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도를 어려워 합니다. 기도에 관한 아픈 기억을 고백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기도를 멈춘 사람들도 있지요. 기도에 관한 기쁜 소식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기도를 천천히 되돌아 본다면 기도하는 기쁨을 경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시 기도하고 싶은 분들, 신앙의 여정을 꽃 피우게 하는 기도를 경험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루아영성심리연구소’의 정신실 소장님께 책 큐레이션을 부탁드렸습니다. 기도 이해의 기초를 다지면서도, 우리의 기도 생활을 북돋아 줄 필독서 목록에는 어떤 책들이 있을까요?
큐레이터: 정신실 소장(루아영성심리연구소)
A. 기도의 숲에서 길을 잃으셨군요. 한때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무언가 잃어버린 자리에서 지도 삼아, 나침반 삼아 찾는 것이 책인 것도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또 혹시 저와 같다면, 통성기도로 통칭하는 기도에의 열정으로 뜨거웠던 한때가 있으셨나 모르겠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거침없이 부르짖노라면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졌고, 마치고 나면 속이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확신’이란 것이 충만하던 시절이었지요. 확신에 확신을 더해주는 영적 권위자를 선망하며 의존하다 억압당하거나 상처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다 더는 무엇에 홀린 듯 멈추지 않는 언어로 꽉 채운 기도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언어가 사라져 텅 빈 공허의 공간은 끝없는 생각의 향연인 분심으로 채워지곤 했습니다.
책이 있어서 다행이죠? 읽을 수 있고, 읽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서요. 기도는 기도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지만 기도가 막힌 자리에서 더듬어 책을 찾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좋은 책이 많은데, 그 좋은 책들이 대부분 저와 선생님처럼 기도를 잃은 ‘체험’에서 쓰였다는 것입니다. 동시대를 사는 기도의 선생님들은 물론, 영성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오래전의 영적 스승님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종으로 횡으로 시야를 넓혀서 만날 수 있는 기도의 책 다섯 권을 소개합니다. 책을 빌미로 기도의 선생님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사귐의 기도
김영봉 지음, IVP 펴냄, 316쪽, 전자책 있음
기도 교과서 한 권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이 책입니다. 김영봉 목사의 《사귐의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들, 기도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응답하는 독보적인 책입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본질을 묻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기도에 관해 독자들이 품을 수 있는 온갖 질문에 명쾌하고도 깊이 있는 답변을 제시합니다. 이 책의 핵심은 기도의 본질이 ‘구하는 행위’나 ‘응답받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의 길’에 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영적 전통 안에 있는 다양한 기도를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묵상 기도, 관상 기도, 성경 읽기 기도, 시편 기도 등 개인이 홀로 드리는 기도부터 공동체적 기도에 이르기까지, 어딘가에서 생소한 언어로 들어본 기도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합니다. 출간된 지 벌써 20여 년이 된 유명한 책이라, 어쩌면 언젠가 읽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의 길을 잃은 자리에서 다시 읽는다면 새로운 이정표로 다가올 것입니다.
김영봉 목사님과 다르지 않은 깊은 고민과 연구 끝에 자신만의 고유한 이정표를 세운 분이 바로 상담심리학자 래리 크랩입니다.
래리 크랩의 파파 기도
래리 크랩 지음, 김성녀 옮김, IVP 펴냄, 302쪽, 전자책 있음
P(Present): 자신을 꾸밈없이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라.
A(Attend):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의주시하라.
P(Purge):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쏟아놓으라.
A(Approach): 하나님을 당신의 ‘1순위’로 여기고 나아가라.
“파파”는 말 그대로 아빠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맺음이 기도라는 뜻이며, 관계 맺는 방식을 설명하는 네 단어의 이니셜 조합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하자면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꾸미거나 가장하지 않고 말씀드리는 기도입니다. 꾸미고 가장하지 않는 이 투명한 태도는 저자 래리 크랩의 모든 저작에서 빛나는 특별한 장점입니다. 기도하고 싶지만 기도하지 못하는 자신의 ‘present’에 머무르는 고투 끝에 발견한 또 하나의 기도 길입니다. 상담심리학자인 저자는 솔직한 관계가 기도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이런저런 아픈 기억으로 파파, 아버지란 호칭을 부르기 힘든 우리의 마음까지도 껴안고 안내해 줍니다.
이제 개신교의 담을 넘어, 기도의 깊은 뿌리를 찾아 정교회와 가톨릭 영성의 세 분 선생님을 만나보겠습니다.
기도의 체험
안토니 블룸 지음, 김승혜 옮김, 가톨릭출판사 펴냄, 192쪽
이 책의 저자는 러시아 정교회의 대주교였던 안토니 블룸 주교입니다. 무신론자 의사였던 그가 회심하여 정교회의 사제가 되고, 대주교가 된 과정의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어서 제목의 ‘체험’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기도하려는 사람이 맨 처음 봉착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부재 체험입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느낌, 이 역시 기도의 길을 잃은 느낌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진정한 체험적 기도는 바로 이 부재의 느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기도는 필연 내면으로 향합니다. 우리가 아는 ‘말로 하는 기도’는 마지막 챕터에 가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라는 제목으로 나옵니다. 기도의 방향성을 잃은 분이라면 내면의 깊은 그곳으로 이끄는 이 책에 더욱 귀 기울여 배워볼 만합니다.
수행
가브리엘 붕게 지음, 민제영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256쪽
오직 기도하기 위해, 기도만 하며 살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들, 바로 ‘사막의 교부, 교모’라 불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기 4세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적 인정을 받자 안락해진 종교를 피해 자발적으로 박해와 투쟁의 장소인 사막(상징적으로는 내면)으로 떠난 분들입니다. 그 떠남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갈망. 바로 기도였습니다. 최근 개신교회 안에서 사막 교부의 영성, 여기에 모체를 둔 수도원 영성에 관심이 많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깊은 기도에의 갈망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사막 교부의 전승으로부터 기도에 관한 실천적인 방법과 자세를 길어 올려 우리를 수행, 즉 기도의 훈련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수행, 즉 ‘훈련으로서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적합한 장소와 환경은 물론, 수행적 기도의 열매인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기도에 있어 몸의 중요성 또한 환기하며, 서서 드리는 기도나 손을 들어 올려 드리는 기도 등을 제안함으로써 그야말로 실천적 기도의 길을 열어줍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감동과 추앙에만 머물지 않고 수행, 즉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영혼의 성
아빌라의 테레사 지음, 최민순 옮김, 바오로딸 펴냄, 384쪽, 전자책 있음
1515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2년 전 스페인 톨레도에서 ‘아빌라의 데레사’라 불리는 한 여성이 태어납니다. 이분은 500여 년 후 대한민국의 어느 모태 개신교인 여성을 구원합니다. (네, 기도의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 만난 책 《영혼의 성》의 저자와 저의 만남입니다) 교회와 종교 권력자들이 타락할 대로 타락한 위기의 시대에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 마르틴 루터는 개혁의 소명을 살기 위해 가톨릭교회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동시대 갈멜 수도자회 수녀였던 데레사는 “맨발로 예수님을 따르는” 정신으로 수도원을 개혁합니다. 타락한 기성 교회 “안에서” 시대적 사명을 살면서 하나님을 향한 절절한 갈망으로 기도하며 그 체험을 기록한 《영혼의 성》 등의 보석 같은 저작을 남겼습니다. 《영혼의 성》은 ‘내면의 성’이라 번역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 저 먼 어딘가를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내면 가장 깊은 곳을 향하는 그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며, 개혁하며, 기록한, 저자 자신의 영적 여정의 고백입니다. 영적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데레사의 기도는 초월하는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었고, 동시에 내적 자아를 만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대적, 종교적 간극으로 인해 다소 낯선 언어 표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의 길을 잃고 외롭게 떠돌던 저를 유구한 기도의 강물로 초대하여 풍덩 몸을 던지게 한 책입니다. 가만히, 조심스럽게, 저의 소중한 기도 스승님을 소개하며 일독을 권합니다.
시간과 교파의 장벽을 넘어, 기도의 본질과 보편성을 증언하는 다섯 분의 스승을 만나보았습니다. 이분들이 이구동성으로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과의 만남, 사귐, 관계, 깊어지는 친밀함의 체험’으로서의 기도입니다. 사귄다는 것은 얼마나 개인적인 일인가요? 게다가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면 말입니다. 이분들이 실제로 밟은 기도의 여정은 책에 담긴 활자보다 훨씬 크고 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듯 지도가 우리 손에 들렸으나 지도는 영토가 아니니, 이제 실제로 발로 밟는 일만 남았습니다. 당신이 홀로 밟아 만들어 낼 기도의 오솔길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르는 우리, 힘내기로 해요.
지난 35호 에녹님의 인터뷰에 보내주신 말들이에요.
- “분단된 조국 산하를 바라보며 슬픈 민족의 아들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 구절에 맘이 머물었네요. 저도 중국과 북한 경계에서 불꺼진 그 산하를 바라보며 슬픈 민족의 딸임을 마음에 새겼더랬죠. 에녹님 응원합니다. 청어람에서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꼼꼼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잊고 있었던 통일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네요. 정혁구 대표님 인터뷰도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분단된 나라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때가 많은듯 해요. 저도 덕분에 다시 떠올려봅니다.
정신실 소장님이 소개하신 책들, 어떻게 보셨나요? 다음 호는 11월의 신간을 살핀 박현철 신간 모니터요원의 책 소개로 만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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