛 새싹이요. 길가에서 매일 같이 만나는 이름 모를 풀들부터 나무, 잔디 같은 것들에서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걸 보면 기분이 싱그러워집니다. 바로 요즘이 그런 시기이니 출퇴근하면서, 나들이 길을 나서면서 주변을 한번 둘러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직 아침과 밤에는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낮의 따스함만 생각하고 옷을 입었다간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죠. 비염이라는 불청객을 달고 사는 저는 이런 환절기면 통과 의례처럼 콧물과 재채기에 시달려야 하는데요. 며칠 시달리다 이제 좀 괜찮아졌네요. 봄날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활기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봄과 잘 어울리는 곡 그리고 제가 최근 즐겨 듣는 곡들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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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briels - One And Only

해가 바뀌고 3개월째 접어드는 동안 몇몇 뮤지션을 새로 발견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뮤지션으로 소울(Soul) 음악을 하는 3인조 밴드 가브리엘스(Gabriels)를 소개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들의 음악에는 종교적인 느낌을 풍기는 곡이 많다. 보컬 제이콥 러스크(Jacob Lusk)의 깊은 울림은 성가대풍 코러스와 어우러져서 성스럽게 들리기까지 하다.

<One And Only>는 2022년 4월에 나왔다. 가브리엘스의 다른 곡에 비해 가스펠(Gospel) 성향이 옅고 경쾌해서 듣기 편하다. 특히 날이 날로 화창해지는 요즘 듣기 제격이다. 가브리엘스가 다가오는 여름 옆 나라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선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라이브 영상을 보다 보면 제이콥 러스크에게서 김희애, 이영자를 모사하는 모 코미디언이 떠오르는데 실제로도 그런지 궁금하다.

가브리엘스 주가는 한창 오르고 있다. 영국 BBC에서 'Sound of'라는 이름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예 뮤지션을 매년 발표하는데, 'Sound of 2023' 후보로 이들이 지명된 것. 'Sound of'에 오른 뮤지션이라면 한번쯤 들어볼 만하다. 누가 여기 이름을 올렸었나고? 아델(Adele),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샘 스미스(Sam Smith), 엘리 굴딩(Ellie Goulding) 등 수두룩하다, 설명이 더 필요 없는 뮤지션들. 가브리엘스 미래는 어떨까?

🥦 Sixpence None The Richer - There She Goes

미국 밴드 식스펜스 논 더 리처(Sixpence None The Richer)는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뮤지션 중 하나다. 많이들 알고 계실 <Kiss Me>부터 그렇다. 봄 기운을 안고 물씬 따뜻해진 바람과 겨우내 말라 있던 가지에서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 하얗고 노랗고 빨갛게 피어오른 꽃잎 같은 걸 보면 마음이 일렁일 수 밖에 없잖은가. 그럴 때 듣는 <Kiss Me>는 분홍빛 주문이 따로 없다.

봄 맞이 음악으로 식스펜스 논 더 리처의 곡 하나를 더 제안한다. <There She Goes>는 보컬 리 내쉬(Leigh Nash)의 비음 섞인 보컬이 매력적인 곡이다. 박혜경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There She Goes>는 구절 없이 간주와 코러스로만 구성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멜로디와 소리를 가졌더라도 같은 것만 반복한다면 금방 지루해질 터, 그래서 곡 길이가 짧은 편이다.

<There She Goes>는 사실 리메이크 곡이다. 원래 영국 밴드 라스(The La's)의 곡으로 1988년에 발매되었다. 원곡에서부터 찰랑거리고 밝은 느낌의 기타 소리가 두드러진다. 기타 멜로디 중심이라는 음악적 특징은 당시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끈 밴드 스미스(The Smiths)와 궤를 같이 하며, 90년대 중후반 브릿팝(Brit Pop), 그러니까 오아시스(Oasis), 블러(Blur), 펄프(Pulp) 등으로 이어진다.

🥦 Depeche Mode - Ghosts Again

뉴 오더(New Order)는 사실상 해체한 지 오래다.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작품을 내놓은 게 언제였더라. 이들과 함께 80년대 신스팝(Synth Pop)을 주도했던 디페시 모드(Depeche Mode)도 한물 간 줄로 알았다. 한창 때 이후로 3~40년이 지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놀랍게도, 아니었다. 2023년 현재에도 디페시 모드는 감각적이다.

디페시 모드의 새 싱글 <Ghosts Again>이 올 2월에 발매되었다. 전자음이 리듬을 만들고 마틴 고어(Martin Gore)가 기타 멜로디를 얹는다. 우리 나이로 올해 환갑을 맞은 데이브 가안(Dave Gahan)의 목소리에는 절제된 도발이랄까, 그런 매력이 여전하다. <Ghosts Again>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밴드의 키보디스트 앤디 플레처(Andy Fletcher)를 기리는 내용이다. 가사부터 뮤직비디오에서 보이는 체스 등은 모두 메타포로 기능한다.

디페시 모드가 누구인가. 통산 앨범 판매량이 1억 장을 넘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름은 로큰롤이지만 대중음악 전체를 다룬다고 봐도 무방하다―'에 헌액된 살아있는 전설이다. 신스팝, 일렉트로닉(Electronic)은 물론 록(Rock), 메탈(Metal)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뮤지션이 수없이 많다. <Ghosts Again>은 전설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오는 3월 24일 이들의 열다섯 번째 정규 앨범 [Memento Mori]가 발매될 예정이니 기대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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