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7] 🌻 락페 3일 출석, 제가 해보았습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햇살과 공기가 온몸으로 실외활동을 주장하는 날씨네요. 지난 주말 저는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공연만을 위해 다른 도시에 가본 일이 왕왕 있었지만 3일권을 사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첫 부락의 이미지는 여러 모로 신선했습니다. 돼지국밥과 밀면을 파는 F&B 부스, 대선 소주 더블샷과 1리터 짜리 맥주를 파는 드링크 바, 스탠딩존 곳곳에서 무심하게 귓전을 스치는 사투리들.. 공연을 보기 전부터 무수한 인풋에 정신 차리기가 힘들었어요!

물론 3일 내내 라인업도 출중했습니다. 그간 페스티벌 라인업에 빈출했던 탄탄한 국내 밴드는 물론 요즘 눈에 들어오던 신예 밴드, 팬층 두터운 해외 뮤지션까지..! 몸뚱이는 하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을 반복하며 즐겁게 쏘다녔네요. 마지막 날엔 기어코(?) 빗방울이 떨어져서 꽤나 하드한 머드축제로 마무리되었어요. 이 또한 첫 부락의 잊지 못할 진풍경으로 오래 기억하게 되겠죠. 막판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역시 한여름 체감 40도의 펜타포트보다는 훨씬 쾌적하기도 했고요.

락 페스티벌만이 가진 의미를 설명하는 단어는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기꺼이 진흙바닥에 앉아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무대에 등장한 밴드를 두 팔 벌려 환대하고, 어떤 혐오와 의심 없이 처음 본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고 어깨동무를 하며 흥을 나누는 관객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뭉클한 기분마저 들어요. 이런 종류의 음악이 없는 세상에서 내가 잊고 지냈던 건 뭘까, 이만큼의 몰입을 위해 견뎌온 건 뭐였을까 돌이켜보게 된달까요. 오늘은 3일간 즐기고 온 부락에서 세 곡을 어렵게 꼽아봤습니다. 아직도 어룽대는 현장의 열기가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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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리카겔 - Ryudejakeiru

실리카겔의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2022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낮 12시 무대였던가, 그들이 곧 나올 신곡이라며 <No Pain>을 불렀는데 저만치 떨어진 돗자리에서 들으면서도 노래가 좋아서 신명나게 감상했다. 불과 2년 만에 무럭무럭 벌크업해서 해질 무렵 메인 스테이지를 차지한 이들의 성장 속도에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실리카겔 붐은 온다.. 아니 이미 한참 전에 와 있었구나!

사실 새벽부터 서울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느라 잠이 부족해선지 이번 공연 초반 무렵 피로가 몰려와서 집중력이 살짝 흩어졌었다. 그러다 마지막 곡으로 흘러나온 이 노래에 머릿속 전구가 딱 켜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2년 전 펜타포트 무대에서 <No Pain>을 처음 들은 그 순간처럼. 쇠 냄새 가득한 실리카겔의 음악세계에 이만큼의 따스함이라니, 마치 아주 냉정한 사람에게서 언뜻 비치는 다정한 순간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류데자케이루' 이건 무슨 뜻인가 싶어서 검색도 안 하고 하루종일 추측만 했는데(남미 어딘가의 지역 이름인가? 일본어 인삿말인가?) 알고 보니 아무 뜻도 없다고 한다. 작곡자 김한주의 인터뷰에 따르면 노랫말을 고민하다 '그냥 얘는 류데자케이루라고 말해야 될 것 같은데?'라는 어떤 계시적인 느낌이 있어서 붙였다고. 하긴 뭐 오아시스의 '원더월'도 그네들은 별 뜻이 없었다고 하니, 듣는 입장에서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 SPYAIR - Samurai Heart (Some Like It Hot!!)

부락 둘째 날 나만의 헤드라이너를 꼽자면 단연 스파이에어(SPYAIR)다. 사실 공연을 가기 전까지 이들을 몰랐다. 하루 전날쯤 '아, 사무라이 하트는 들어봤지!' 정도의 인지도였는데.. 공연 시간인 50분이 마치 5분처럼 흘렀다. 알고 보니 스파이에어는 데뷔 14년차에 국내 인지도도 출중한 일본 밴드였다(애니알못조차 알고 있는 그 유명한 '하이큐'의 테마곡을 불렀다니). 밴드의 세계는 드넓고 이렇게 좋은 노래 그동안 또 나만 몰랐지...

기존 보컬이었던 이케가 희귀병으로 2022년 탈퇴했고, 2023년부터 새로운 보컬인 요스케가 영입되었다. 페스티벌 현장에서 처음 듣는 노래만으로 50분을 열광으로 채울 수 있었던 건 요스케를 포함한 밴드 멤버 모두의 기깔난 무대매너 덕이었다. 마이크를 쥐고 호응을 유도하는 몸짓과 자신감이 끓어오르는 미소 하나하나까지 사람을 어찌나 고양시키던지. 모두가 슬로건을 하늘 높이 들고 휘휘 돌리던 사무라이 하트는 내게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 Ellegarden - Supernova

넉넉하다고 생각했던 3일의 락페도 어느덧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지난 이틀간 한 해 가장 완벽한 온도를 응축한 것 같았던 날씨는 낮부터 빗방울을 뿌려댔다. 해질 무렵쯤 되니 비가 제법 쏟아져 주최 측에서 우비를 나눠줬고, 돗자리엔 물이 흥건해졌으며 흙바닥은 그야말로 뻘밭이 되었다. 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아 이때 조기 귀가한 관객도 많았을 것이다. 그 말인즉 헤드라이너를 기다리며 어딘가에서 바득바득 남아있던 관객들은 좋은 의미로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던 것...

나 역시 부락까지 이끌린 이유에 엘르가든의 비중이 꽤 컸기 때문에 비 따위에 굴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니 다시 비는 그쳤고, 질퍽한 진흙밭에서 기다리다 보니 눈앞에 그들이 나타났다.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 엘르가든! 아니 글쎄 기다리던 밴드가 첫 곡으로 최애곡을 말아주다니. 사실 3일간의 피로가 쌓여 체력이 비상을 외치고 있었지만 <Supernova>를 들으며 잠재된 에너지까지 모두 흩뿌린 것 같다. 역시 20년 넘게 활동한 밴드의 무대에서는 실패하지 않는 관록이 느껴진다. 보컬 호소미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관객들을 적당히 칭찬하며(?) 지치지도 않고 열기를 이어갔다.

이날 공연의 후반부, <Make a Wish>의 첫 소절 'Sunday is over~'가 시작될 땐 락페 마지막 날이 저물어간다는 사실이 확 체감되어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왜인지 다가올 현생도 두렵지 않은 기분이었다. 락스피릿으로 가득 채워 맞이한 가을의 정수리가 여느 해의 시월보다 특별하고 충만하게 느껴졌으니까. 음악에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3일의 기억은 앞으로의 일상에서도 빛나는 책갈피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르의 편견 없이 넘치게 챙겨 들은 노래들 덕에 당분간의 플레이리스트는 걱정 없겠다는 든든함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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