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 지남철처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3주 만에 돌아온 로이입니다. 첫 프롤로그의 서문을 맡고 다음 발행까지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제 차례가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 사이에 날씨는 무척 더워졌네요.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죠?

지난 3주는 저에게 하루하루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는 기대치보다 잘 진행되지 않았고, 몇몇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사소한 균열들이 발생했거든요. 그 와중에 (어느새 커리어 네트워크 용도로 활용되기 시작한) SNS에는 어찌나 저마다의 화려하고 자랑스러운 성공담이 올라오던지, 괜스레 마음이 좁아져 그들을 질투하며 끝 모를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을 타며 그날의 실패를 곱씹어보았습니다.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귀가 벌게지기도 하고 때로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얼굴들을 만나게 되더군요.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창백한 얼굴, 갈등 상황 때문에 난감해하는 얼굴 등 각자 깊이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이라는 땅에 발붙이고 살고 있기에 계속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에서 얼른 벗어나 다시 일상의 궤도로 돌아오는 것이겠지요. 누군가는 이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회복탄력성을 위해 마치 처방전처럼 즐겨 듣는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해보았습니다.

혹시 실패로 인하여 마음이 상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처방전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승열 – Why We Fail

위로는 참으로 어렵다. 누군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넘어져 봐야 성공할 수 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죽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실패조차 교훈이다’ 등의 충고를 하지만, 당장의 실패에 마음이 깨진 사람에게는 공허하다. 그럼 위로를 해줘야 할까? 과연 나의 말 한마디가 진정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조차도 의문이다.

뭔가 잘 안 풀리던 그 날 밤 퇴근길, 친구나 가족의 위로를 고파하기보다 마치 진통제를 투여하듯 에어팟을 끼고 이승열의 <Why We Fail>을 틀었다. 첫 사운드를 듣자마자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떠나는 듯하다. 주변 소음이 차단된다. 창밖 도시 불빛은 마치 모노드라마의 조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시작되는 따뜻하고 깊은 그의 목소리. 그래 이거야.

사실 노래 속 그조차 왜 우리는 실패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마지막에서야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We don’t know라고 읊조린다. 그런데도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풀린다. 대단히 멋있거나 탁월한 답을 듣지 못해도 나와 같은 실패를 똑같이 경험하고 있다고, 역시 답을 잘 모르겠다며 함께 한탄하는 듯하다. 담담하게 사랑과 믿음, 눈물 등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잠시 기대보자.

🍄 방백 – 다짐

실패를 경험한 뒤의 나만큼 찌질한 모습도 없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어찌나 그렇게 처량한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은 네 탓이 커”, “결국 네가 자초한 일이야!” 실패의 원인을 자꾸만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손가락질 하지만 그럴수록 내 손가락이 향하는 곳 끝에는 결국 나 자신이 있다.

음악감독 방준석(앞서 소개한 이승열과 유앤미 블루라는 그룹으로 데뷔했다)과 배우이자 화가 백현진의 프로젝트 밴드 방백의 <다짐>은 실패 후 찌질함을 너무나도 잘 담아냈다. 그것도 최소 30~40대 정도는 되는 아저씨의 걸걸한 찌질함 말이다. 날것에 가까운 백현진 님은 목소리를 듣다보면, 정말로 그와 함께 한강을 걸으면서 한숨 섞인 방백(傍白)을 듣는 듯하다.

그래도 멋있다. 낙담하고 가라앉더라도 어쨌든 다시 다짐하니까. 중이나 될 걸 하는 헛생각을 하며, 세상을 등지려다가도 다시 무언가를 해보잔다. 찌질해도 좋다. 못나 보여도 어떤가? 도대체 언제쯤 좀 더 괜찮은 내가 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 일단 나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 베란다 프로젝트 - 산행

너무 유명한 노래라 실망스러우셨을까? 부디, 잘 아는 노래라 반가우셨길 바란다. 사실 우리도 아플 때 남들이 다 좋다는 맛있고 든든한 보양식을 먹지 않는가? 베란다프로젝트의 <산행>은 그런 노래다. 이승열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실패에 대해서 고뇌하고 노래한 뒤, 방백의 노래를 통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짐한다면, 베란다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마치 페이스 메이커 같다. 험난한 산길을 오르다 지칠 때쯤이면, 등을 밀어주고 같이 견뎌준다. 탄식어린 많은 질문들을 던질 때마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다 메아리로 꼭 안아준다. 태산 만큼이나 너른 넉넉함에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감춰왔던 슬픔까지 꺼내 산행길에 묻어두고 싶다.

<산행>까지 들으며 PRIIISM을 준비하다 보니 구멍 난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다. 이번에도 처방전의 약효는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 온라인 예배를 통해 목사님께 시 한편을 소개받았다. 이 시 덕분에 결정적으로 마음이 완전히 메워졌다. 그래서 구독자 여러분께도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계속해서 흔들리는 까닭은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매일매일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떨고 있는 지남철과 같은 우리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참 잘하고 있다고. 

P.s. 영원히 기억될 저의 첫 영웅, 유상철 감독님을 추모합니다. (1971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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