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4] 🌻 음악으로 더위를 견디는 몇 가지 방법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문자 그대로 폭염의 나날입니다. 말복 날짜를 검색하다가 복날에 대한 재밌는 속담을 발견했습니다.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인데요. 별 대단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 몸이 축축 처지고 힘이 솟지 않던 나날에, 옛날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을 했구나 싶어 괜히 반가운 마음도 들더라고요.

'올해가 유난히 더 더운 걸까, 내 인내심이 매해 떨어지는 건가' 의심을 품다가도 작년 이맘쯤의 레터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적었길래 나름의 위안도 얻었답니다. 절기로 따진다면 대서(大暑)를 갓 지난 시기이자 중복과 말복 사이에 자리 잡은 지금이 그야말로 여름의 중턱인 듯합니다. 봉우리에 올라섰으니 힘든 게 당연하지만 머지않아 멋진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겠죠.

오늘 골라본 노래들은 이마에 붙은 땀방울도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 잠시나마 눈을 빛나게 한 순간들에 함께한 플레이리스트입니다. 사실 시계추처럼 일상을 반복하는 일 외에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기도 버겁게 느껴지는 날씨지만, 좋은 음악이 주는 에너지는 여전히 유효하더라고요. 틈틈이 보양식을 챙기듯 힘이 나는 노래를 챙겨 들으며 이 계절을 무사히 건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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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ic Clapton - Change the World

엘피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는, 별 기대 없이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는 찰나 들려오는 노래에 고막을 뺏겨 다시 엉덩이를 붙이게 될 때다. 사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아 계획에도 없이 비운 술병이 몇인지 다 헤아릴 수도 없지만 아무튼... 지난 주쯤 간만에 홀로 엘피바를 찾았다가 에릭 클랩튼의 이 노래에 폭 빠졌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헤드폰으로 정신없이 한 곡 반복을 하는 동안은 습한 날씨를 잠시 잊을 정도였다.

<Change the World>는 1996년 개봉한 영화 [페노메논]의 엔딩 OST였다고 한다. 가사를 찾아보니 아주 스윗한 사랑 노래여서 살짝 김이 빠졌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게 하는 기타 연주와 성난 마음을 보듬는 에릭 클랩튼의 목소리가 그저 감탄스럽다. 올 여름, 습도와 온도에 마음이 잔뜩 달궈졌다고 느낄 때마다 이 차분한 선율을 잊지 않고 떠올리려 한다.

🌻 너드커넥션 - I Robbed a Bank

푹푹 찌는 더위에 0순위로 손이 가는 음악은 (주관을 듬뿍 담아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락과 메탈이다. 달궈진 심신을 명상하듯 달래봐도 좋지만 대부분의 순간은 망치로 깡 내리쳐서 부수거나 뒤집어놓고만 싶다. 그런 순간들에 딱 어울리는 노래를 너드커넥션이 발매했다! 사실 전주만 듣고도 내가 알던 너드커넥션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좋은 밤 좋은 꿈>을 부른 그 감성적인 밴드가 이런 노래를?

<I Robbed a Bank>는 그들이 올해 5월 발매한 따끈한 싱글이다. 미국 밴드가 헤드뱅잉하면서 만든 메탈에 브릿팝 한 스푼 넣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가사가 다 영어여서 그런지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단박에 19금 딱지를 붙여버린) 딱 한여름의 락페처럼 시원시원한 가사가 맘에 든다. 등줄기에 땀이 주룩 흘러내리는 순간 한 줄기 손풍기 바람이 되어줄 것 같은 그런 노래. 맞다, 여름에는 아무튼 락과 메탈이다!

🌻 ABBA - Our Last Summer

갑자기 너무 늦여름스러운가? 나는 언젠가부터 아바(ABBA)의 이 노래를 그 어느 때보다 여름다운 순간마다 듣고 있다. (물론 카스테라처럼 보드라운 콜린 퍼스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맘마미아 OST 버전도 빠뜨릴 수 없다) 물방울이 송송 맺힌 캔맥주를 들이켜는 여름 밤에도, 모기에 물어뜯긴 다리로 무성한 풀숲 사이를 걸을 때에도 이 노래만 들으면 '지금 역시 언젠가 그리워 할 여름날이구나' 싶어지기 때문에.

말하자면 여름을 순식간에 미화하거나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데 이 노래 만한 특효약이 또 없다. 제목처럼, 지금 마주하는 모든 여름이 곧 '우리의 지난 여름(Our Last Summer)' 아닐까 하는 생각도 품어본다. 1분 1초마다 현재가 과거로 바뀌어가듯 지금의 무더위도 머지않아 '지난 여름'이 되고 마니까. 아마 내년과 내후년의 어떤 여름에도 'Our Last Summer~'를 흥얼거리며 흘러간 여름을 회상하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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