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18] 🥦 대 알고리즘 시대에 수제 추천 곡이라니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구독자 님은 생성형 AI를 많이 사용하시나요? 챗지피티(ChatGPT), 딥시크(DeepSeek) 같은 것들이요. 꼭 일할 때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심심풀이로도, 진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 등등 요즘 정말 많이 사용하더라고요. 아 저요? 저는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평균보다 적게 사용하지 않을까 싶어요. 업무 때문에 번역이 필요할 때나 가끔 심심풀이 정도로 쓰고 있답니다.

생성형 AI가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는 인공지능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부터 SNS, 포털사이트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당장 이 PRIIISM 편지부터 알고리즘 덕분에 처음 만나게 된 분이 있겠죠. 음악 감상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듣고 싶은 곡을 하나 고르면 그 다음부턴 알고리즘이 그와 비슷한 음악들을 알아서 들려주니까요.

그래서 요새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그런 책도, 강연도요. 최근에 저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추천 곡 듣기에 더 간편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메일리를 통해 PRIIISM을 구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생각한 이유 하나는 다양성, 또는 자유분방함입니다. 저나 숑🌻, 로이🍄가 쓴 편지와 추천 곡들을 보면 어떤 주제로 묶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이더라고요. 알고리즘이라면 나오지 않았을 조합이랄까요.

오늘도 그렇습니다. 세 곡을 하나의 주제로 묶기 어렵네요. 장르로 보면 재즈 하나 록 둘, 록도 사실 세부 장르로 가면 둘이 다르고요. 그래서 들리는 느낌도 사뭇 다를 거예요. 시대로 봐도 1950년대, 1990년대, 2020년대로 제각각입니다. 똑 떨어지는 것도 멋지지만 '따로 또 같이'도 나름대로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오늘은 말이 좀 길어졌네요. 이만 노래 들으러 가시죠. 더위에 몸 잘 챙기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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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t Baker - My Heart Stood Still

당연히 곡마다 천차만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장르마다 어울리는 계절을 구분하라면, 나는 재즈는 추운 계절이 제철이라고 생각한다. 풍성한 관악기, 콘트라 베이스의 단정한 울림이나 브러시로 스네어 드럼을 쓰다듬는 소리는 아무래도 따뜻한 느낌에 가깝지 않나? 무엇보다 재즈 보컬은 따뜻한 질감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é), 로라 피지(Laura Fygi)를 들어보시라!

그러나 이 목소리는 분명 여름에도 괜찮다. 아니, 특유의 서늘한 질감이 오히려 겨울보다 여름에 빛을 발할지도 모르겠다. 쳇 베이커(Chet Baker)다. <My Heart Stood Still>은 1958년에 발매된 쳇 베이커의 보컬 앨범인 [Chet Bakers Sings: It Could Happen To You]에 실려 있다. 이 곡은 쳇 베이커의 여리고 서늘한 목소리에 쿨 재즈(Cool Jazz) 특유의 경쾌한 피아노 연주가 산뜻하다.

재즈가 흔히 그렇듯 <My Heart Stood Still>도 그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스탄 게츠(Stan Getz) 등 다른 많은 뮤지션들이 부르고 연주했다. 하지만 글쎄, 쳇 베이커 버전 말고는 여름에 듣고 싶지는 않다(곡이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쳇 베이커의 목소리는 분명 남다른 마력이 있다.

🥦 Soundgarden - Black Hole Sun

징그럽게 뜨거운 나날이다. 2018년 이후 가장 더운 것 같다. 구름이라도 끼면 좋으련만 연일 태양이 작열한다. 날이 밝을 때 바깥에 조금만 있어도 금방 진이 빠지고 만다. 비(정지훈)가 옳았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연구했어야 했다(양산이라도 꼭 챙기자). 아니면 태양을 잠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까? 가령 블랙홀에 넣어뒀다 꺼낸다든가.

<Black Hole Sun>은 90년대를 풍미한 그런지 록 밴드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대표 곡이다.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 고유의 번민하고 저항하는 듯한 목소리의 매력이 진하게 배어난다. 이 곡을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들은 지 몇 년 지나고 나서야 <Black Hole Sun>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왜 이 곡이 사운드가든, 크리스 코넬 최고의 곡으로 꼽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기타 멜로디가 매우 낯설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나중에서야 이 곡이 기타 튜닝도 기본에서 변형을 준 것이고, 코드 진행도 독창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 이 곡이 낯설고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금만 더 들어봐요, 나중에 좋아질지도 모르니까.

<Black Hole Sun>은 묘한 곡이다. 사운드는 얼핏 청량하고 보컬은 나른하다. 뮤직비디오처럼 탁 개서 많은데 햇볕은 너무나 뜨거워서 진이 빠져버렸을까. 그러다 악기와 목소리 모두 힘이 실리면서 강렬해지고 뒤섞이면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곡을 쓴 크리스 코넬에 따르면 <Black Hole Sun>은 딱히 메시지를 담은 것이 아니라 "그냥 초현실적인 꿈 같은 풍경을 그린, 제목을 이용해 장난치는 듯한 곡"이라고 한다. 후반부에 "Black hole sun, black hole sun"을 연달아 외칠 때의 묘한, 신기루 같은 느낌이 떠오른다. 지금 이 더위도 겨울 한파에 떨 땐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느껴질까.

🥦 The Favors & FINNEAS & Ashes - The Little Mess You Made

물론 그 스스로의 탁월한 재능이 가장 큰 비결이겠지만,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엄청난 성공에는 오빠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아시는지. 빌리 아일리시의 '혈육' 피니어스(FINNEAS)는 동생이 부른 음악 대부분을 만들었고 프로듀싱을 도맡았다. 제작만 하기에는 역량이 너무나 컸다. 피니어스 자신도 2021년에 솔로 1집 [Optimist]를 발매하며 가수로도 정식 데뷔했다. 최근에는 이전에 듀엣 곡으로 이미 호흡을 맞췄던 애쉬(Ashe)와 밴드를 결성했다. 그게 더 페이버(The Favor)다.

잠깐 쉬어가는 차원에서 여담 한마디. 길게 늘어진 뮤지션 이름은 음원 사이트에서 제공한 것을 존중해서 그대로 쓴 것이다. 그냥 페이버로 하면 되지 왜 뒤에 피니어스와 애쉬를 병기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편의상 더 페이버로 말하기로 한다.

<The Little Mess You Made>는 페이버가 낸 첫 번째 싱글이다.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가슴 아릿한 이별 노래다. 피아노와 보컬 중심으로 단출하게 시작해서 점점 고조되는, 기승전결이 매력적인 드라마다. 피니어스와 애쉬 두 사람의 목소리가 참 잘 어우러진다. 특히 피니어스는 97년생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외모도 목소리도 성숙하다(데뷔 때부터 그렇긴 했지만). 페이버는 오는 9월 정규 앨범 [The Dream] 발표를 예고했다.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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