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퍼블릭의 <2045 거주(불)가능도시>는 전기로 야기된 지역의 불평등 문제를 살펴보고 에너지 생산과 이동에 치우쳐 주목하지 않았던 생태계 훼손이나 주민들의 목소리에 다가가는 프로젝트로, 2024년 한 해 동안 세미나, 워크숍, 투어 등의 형태로 서울과 당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PP PICK의 2025년도 두 번째 아티클은 본 프로젝트에 함께한 예술가 2인(권은비, 서해영)의 두 차례 기획 인터뷰 중 두 번째 인터뷰이 <도시산책론2-도시의 미스터리>(2024~)를 진행한 예술가 권은비와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권은비는 불평등과 착취와 배제, 현장에서 이야기를 보고, 들은 것을, 작업을 통해 기록한다. 우리와 맞닿은 현실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여와 협업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한 과정을 설치나 사진, 영상 등의 작품으로 제시한다. <2045 거주(불)가능도시> 속 권은비의 <도시산책론2-도시의 미스터리>(2024~)는 중심인물 하나를 두고 자원 불평등에 놓인 당진의 지역적 맥락을 따라가는 작업이다.
이희옥(이하 Q). 어떤 사건, 소문, 이데올로기 등 무형의 어떤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권하는 작업을 해온 듯하다. 사회문제는 물론 그 이면에 잠재된 것들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주로 어떻게 작업의 가닥을 잡아가나?
권은비(이하 A). 사회의 어떤 문제를 생각할 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불균형 상태가 되는 지점들에 눈길이 간다. 우리를 둘러싼, ‘문제’라고 말하는 것들을 자세히 바라보면 결코 단순하고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처럼,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문제’가 되는 지점들의 구체적인 컨텍스트를 해부하고 해체해 보면 나 역시 익숙하게 바라보던 것들에 낯선 지점들이 포착되곤 한다.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예술이 가지는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작업을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정동(affect)이다. 따라서 작업을 시작할 때 대상과 거리는 두는 관찰자로서 접근하기보다는 대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 현장을 경험해 보거나 관계된 인간, 비인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활동가의 아이덴티티가 많이 발현되는 듯하다. 어떤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야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예술가라는 인식보다는 어떤 상황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Q. <1년, 매주 토요일, 맑스 앞에서>(2016)와 <움직이는 기념비-마르크스의 유령과 나>(2018)가 묘한 교차점이 있어 보인다. 전자는 같은 장소에서 매일 다른 풍경 내지는 다른 모습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이고 후자는 다른 장소에서 동일한 퍼포먼스를 반복하는 작품인데 마르크스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이념과 작가의 작품 속 배치되는 실질적인 인물(작가)이 이상과 현실의 대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대비를 파고드는 작업의 모티프는 어떤 것인가?
A.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분단된 나라(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분단’이 과거형이 되어버린 나라(독일)에서 지내면서 국가와 전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일상생활과 사람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는지 사유해 볼 수 있었다. 한국 사회가 가지는 특수성은 밖에서 인식할 때 비로소 보이는 지점들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생각했던 사회, 정치, 사상들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감각을 독일에서 지내면서 체감했다. <1년, 매주 토요일, 맑스 앞에서>(2016)는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책으로 시작된 작업이었다. 현재진행형의 한국 분단 역사와 과거 완료형의 독일 분단 역사는 묘하게 교차하면서도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었다.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거대한 역사 서사에서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행위는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대체로 수동적인 행위로 인식되지만 실제로 기다림이라는 수행성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행위는 조용하지만,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1년, 매주 토요일, 맑스 앞에서>(2016) ‘유령’을 기다리는 수행적 작업을 했었고, 덕분에 작업의 배경이 되었던 공간, 베를린의 대표 상징 모뉴먼트 중 하나인 맑스, 엥겔스의 동상을 보러오는 다국적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국가마다 가지고 있는 맑스, 엥겔스의 이데올로기와 상징들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이를 바탕으로 이어진 작업이 <움직이는 기념비-마르크스의 유령과 나>(2018)였다.
Q. 불안을 비누라는 결과물로 만들어 낸 <빨래 프로젝트>(2015)나 관객과 퍼포머가 한 그룹이 되어 함께 걷는 <도시산책론: 도시투어1, 서울의 미로>(2021), 혹은 관람객들과 퇴비를 만드는 과정이 작품이 된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2022)까지 모두 관람자의 참여를 기록하거나 그들의 참여가 작품의 완성을 좌우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사람이라는 변수가 있으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작업물이 될 때가 있고, 또 완성과는 다른 결의 결말로 마무리될 때도 있을 것 같다.
A. 스스로 관찰자로서 위치하기보다는 적극적 참여자, 또는 개입자를 거쳐 정동의 과정을 경험하고 나면 결국 나와는 상관없던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자 그 당사자가 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 이런 내 태도와 인식은 종종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미술관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미술관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계급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공간이다. 일생 한 번도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현장’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직업의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 농민들, 여성들, 홈리스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 『해방된 관객』에서 언급하는 중요한 인식, ‘지식의 평등함’이 저변에 흐르고, 해방된 모습으로서의 미술은 어떤 것일지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따라서 이런 인식에서 시작된 내 작업은 때때로 평생 미술관이라는 곳에 오지 못했던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하거나, 관객과 작가와의 관계를 해체하거나,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수행성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에서 더는 ‘완성도 있는 작업’보다는 ‘작업의 화자’는 누구인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많은 리서치를 거치고 이를 담을 영상이나 사진에 대한 구도를 계획하에 다 수행했다고 해도 결과물로 보면 틀어지는 경우가 꽤 많다. 게다가 여러 참여자가 하는 경우 모든 변수를 다듬을 수 없고 그런 과정이 참여자를 대상화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보이는 결과물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어법이기도 하지만 보이는 결과물을 향하다 보면 그런 설정 자체가 모든 상황이나 인물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그런 식의 셋업을 지양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Q. 단순히 공공미술이라는 장르로 작가의 작품을 보기에는 사회 참여 내지는 발언과도 연결되는 맥락이 잘 뻗어있다. 이태원 참사나 세월호 참사를 위한 지속적인 작품과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작품으로 연결되어 은유적인 방식이라고 해도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만큼 중압감이 있을 것 같다. 그런 말하기 방식을 표면적으로 이해하자면 ‘미술’은 지워지고 ‘공공’의 역할이 더 커지는 것도 같은데 이러한 균형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A. ‘미술’은 지워지고 ‘공공’의 역할이 커진다고 느꼈다면 어떤 지점이 그렇게 느끼게 했는지가 궁금하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우리는 매우 원론적인 질문, 미술은 무엇이고, 공공은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기술을 요하지 않는 장르 중의 하나가 미술이라고 본다. 미술적인 화법을 쓰지 않아도 현대미술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작가와 작업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릴 때 아무도 시키지 않더라도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듯이 미술에는 본능적인 측면이 있고, 그런 본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미술은 존재해 왔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미술은 애초에 공공성을 담보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이 미술이 될 수 있는 결정은 작가의 개인적인 역량보다는 미술관이라는 제도권 안에서 가능한 지점, 그 구조를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작업을 두고 오가는 '미술이다', '미술이 아니다'라는 판단은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보고 감상하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불평등한 공간 중의 하나인 미술관이 모두가 환대받는 장소였으면 좋겠고, 그들을 초대하고 미술관으로 데려오는 그 과정을 담은 것이 내 작업이 추구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그래서 미술관 밖으로 나가는 작업을 많이 해온 것 같다. 참여자의 입장에서 내 작업은 어떤 기술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참여하고 나서 오히려 미술이 가볍고 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술계 안에서 미술에 대한 기준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점이 있고, 이런 것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 또한 학부는 회화를 전공하고 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계속해서 사회와 부딪혀 보니 이를 풀어낼 수 있는 더 알맞은 방식으로 영상이나 설치 퍼포먼스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순수 예술이라고 부르는 장르로 작업하는 훌륭한 작가들은 많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오히려 나의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Q. 미술계 주변에 있는 나로서는 지속적으로 미술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을 타인에게 심지어는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작품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참사를 바탕으로 한 작업이나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2045 거주(불)가능 도시>에서 보여준 작업 <도시산책론2-도시의 미스터리>는 전기를 생산하지만,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당진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삶과 예술을 연결한다는 것에 막연하지만 유의미한 지점을 발견했을 거로 생각한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알려달라.
A. <2045 거주(불)가능 도시>에서 발표한 <도시산책론2-도시의 미스터리>는 서울의 발전과 신기술이라는 신화에 가려져 있는 당진의 서사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당진의 이야기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특정 인물을 통해 미시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도시산책론2-도시의 미스터리>는 중심인물인 이선군 위원장의 생애사를 따라가며 동시에 당진의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를 발굴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선군 위원장은 어부, 농부, 지게꾼, 간척지 노동자, 농산물 판매, 돼지 양돈, 고추 농부, 담배 농부, 김 양식자, 1톤 트럭 운전자, 약초꾼, 심마니, 산양삼 재배, 새마을 지도자, 개발 위원장 등 다양한 직업 변천사를 가지고 있다. 자료 조사를 통해 이선군 위원장의 직업적 전환 시기와 당진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층위와 전환 시기가 맞물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면면이 이선군 위원장이 성공 신화에서 착취당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서사를 세워 살아남은 대항 신화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선군 위원장을 통해 당진에 있는 사는 사람들을 서울을 둘러싼 자원 배분과 환경적 불평등의 피해자로만 인식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불평등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른 방식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전달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불평등과 소외는 내 작업의 중심 주제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과 비인간들을 둘러싼 세계가 불평등하다는 감각은 내가 계속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근원이다.
김소연 시인의 시집 『눈물이라는 뼈』(2009)의 첫 장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시작이라...울음, 그래요. 울음과 함께 시작되었죠.'
-밥 말리
부서지고 소외된 곳곳에서 우는 사람들과 함께 나 역시 울 수 있다면 내 작업을 통해 계속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희옥 / (재)광주비엔날레 마케팅교육부 stitch0633@gmail.com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