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목공을 배우고 쿠도를 수련하는 도환 님은 자신을 ‘매일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에게 수련은 강해지는 일만을 뜻하지 않아요. 자신을 비워 배움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알아차리고, 작은 행동을 해낸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과 쿠도 도장, 함께 질문하는 신앙 공동체를 오가며 도환은 자신만의 속도로 삶과 믿음을 다듬고 있습니다. 도환 님을 만나 보시지요.

유미(유): 먼저 자기소개와 함께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지 들려주세요.
도환(도): 부산에 사는 김도환입니다. 목공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7월부터는 하던 일을 잠시 쉬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목공방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며 아쉬움을 느꼈던 목공 이론과 기술을 강의와 실습으로 다시 배우는 중이에요.
이번 주에는 하부장을 만들었습니다. 직접 설계하고 자재를 산출한 뒤 나무를 재단하고 조립해 가구를 만들었어요. 마지막에는 서랍 레일과 문짝도 달았습니다. 현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익혔던 작업을 체계적인 언어로 다시 정리할 수 있어서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윤슬 가득한 집’이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집 근처 도서관에 가거나 도장에서 운동합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도서관 책상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때예요. 도서관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바다가 보이는데, 낮에는 푸른 바다가 마음을 탁 트이게 하고 밤에는 남항대교의 야경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유: 도장에서는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도: 쿠도를 합니다. 쿠도는 가라테를 기반으로 유도와 주짓수 같은 그래플링 기술을 도입한 일본의 현대 종합무술이에요. 한자 그대로는 ‘비어 있는 길’이라는 뜻인데요. 배움 앞에서 자신을 비워 두고 자유롭게 받아들이며 수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무술에 비해 기술 체계도 자유롭고 개방적인 편이고요. 저는 이런 틀에 얽매이지 않는 무도 철학에 매력을 느껴 입문했습니다. 실전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도 쿠도의 큰 매력이에요.
유: 얼마 전 쿠도 대회에 참가하셨다고 들었어요. 이기지는 못했지만 원했던 동작을 해내서 좋았다고 하셨지요. 도환 님에게 ‘수련’은 어떤 의미인가요?
도: 저에게 수련은 작은 행동에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행동을 해냈을 때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존감을 높이고, 삶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자신을 붙잡아 주는 힘이기도 해요.
살아가다 보면 제가 합의하지 않은 권위에 굴복하고 무기력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수련을 통해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시에는 거대하게만 보였던 권위에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는 용기도 얻었고요.

유: 수련하는 일과 신앙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립니다. 도환 님에게 신앙은 불안을 다스리는 힘인가요, 아니면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수련에 가까운가요?
도: 과거에는 불안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뛰어넘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불안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낙담했어요. 지금은 불안한 모습도 ‘나’의 일부라고 인정하려고 합니다. 지금 내가 불안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유: 도환 님이 예배드리는 윤슬공동체는 어떤 곳인가요? 계속 그 자리를 지키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도: 윤슬공동체는 여러 질문 속에서 함께 길을 찾아가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예배 형식을 벗어나 각자 준비해 온 점심을 함께 먹고, 지난 일주일의 안부를 나누며 예배를 시작해요. 이후에는 성경을 읽고 서로 질문합니다. 누구나 충분히 발언할 수 있고 어떤 질문도 자유롭게 꺼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Church M에서도 다양한 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어요. 저는 깊은 믿음을 가지면서도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신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가능할지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태도로 살아가려는 분들을 만나며 연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유: 윤슬공동체의 성찬 음식으로 망개떡을 준비하신 사진이 인상 깊었습니다. 망개떡에는 어떤 기억을 담으셨나요?
도: 망개떡은 제 본가가 있는 의령의 특산품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본가나 족보 같은 것이 가부장제의 부정적인 산물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곳에서 왔는지, 그 전통 속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의 삶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성찬 음식을 준비할 때 할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며 망개떡을 골랐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분들도 자신의 뿌리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유: 개신교인과 가톨릭교인이 함께 만나는 ‘느슨한 공공’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셨지요. 그 만남은 도환 님에게 어떻게 남았나요?
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공동체 분들을 보며 우리가 교회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교회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지인을 보면서, 정작 저는 그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한 번은 쿠도 도장 사람들이 일요일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는데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곳은 기존 교회처럼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예배 형식을 따르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 역시 ‘표준적인 교회’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교회가 무엇인지 새롭게 질문하게 됐어요.
유: 여러 사람을 만나고 함께 예배하면서 새롭게 마음에 남은 신앙의 언어가 있나요? 그럼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믿음은 무엇인가요?
도: 요즘 가장 마음에 남는 단어는 ‘침묵’입니다.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받아오면서 나를 사회에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던 것 같아요. 제 생각과 신앙을 증명하려고 부단히 말을 많이 했고, 기독교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며 상대를 타자화하기도 했습니다.
신앙 공동체에서 얻은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어 지금도 우리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또한 결국 공동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놓치고 싶지 않은 믿음은 연대하고 환대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힘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함께 모여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유: 마지막으로 도환 님의 신앙 여정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소스 리스트’를 들려주세요. (*소스 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의 이름입니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해요.)
영화 『해피엔드』

영화 속 재일교포 ‘쿠오’는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끊임없이 반응하는 인물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무지를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 역시 그들의 돌봄 위에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도 쿠오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폭력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반응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들의 배려와 돌봄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왔다는 고마움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예요.
영도 중리노을전망대

코로나 시기 부산 바닷가는 무척 조용했습니다. 특히 해운대에서 멀리 떨어진 영도는 지금과 달리 한적했어요. 너무 답답하거나 우울한 날이면 밤에 전망대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가끔은 기도도 했고요. (웃음) 지금은 영도에도 관광객이 많아져 예전처럼 묵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때를 떠올리며 중리노을전망대를 여전히 치유의 장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젠더 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지음, 조현준 옮김, 문학동네 펴냄, 380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저는 오랫동안 이분법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젠더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기보다 하나의 뚜렷하고 확고한 답을 찾으려 했어요. 그러다 단골 서점 친구들의 추천으로 페미니즘과 퀴어 고전을 함께 읽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의심 없이 믿어 온 많은 것이 사실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고 규범화된 것은 아닐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서점에서 개신교인은 저뿐이었지만, 오히려 친구들 덕분에 제 신앙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관점과 질문을 접하며 신앙은 정답을 빨리 얻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지금도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의심과 질문이 꼬리를 물고, 오프라인에서 신앙을 나눌 사람도 없었던 그 시기가 오히려 이전보다 저만의 신앙에 더 짙은 색을 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호인 7월 신간소개에 답장을 주셨어요.
- 💌 요즘처럼 알고리즘화된 시대에 다양한 좋은 책을 소개받기 쉽지 않은데, 정말 다양한 주제의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잘 소개해주셔서 볼 책이 많아진 부담은 있지만, 좋네요 ㅎㅎ 👉 박현철 신간모니터요원이 뿌듯할 피드백인데요! 드린 부담에 응원을 드려봅니다.
- 💌 책 정보 너무 유익해요. <성경의 세계사> 특히 읽어보고 싶네요. 👉 572페이지의 <성경의 세계사>에 관심이 가시는군요! 독서의 대장정을 일단 응원부터 하겠습니다. 🤩
‘시원해졌다!’고 생각하며 오늘의 기온을 확인해 보니 30도더라고요. 내년 이맘때는 조금 더 낮아진 기온 속에서 정말 시원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호는 서먹해진 성경을 다시 보게 하는 책 추천으로 돌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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