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내 버텨내 오늘에 다다른 마음들
(궁핍하고 소소한) 현실을 이야기로 옮기기 위해선 실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걸 <파친코>를 보며 새삼 절감한다.
평범한 건 귀하고 드물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 일상의 심심한 시간들은 대체로 뇌리에 머물지 못하고 씻겨 내려가기에 마치 비어 있었던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흔하디흔한 평범함들이 다른 형식으로 표현할 땐 귀하고 비싸진다. 어윈 밀러는 말한다. “평범함은 값비싸다.” 이건 일상의 소중함, 평범함의 귀중함을 역설하는 말인 동시에 문자 그대로 사실을 적시한 명제다. 일상이 일상의 자리에 있을 때는 알 수 없다. 그걸 ‘이야기’의 형태로 굳히고, 영상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보기 위해서는 비싸고 비범한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이야기는 호소하지 않는다. 작가의 분노를 ‘듣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재미있게 읽고 함께 분노‘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평범함의 근간이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 자체가 귀한 게 아니다(물론 그걸 화면으로 다시 타자화하고 성찰하는 영화적인 기적은 놀랍고 아름답다). 평범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럴 수 없었던 삶의 질곡과 그럼에도 끝끝내 버텨내서 오늘로 이어져 내려온 마음들이야말로 진정 귀하고 소중하다. 당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존재했던 모든 어제, 누군가의 오늘이었던 그 모든 순간들에 감사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드라마 <파친코>의 마침표를 기다린다.
# 무능할수록 유능해 보이기 쉽다
지식이 쌓일수록 무지와 맞닿는 면적도 넓어지며 스스로의 협소함을 자각하게 되듯, 시야가 넓어질수록 내 경험치와 인식의 한계도 절감하게 된다.
사람이 없고 옳고 그름만 있는 대화는, 삶의 경험은 일천한데 논리에만 밝은 오만한 이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다. 때로 말을 아끼고 삼키는 이들이 자신보다 판단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여서일 수도 있음을 깨우칠 만큼 성숙지 못한.
“타인의 처지와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의 말이다. 사유의 무능은 경험의 빈곤에서 온다. 경험만이 지혜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범주가 편협하면 그조차 얻을 기회가 없다. 소외된 약자의 경험이 결핍된 자신감 넘치는 행운아들만 선망하고 숭상하는 사회와 정치가 사람이 없는 말장난의 난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무능할수록 유능해 보이는 아이러니. 진정한 공정은 ‘그들만의 시험 성적 리그’가 아니라, 우연한 행운과 불운이 만든 편향된 출발선과 누림의 격차들을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모르는 이들일수록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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