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4] 🥦 이 편지엔 신경안정제 두 곡이 담겨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전국 대부분을 눈이 새하얗게 뒤덮었던 설 명절도 지나고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음력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새해인데요. 구독자 님은 새해 목표나 계획 같은 걸 세우는 편인가요? 저는 세우지 않는 편입니다. 당장 다음 달, 다음 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1년을 예상하고 계획하는 것은 너무 아득하고 거창하게 느껴지는 것 있죠.

그렇지만 올해는 새해 계획을 세워봤습니다.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가 작성한 것으로 유명한 만다라트를 짜봤는데요. 8개 분야에 걸쳐 모두 64개 과제들을 채우니 나름 알차 보이더라고요. 수시로 과제들을 확인하고 생각하게 되면서 동기부여가 되는 걸 느끼며 하길 잘했구나 싶네요. 앞으로 이 과제들을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벌써 올해 연말 정산이 자못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연말을 지나 새해 명절을 맞으면서, 한 해 계획을 세우며 듣고 즐긴 곡들을 소개해드립니다. 꽤나 추운 한 주를 보내고 있는데 이번이 아마 올 겨울 마지막 한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추위 뒤에서는 봄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있겠죠. 당장 눈에 보이고 피부에 느껴지진 않더라도요. 모쪼록 몸 잘 챙기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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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S. Bach -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 Air

그 유명한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G 선상의 아리아'다. 클래식 중엔 이름은 몰라도 들어보면 '아!' 하는 곡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이 곡 아닐까. 특히 몇 해 전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 도입부에 샘플링 되어서 우리에게 더 친숙해졌기도 하다. 클래식은 같은 곡이어도 누가 연주했느냐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연주자 또는 지휘자에 주목하는 이유다. 여기 가져온 것은 한국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Sarah Chang)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버전인데, 몇 년 전 본 사라 장 공연에서 이 곡이 앙코르 곡으로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이었던가. 첫음이 연주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따뜻한 바이올린 소리에 고막부터 온몸과 마음이 다 녹아내리는 듯한 황홀한 순간이었다.

추운 겨울이나 마음을 온화하게 달래고 싶을 때 이 곡을 재생 목록에 올리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왜 'G 선상의 아리아'일까? 제목을 보면 G가 아니라 'D Major'라고 되어 있는데 왜? 알고 보니 'G 선상의 아리아'라는 이름은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한 후대에 한 독일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의 G현만 켜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편곡 후에 G현으로 연주하면 된다고 일러두기 위해 악보에 독일어로 "Auf der G-Saite(영어로 하면 'On the G string')"라고 써놓았는데 그게 제목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클래식을 아기 걸음마 수준에서 듣는 내 입장에선 이해가 된다. 장황한 제목보다 'G 선상의 아리아'가 기억하기 훨씬 쉽지 않은가. 클래식 곡 중엔 원 제목보다 유명한 이름이 꽤나 많다. 기회되면 또 소개하겠다.

🥦 Radiohead - Nude

이 곡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꺼내 듣는 상황이 있다. 상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새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하늘은 언제 눈을 흩뿌렸냐는 듯 푸르게 갰다. 집밖을 나선다. 햇살이 눈에 부서져 반짝인다. 눈이 부시다. 영하의 날씨일 테고 입김도 선명하게 보이지만 이런 날은 어쩐지 포근하게 느껴진다. 바로 이럴 때 라디오헤드(Radiohead)의 <Nude>가 생각 난다. 이 곡은 라디오헤드의 일곱 번째 앨범 [In Rainbows]에 수록되었다. 이걸 나는 라디오헤드 앨범 중 가장 좋아한다.

처음 몇 초 동안 신디사이저 효과음과 몇 겹으로 쌓인 보컬 톰 요크(Thom Yorke) 목소리가 찾아온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눈발이 나리는 것 같다. 12초쯤 드럼 소리에 이어 흘러나오는 현악 연주는 눈에 부서져 반짝이는 햇살을 묘사한 것 같다. 이렇게 도입부 30여초만의 인상으로 나는 이 곡을 눈 쌓인 맑은 날 아침이면 찾게 된다. 여기에 더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곡에 리듬감을 불어넣는 콜린 그린우드의 베이스 라인, 여리고 고독한 톰 요크의 가성이 아름답다. 참고로 곡 내용은 눈과 아무 관련이 없다(죄책감에 관한 노래라고 한다). 곡 내용이야 아무렴, 내게 <Nude>는 겨울 노래다. 무릇 예술은 창작자의 의도가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수용자의 해석도 중요하다.

🥦 Kanye West - Touch The Sky (Feat. Lupe Fiasco)

노래는 거들 뿐 음악 콘텐츠 소개라고 해야겠다. 여느 때처럼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뒤적이던 주말 밤이었다. 알고리즘이 카더정원(싱어송라이터 카더가든의 유튜츠 채널명)의 영상을 띄웠다. 썸네일과 제목으로 보아 초중고교에 있는 밴드를 찾아가서 뭔가 일을 벌이는 모양이었다. 딱히 기대 없이 재생시켜 보았다. 재미 없으면 다른 걸로 돌리면 그만이니까. 웬걸, 재밌다. 학생들 실력도 좋고 무엇보다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예뻤다. 그렇게 관련 영상 9편을 내리 봐버렸다. 하나하나가 다 재미나고 심지어 감동적이기도 했는데, 압권은 초등학생 밴드 키즈 일렉트릭 오케스트라(Kids Electric Orchestra, 이하 키일오) 편이었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를 연상시키는 밴드명부터 심상치 않았다. 키일오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니 무슨 초등학생이 라디오헤드(Radiohead), 그것도 <Paranoid Android>를 연주한단 말인가! 키일오가 지난해 9월 페스티벌 공연은 더더욱 놀랍다.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21 새비지(21 Savage), 누자베스(Nujabes)에 마지막은 메탈리카(Metallica)를 연주한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부터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하니 꼭 위 영상을 보시길 권한다. 관객 반응에 웃는 걸 보면 역시 귀여운 초등학생들이다. 그러나 연주, 노래, 사운드 메이킹(키보드로 연출한 기타 소리가 특히 감쪽같다) 같은 실력은 전혀 귀엽지 않다. 굉장하다.

키일오가 이러한 음악을 하게 된 것은 카더정원 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지도교사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예체능 과목이 등한시되기 십상인 우리 교육 현실에서 이런 선생님과 학생들 모습이란 얼마나 귀한가. 그 시간이 학생들에게 두고두고 좋은 양분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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