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9] 🌻 상쾌한 샤워 같은 소리로 비를 내리는 노래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하반기란 사실이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7월의 정수리에 레터를 쓰는 숑🌻입니다. '원래 매년 여름이 이랬던가' 자문하게 될 만큼 축축한 나날이네요. 그나마 에어컨이 펑펑 나오는 사무실에 있다 밖으로 나올 때마다 온몸의 땀구멍부터 녹아 내리는 느낌입니다. 날씨 어플을 도배한 비 표시에 우산을 매일 가지고 다니느라 가방이 묵직하며 습기에 머리가 축축 달라붙는 날씨고요. 늘 비슷한 일상을 살아낼 뿐인데 하루하루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튼 프라이데이 이브까지 달려온 모든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안간 낯 모를 구독자님들의 고생을 치하하는 건, 사실 스스로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야근과 운동을 마치고 나면 스위치 끄듯 잠들어버리는 나날을 며칠째 보내고 있거든요. 회사에 있을 땐 시간이 세 시간씩 통째로 사라지는 것 같고, 퇴근길엔 문득 '요즘 나 너무 안 웃는데?' 싶어 스산한 기분마저 느꼈습니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쁨을 느낀 순간이 아주 없지는 않았어요. 어느새 활짝 만개한 능소화를 보고 경탄하고, 어떤 날은 회사 근처에서 너무 맘에 드는 카레 한 그릇을 비우고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요. 하반기와 7월이란 단어가 아직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바쁨 속에서도 시간과 계절을 의식하고 감각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손 틈새로 흐르는 모래처럼 이 시간이 숭덩숭덩 흘러가버릴지 모르니까요.

오늘 소개할 세 곡은 현생의 한가운데서 스스로 에너지를 불어넣으려 자주 들었던 노래들입니다. 마치 체력을 채우는 빨간 포션 같은 곡이라고 할까요. 저는 일단 톡톡히 효과를 봤답니다. 습기와 바쁨 사이를 자유형으로 헤쳐나가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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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 Live Wire

발매 연도를 찾아보고 좀 놀랐다. 여전히 이렇게 세련되고 신선한 데다 이 노래를 신곡으로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던 기분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무려 2004년 앨범이라니. 사실 서태지 7집은 일일이 명곡이라 하나만 소개하기 아쉬울 정도다. 최근 같은 앨범의 <10월 4일>과 <Heffy End> 역시 못지않게 자주 들었으니까! 리빙포인트: 습한 날씨에 서태지의 목소리는 정말로 제습기 같다. 레터의 제목으로 삼은 후렴구 말마따나, 꼭 상쾌한 샤워 같은 소리로 비를 내리는 듯하다. ―이 노랠 알던 사람이라면 이미 제목에서부터 가사를 흥얼거렸을 것!―

7집에서도 <Live Wire>가 나의 원픽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도입부부터 샤워기로 찬물을 때려붓는 듯 시원한 밴드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훅도 근사하지만, 단연 노랫말이다. 이 노래에는 평소 한국어 가사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단어가 속속 등장한다. '도대체 너희가 뭔데 내 판단에 제재', '어떤 탄압이라도 내겐', '오늘을 반드시 우리의 독립기념일로 나 만들겠어' 같은 부분들. 하이라이트는 역시 '향긋한 바람과 함께 쿠데탈, 외쳐!'

초중딩 시절 이 노래를 들으며 '쿠데타'란 단어를 꽤 생소하게 여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백덤블링하면서 봐도 어른의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들으니 같은 가사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이 신기할 뿐이다. 착실히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일개미1로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일상의 탄압에 맞서는 반항심을 조심스레 품어본다. 향긋한 바람과 함께 오늘 당장 쿠데탈... 아, 잠깐 이 메일만 마저 쓰고..

🌻 전영호 - Butter-Fly

근 2주간 가장 자주 들은 노래를 꼽으라면 바로 이 곡이다. (비밀의 열쇠를 쥐고 디지털 세계로 떠날 준비했던 동년배 어른들은 조용히 손을 들어주세요...) 나는 이따금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투니버스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챙겨 듣곤 했다. [나루토], [원피스]부터 [쾌걸근육맨],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까지 그 시절 만화들은 어쩌면 그렇게 걸출한 노래만 뽑았는지!

<Butter-Fly>는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 오프닝이었다. 지금과 비슷하게 바쁜 평일을 보내던 며칠 전, 유튜브 클립으로만 들어야 했던 이 노래가 6월 24일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와! 이렇게 생생하고 깔끔한 음질로 <Butter-Fly>를 들을 수 있다니! 뒤늦게 알아보니 앨범 발매를 위한 텀블벅 펀딩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억과 재력을 갖춘 어른을 막을 자는 없다. 저마다의 디지바이스를 소중히 간직하고 음원 발매를 추동한 동료 어른들에게 지면에서나마 안부와 감사를 전해본다.

한동안 매일 아침 출근길의 첫 곡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 / 그래도 날아오를 거야'로 이어지는, 결코 길지 않은 이 노랫말이 어찌나 든든한 위로로 느껴지던지. 특히 도입부에서 무반주로 시작할 때 그 전율이란! 새로 나온 음원이 물론 멀끔하지만, 거친 질감의 그 시절 음원(조회수 천만의 위엄과 동년배들 추억팔이 댓글을 곁들인)도 가끔 색다른 느낌으로 찾아 듣게 될 것 같다.

🌻 SLASH - World on Fire

뜬금없지만(누군가에겐 새삼스럽겠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모든 음악을 통틀어 '이런 종류'의 락 장르를 가장 좋아한다. 24/7 생각으로 그득한 머릿속을 정열로 꽉 채우고 잡념을 초기화해주는 노래! 귓구멍을 날카롭게 벅벅 긁는 보컬과 세션의 고생이 뻔히 보이는 불꽃 연주! 좋아하는 만큼 레터에서 더 자주 소개하지 못한 이유라면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서다. 그냥 끝내주게 좋아서 욕밖에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차분하게 소개할 수 있나요?

슬래쉬(SLASH)의 이름은 영국 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기타리스트로 설명하는 편이 더 친숙할지 모르겠다. 건즈 앤 로지스를 포함해 몇몇 밴드에 몸 담던 그는 2010년부터 솔로 앨범을 발매하기 시작했고, <World on Fire>를 비롯한 대부분의 곡에 마일스 케네디(Myles Kennedy)가 보컬로 참여했다.

<World on Fire>는 그런 그가 2014년 세 번째 발표한 솔로 앨범의 수록곡이다. 2019년 내한공연을 다녀오지 못한 스스로를 지금까지 책망하고 있다. 아직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은 없지만, 행동에 옮긴다면 일렉 기타나 베이스를 배우고 싶다. 기타리스트가 된다면 99%의 확률로 슬래쉬의 연주를 높은 이상에 두게 될 테다. 뭐... 지금은 현생이 바빠서 엄두도 낼 수 없는데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아무튼 '이런 종류'의 락 음악은 요즘 같은 날씨에 애청해야 옳다. 나에게만큼은 'World on Shower'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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