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대의 얼굴들

2021.09.10 | 조회 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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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시대의 얼굴들

여섯 문화애호가가 꼽은 뉴 제너레이션 여섯명

미술가 고요손. 20세기 초 추상미술이 활발했던 때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추상미술을 자주 생각한다. 그들의 미술에는 정신적인 가치와 이상향에 대한 열망을 성취하기 위해 선택한 장르 불문의 물질적, 개념적 재료들이 있었을 뿐, 회화와 조각으로 선명히 나뉜 장르 안에서만 미술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언제나 가장 새롭고도 진실한 것은 세대나 장르의 문제라기보다,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일 테니까. 박수지(독립 큐레이터)

뮤지션 잔나비. 이지 리스닝과 함께 잔나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단연 레트로다. 그룹의 강력한 개성은 멤버들이 사랑한 과거의 문법을 토대로 생겨났다. 그렇다고 레트로 열풍에 단순 편승한 건 아니다. 이들은 수십 년 묵은 빈티지 악기까지 구해가며 철저한 연구를 통한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고, 끝내 그 시절의 음악을 지금의 감각으로 재창조했다. 정민재(대중음악평론가)

배우 이재인. 그의 연기는 우리가 어른이 되자마자 증거를 인멸하듯 무심히 흘려보낸 감정들을 길어온다. 이재인을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열다섯, 열일곱으로 돌아가 우울과 불안에 휩싸이고, 미결로 남은 과거와 충돌한다. 그리고 어른인 나에게 이 경험은 ‘과오를 인정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복길(칼럼니스트)

방송인 재재. 재재의 노력은 차원이 다르다. 〈문명특급〉 ‘트와이스’ 편에서 재재는 나연의 애완견 이름까지 외워갔으며 ‘작사가 김이나’ 편에서는 그가 만든 노래를 제목만 듣고 술술 불렀다. 노래를 듣고 가는 이들은 많지만, 외워가는 이는 ‘아마도’ 없다.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을까? 이런 준비성 앞이라면 누구라도 무장해제 된다. ‘진심은 통한다’는 경구는 만국 공용어다. 인터뷰 때문에 급히 준비한 거라 해도 그 노력이 가상한 것이다.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준비했겠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다 좋아.” 남지은(한겨레 기자)

영화감독 임대형.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아무런 잘못이 없음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아니, 오늘날만큼 집단, 계층 간의 혐오가 극에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만큼 신성시되어야 할 일이 또 있을까? 한동균(영화감독)

시인, 문학평론가 강보원.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사람은 정작 흐름에는, 파도를 일으키는 일에는 관심 없이 빨래를 하는 사람이다. 빨래를 치대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파도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꼴을 보기는 하겠지만 곧 다시 자기 빨래를 보는 사람. 빨래를 하다가 지치면 수영을 하기도 하고 수영을 너무 많이 해서 죄책감이 들면 다시 빨래를 집어 들겠지만 그것에 얼마간은 머쓱하고 얼마간은 만족하는 사람. 김화진(민음사 편집자, 소설가) 

@에스콰이어

 

# 역사가 우릴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책의 첫 문장부터 당신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책"이라고 상찬한 베스트셀러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 내한.

내가 쓰는 소설의 첫 문장은 그 소설에 관한 일종의 주제문과 같다.

파친코는 쇠구슬을 튕겨 게임의 결과를 운에 맡기는 확률의 게임이라는 해석에 동의한다. 파친코라는 게임 자체가 사람의 삶을 비유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어떻게든 플레이해야 하는, 그러나 조작되고 불공정한 게임이란 점에서 파친코란 소재를 소설로 담고자 했다. 

나는 지적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지만 남들보다 빠르지도 않고, 여러 사안에 대해 정통하지도 않다. 다만 내 안에서 발생하는 개인적인 질문을 존중한다. 질문에 관한 답을 찾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내 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더라도 그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을 찾고 싶다. 나는 늘 내게 강력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쓰고 싶다.

이 책은 내 스스로에게 큰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내 소설의 출간을 약속한 에이전트나 계약서 없이도 수십 년에 걸쳐 이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집필하는 프로젝트는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방법이었고, 뭔가를 쓰는 삶은 결국 나를 향하는 일이기도 했다.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학생들에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라고, 또 나 역시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말하곤 한다. 사람들의 관심과 희생에 합당한 프로젝트를 선택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나는 우리 자신이 곧 에픽(epic·서사시)이라고 믿는다(I believeweareepic).

@매일경제

 

# 오늘의 단어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수사학>에 나오는 설득의 3요소. 로고스 논리, 파토스 감정, 에토스 진실성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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