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04] 🌻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계절에 들은 노래들

한 주도 평안하게 보내셨나요? 5월의 중간 지점에서 숨 고르며 편지를 쓰는 숑🌻입니다. 구독자님의 5월은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나요? 저는 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상반기의 그 어떤 달보다 정신없는 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올해는 여름이 더 빨리 오려는지 한낮의 기온이 심상치 않네요. 아무리 여유가 없을지언정 5월의 산책을 꼭 사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요즘 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어딜 가든 한두 정거장씩 일찍 내려 걷고 있어요. 늘 걷는 천변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울창하게 자라나는 풀과 나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비라도 내린 날엔 자세히 쳐다보면 이파리의 표정이라도 보일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사람만큼이나 5월은 식물에게도 너무 행복한 계절일 거란 생각도 들고요.

오늘 소개하는 세 곡은 이렇게나 산책에 더욱 몰두하는 요즘 자주 듣고 있는 노래들입니다. 흥겨운 산책길, 활력이 필요한 출근길, 설레는 약속으로 향하는 주말의 걸음 등 어떤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듣게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한 주도 참 많이 고생했으니, 오늘은 산뜻한 노래와 함께 5월의 산책을 셀프 선물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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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ound - I Can Get Over You

별 생각 없이 귀를 채우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대체로 나는 헤드폰을 끼고 그날의 첫 곡을 고르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다. 가끔은 지금 선택한 노래가 오늘의 내 태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너무 거창한가? 하여튼 완연한 봄 날씨로 접어든 다음부터 가장 자주 첫 곡으로 고른 노래가 바로 디사운드(D'Sound)의 <I Can Get Over You>였다.

디사운드는 1996년 데뷔한 노르웨이의 3인조 밴드다. 현재 베이스와 드럼을 맡고 있는 두 멤버가 버클리 음대에서 만났고, 이후 보컬 시몬을 만나 그룹을 결성했다고 한다. 그들을 잘 안다고 할 만큼 노래를 많이 들어보진 못했지만, 어떤 곡을 고르든 흥겨운 리듬과 시몬의 산뜻한 목소리가 만족스러웠다.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어딘지 춥고 쓸쓸한 분위기를 연상시키지만 디사운드의 노래는 대체로 청량하고 희망찬 느낌을 준다.

지난 주말에도 한낮의 열기가 사그라든 시간쯤 동네 천변을 걸으며 어김없이 이 노래를 첫 곡으로 택했다. 걷고 있는 곳이 어디든 시원하고 달달한 마실거리를 들고 뛰듯이 발걸음을 튕기고 싶어지는 리듬. 언젠가 올해의 5월을 돌이켜본다면 긍정적인 기분으로 망설임 없이 이 노래로 손을 뻗던 순간들이 썸네일처럼 떠오를 것 같다.

🌻 윤지영 - City Seoul

지난 달 발매한 윤지영의 첫 정규앨범 [나의 정원에서]에 실린 곡이다. 내가 기억하는 윤지영은 (작년에 PRIIISM에서도 소개한 바 있던 곡인) <Blue bIrd>의 이미지였다. 이따금 찾아드는 불안과 우울을 차분하게 응시하듯, 태연한 혼잣말 같은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앨범의 소개글을 읽어보니 '미숙한 나를 인정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성숙하고 싶어졌다'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앨범의 트랙 곳곳에서 그가 한결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을 전해 받았다. <City Seoul>은 그 중에서도 '이게 윤지영 노래라니!' 싶어 소소한 충격을 받았던 곡이다. 먹구름 한 점 없이 경쾌한 사운드 속에서도 내가 매력을 느꼈던, 어딘지 무뚝뚝한 말투로 느껴지는 창법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5월 내내 열심히 들으면서 '레터에 소개해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어제 이 곡의 뮤비가 공개됐다. 3분 내내 달리면서 노래하는 윤지영의 모습이 담긴 뮤비라니 너무나 귀엽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 달리기에 나설 때 첫 곡으로는 꼭 이 노래를 들어야겠다.

🌻 김동률 - 황금가면

이번 달 공개된 김동률의 따끈따끈한 신곡이다. 무려 4년 만에 낸 곡이라고 하는데 듣기도 전에 파격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가면이요? 심지어 황금..? 유난히 바쁘던 어느 평일 업무시간에 별 생각 없이 이 노래의 뮤비를 재생했다. 정말 30년차 직장인처럼 피곤에 찌든 배우 조우진의 표정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뻔하디 뻔한 표현이지만 그의 눈빛이 화면을 뚫고 내 피부를 지지는 것만 같았다.

사회인으로서 관성적인 일상을 살아가다가 과거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리곤 다시금 주먹을 꽉 쥐어본다는 노랫말. 전에 없이 새롭거나 기발한 서사도 아닌데, 되려 진부했기 때문에 지금의 나를 어렵지 않게 대입할 수 있었다. 내 체온과 같은 온탕에 몸을 담그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익숙하고 편안한 와중에 한번씩 가슴팍을 찌르는 가사들이 있다. '세상이 정해준 내 역할이 맘에 안 든다'니, '순간의 치기는 아니다. 이렇게 태어난 거'라니... 여기다 사람의 마음을 쿡 건드리는 김동률의 목소리가 감정을 속수무책으로 휘젓는다. 마침 올해 들어 가장 바쁜 시즌에 이 노래를 만나 마음이 찌릿찌릿, 여러 번 위로 받았다. 혹시 과로한 나날을 보내는 이가 있다면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반드시 뮤비와 함께 노래를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황금빛 맥주 한 잔을 비우고 났을 때처럼, 분명 괜찮은 위안이 되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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