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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전기로 연결된 도시에 관한 이야기

퍼블릭 퍼블릭의 2024년도 프로젝트에 앞서

2024.08.28 | 조회 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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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 

도시 A. 이 도시는 너른 평야와 리아스식 해안으로 만들어졌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비옥한 평야는 도시 전체 면적의 약 41%가 농경지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쌀 생산량으로 이어진다.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안겨주던 어업의 역사는 450년 동안 한 해의 풍어와 어부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풍어제 굿으로 증명된다. 큰기러기, 저어새, 큰고니, 흰꼬리수리부터 흔히 볼 수 없는 가창오리의 군무까지 볼 수 있는 이 도시는 다양한 철새들의 도래지이다.

도시 B. 기후위기로 사과 재배의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여성 농부, 누에고치를 키우기 위해 불을 떼던 잠실 가마의 뜨거움, 남아있는 갯벌의 다양한 생물을 관찰하는 생태교육연구자, 바다가 사라지면서 일자리를 잃었던 주민들의 땅찾기운동, 철새를 지키기 위해 송전탑 철거 운동을 하는 소들섬 주민, 지역 설화를 바탕으로 그림자극을 공연하는 70대 할머님 등이 현재의 도시를 구성한다.    

도시 C. 이 도시에는 리아스식 해안에 땅이 매립되면서 간척지를 중심으로 10기의 석탄화력발전소와 산업단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어디서든 높게는 100m에 육박하는 철탑을 볼 수 있다.(20층 아파트의 높이가 50m 정도임을 감안하고 상상해 보라!) 528개의 송전탑은 들판과 논밭, 산등성이와 주택 사이에 침투해 육중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200km가 넘는 전깃줄로 문명의 이기(利器), 전기를 나르며 저 멀리 큰 도시와 도시를 연결한다. 

도시 A, B, C 텍스트로 생성된 도시 이미지. DALL-E가 제작하였다.
도시 A, B, C 텍스트로 생성된 도시 이미지. DALL-E가 제작하였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민음사, 2007)에는 55곳의 흥미로운 도시가 등장한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방문한 도시들은 기억, 욕망, 기호 등 수많은 것들의 총체로 묘사된다. 칼비노에 따르면 행복과 질서, 불행과 무질서가 공존하는 곳,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고 선과 악이 얽혀있는 곳이 바로 도시다. 그리고 도시는 공간과 사건으로 이뤄진다. “창문 홈통의 기울기와 바로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당당한 걸음걸이 사이의 관계” (『보이지 않는 도시들』, p.20)처럼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도시 A, B, C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도시의 벼농사와 잠자리(2024.08.20.) ⓒhyejin Joo
도시의 벼농사와 잠자리(2024.08.20.) ⓒhyejin Joo

 

 

누구 하나만 악당으로 몰아갈 수 없는 이야기

앞의 세 가지 도시는 실상 하나의 도시이다. 이 도시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 바다를 흙으로 메워서 땅이 된 곳에 위치한 화력발전소 10기에는 한 해 동안 약 2만 7000 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이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약 1081만 톤의 석탄이 탄다. 2023년 한 해 동안 2250만 톤의 온실가스와 5007톤의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해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 2위를 기록하였다.

여기까지 들으면 당신은 이 도시에 대해 기후위기를 초래한 악당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서울과 인천, 경기권을 포함한 수도권은 전력 자립률 9%에 그친다. 그러나 전력 소비량은 40%에 달한다. ‘전력 흡혈도시’인 셈이다. 만들어진 전력은 생산지에서 떠나 대부분 수도권의 전력 수요를 위해 송전된다. 먼 거리의 이동과정에서 매년 1조 6,990억 원어치의 에너지가 손실된다. 그리고 고전압이 지나가는 지역에서는 생태계가 훼손되거나 주민 간의 갈등으로 번진다. 도시는 이러한 어려움을 감내하고 또 태양광발전단지 등 신재생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결국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도시를 단 한 번이라도 방문하지 않았을지라도, ‘전기’를 통해 이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전기로부터 비롯되는 일자리의 변화와 철새의 죽음, 주민 갈등까지도 당신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도시의 밤과 송전탑(2024.08.21.) ⓒhyejin Joo 
도시의 밤과 송전탑(2024.08.21.) ⓒhyejin Joo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누구 하나만 악당으로 몰아갈 수 없는 이야기’라는 소챕터에서 기후소설(Cli-fi) 문학장르를 예시로 들며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딜레마와 드라마는 전통적인 소설과는 너무나 상이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라든가 ‘9월 11일에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같은 전형적인 소설에 등장하는 질문 대신에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지 반문한다. ‘탄소 농도가 400ppm 일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라든가 ‘라르센 B 빙붕이 무너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도시와 도시를 넘어서 전 지구적 어젠다 앞에서, 당신과 연결된 이 도시가 과연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당신에게 어떤 도시를 상상하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칼비노의 소설 속 구절처럼 말이다. “칸은 머릿속으로 마르코가 그에게 묘사했던 모든 도시에서부터 자기 나름대로 출발했다. 그래서 도시를 조각조각 분해하고, 그 재료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옮기고 뒤바꾸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다시 건설했다”.

 


[1] ‘**화력 2023년 온실가스 2250만톤..대기오염물질 5007톤 배출’, **신문, 2024년 4월 22일자 기사 (도시명을 가리기 위해 **으로 처리함)

[2]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김재경 옮김), 『2050 거주불능 지구』, 추수밭, 2020, p.222.

[3]  이탈로 칼비노(이현경 옮김),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2007/2016, p.59.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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