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롭게, 용감하게, 현명하게
김경아, 김종호 지음,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300쪽
이 책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경아 작가의 유고를 묶어 다듬은 책이다. 몇 년 전 청어람에서도 김경아 작가와 ‘죽음’에 대한 책을 세 권 읽는 북클럽을 연 적이 있다. 나는 그 전까지 그를 성교육 강사이자 반편견 입양교육 강사, 번역가이자 작가로만 알고 있었기에 처음 기획을 들었을 때 죽음이라는 주제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튜터 소개가 인상적이어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죽음에 관한 책을 책장 한가득 보유한 독서가. 오래 전부터 질병과 씨름하며 죽음을 탐구하고 책모임을 진행했습니다.” 결국 그는 죽음에 관한 탐구를 매듭짓지 못하고 떠났지만, 마치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온 마음 다하여>처럼 듬성듬성해도 끈질기게 적어온 기록 위로 남은 이들의 사랑과 우정이 더해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글을 정리한 남편 김종호 대표는 서문에서 ‘이 책은 고통을 기록한 책입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은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라고 고쳐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과 고통, 죽음이 결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자유롭게, 용감하게, 현명하게 ‘사는 만큼’ 그렇게 ‘죽어야 한다’는 것을 선명하고 저릿하게 알려준다.
약함을 돌보는 단어들
김주련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216쪽
이 책의 저자 김주련 작가는 오랫동안 말씀 묵상 운동을 하고 묵상집 <매일 성경>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정작 성경이나 묵상에 대한 책보다는, 시집과 그림책, 그림책에 대한 책을 주로 썼다. 그래서인지 글의 매무새도 익숙한 기독교 서적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꼬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뭔가 독특한데, 이 책도 같은 느낌이다. 성경과 신학을 인용할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을 더 폭넓게 인용하면서 나와 세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묵상을 썼는데, 모르고 읽으면 그냥 에세이 같기도 하고, 의식하고 읽으면 깊은 영성서적 같기도 하다. 삶과 신앙의 고랑을 깊게 파고 오래 씨앗을 품고 틔워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단어들’을 골라 에세이를 쓰되 일반적인 신앙서적이 그렇듯이 ‘믿음, 소망, 사랑’ 같은 명사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약해지다, 잊다, 보다, 울다, 꿈꾸다’ 같은 동사에 대해 쓰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믿음’, ‘소망’, ‘사랑’ 같은 완성형 이름씨(명사)들은 ‘행한다’, ‘견딘다’, 수고한다’와 같은 움직씨(동사)들이 따라붙어야만 제 이름값을 할 수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약함’, ‘돌봄’에 대한 책인가 싶지만 바꿔 말하면 ‘성숙’에 대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나온 책들 중 손에 꼽을 만큼 좋았고, 오래 곁에 두고 조금씩 읽어 가고 싶은 책이다.
오순절, 우리의 이야기
로버트 멘지스 지음, 이우경 옮김, 바욤 펴냄, 168쪽
나는 보수적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이지만, 성인이 되어 몇 년간 은사주의적 신앙에 꽤 심취한(?) 적이 있다. 지금은 또 다른 결의 신앙 여정에 서 있지만, 그런 배경 덕분에 은사주의와 오순절 신앙은 내게 여전히 특별한 지분이 있고, 친근감과 아련한 동경이 쉬섞인 마음도 있다. 그래서 ‘깨어있는’ 신앙인들 사이에서 간혹 느껴지는 은사주의에 대한 폄훼나 오순절에 대한 몰이해가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런 몰이해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은사주의나 오순절 전통 스스로 자신들의 신앙을 더 잘 설명하고 체계화해 전통 신학과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오순절, 우리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매우 반가운 책이다. 로버트 멘지스는 오순절 계열의 학자로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충실하게 소개한다. 특히 성서신학이라는 본인의 전공대로 오순절 전통의 주요 키워드인 성령세례, 방언, 표적과 기사, 성장과 부흥 등이 어떤 성서신학적 배경과 근거를 갖고 있는지를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경 해석의 결론에 대한 동의여부를 떠나 진지한 신학적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책이다. 번역자에 따르면 곧 출간 예정인 멘지스의 다른 주저 <성령, 증언의 능력: 누가 행전에 나타난 성령>(Empowered for Witness)에 대한 요약판과 같다고 하니, 이 책을 먼저 읽고 관심이 있다면 주저를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종교개혁의 표어들
로버트 젠슨 지음, 권헌일 옮김, 비아 펴냄, 180쪽
출판사의 소개에 의하면 저자 로버트 젠슨은 ‘그 자존심 강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가장 독창적이고 박식한 신학자로 부른’ 신학자이자 ‘그 못지 않게 꼬장꼬장한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가 미국에서 가장 창조적인 신학자라고 부른’ 신학자라고 한다. 나는 그의 책을 더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상찬이 과연 얼마나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번역된 그의 유이한 책 중 하나인 <꼬마 신학자 솔비와 나눈 하나님 이야기>를 아주 즐겁고 인상적으로 보았기에 이 책도 기대하고 집어 들었다. <솔비..>에서 젠슨은 손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사방으로 튀는 대화도 끊기지 않게 이어가는 넉넉한 할아버지 같았다면, 이 책에서는 그 책처럼 기발함은 유지하면서도 훨씬 더 날카로운 학자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루터가 종교개혁기에 강조한 표어들(slogans), 그러니까 우리에게 익숙한 ‘오직 은총(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서(성경)’, ‘모든 신자는 사제다(만인 제사장)’ 같은 표어들이 원래의 의미대로 오늘날도 잘 사용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솜씨가 날카롭고도 대담하다. 길지 않은 책에 10개의 표어를 담고 있어 자칫 겉핥기에 그치는 건 아닐까 우려했지만, 전하고자 하는 문제의식만큼은 선명하다. 책의 표지 색깔처럼 강렬하고 인상적인 책이다.
니케아 신경 형성기
곽계일 지음, 다함 펴냄, 256쪽, 전자책 있음
올해는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이다. 1700주년이라니. 기념하기에는 너무 큰 숫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이나 바울의 활동 시기도 정확히 몇 년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점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와 신경이 초기 기독교 역사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선명하게 기념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형성의 기념일’로 니케아 공의회를 삼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보통 오래되고 보편적 신앙고백으로 사도신경만 알고 있지만, 사실 사도신경은 고백용 요약본(?)이고, 교회의 공식적인 신학적 답변이자 신경으로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더 충실하다. 이 책은 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형성된 약 60년간의 역사를 때로는 역사책처럼, 때로는 조직신학책처럼 흥미롭게 풀어쓴 책이다. 흥미롭게 풀어 썼다고 했지만, 솔직히 누가 봐도 재밌거나 쉬운 책은 아니다. 어쨌거나 핵심은 ‘난해한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곽계일 교수는 이미 전작 <동방수도사 서유기 + 그리스도교 동유기>와 <오리게네스 성경해석학 서사기>에서 탁월한 필력을 보여주었기에 이 책 역시 최고의 가독성을 보여주리라 기대할 수 있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1700주년을 핑계삼아(응?) 그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찬찬히 도전해 볼 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제2성전기
김근주 지음, IVP펴냄, 378쪽
보통 신약과 구약 사이의 시기를 ‘신구약 중간기’(혹은 중간사)라고 부른다. 심지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멸망부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침묵하셨다고 해서 ‘침묵기’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김근주 교수는 이 ‘중간기’라는 말이 시기상으로 모호하고, 신약과 구약을 단절된 것으로 파악하게 할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바빌론 포로에서 귀환해 성전(제2성전)을 세운 주전 516년부터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된 주후 70년까지의 시기를 ‘제2성전기’로 명확히 규정하고, 신구약 성경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사실상 기독교의 배경이 된 이 시기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이런 내용은 신학계에서는 일반적인 이해이고, 최근들어 이 시기(와 관련 문헌)에 대한 연구는 더 활발해지고 있다. 이 시기에 대한 이해는 성경해석의 기초를 다지고 입체감을 돋우는 역할을 할 수 있어, 학자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중적인 입문서가 드물다는 인상이었는데, 이 책이 학문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적절히 잡은 훌륭한 안내가 되어줄 것이다.
한 줄 보태는 책들
몇가지 책을 단평으로 소개합니다.
- <마가복음 전남방언>(대한기독교서회)은 마가복음을 전남 사투리로 옮겨놓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하눌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지게 복된 말씀은 요래 시작이 되었재라”(막1:1) 갱상도 사람도 따라 읽다보면 “아따 거시기 징허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 <히브리어로 읽는 모세오경>(복있는사람)은 히브리어 단어를 중심으로 모세오경의 주요 본문들을 살피는 성경공부 혹은 설교집 혹은 묵상집이다. 히브리어 학습용 책은 아닌데, 히브리어에 대한 호기심은 제법 자극한다.
- <기독교 우리가 숨쉬는 공기>(IVP)는 서양 문명의 형성에 기독교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밝히는 책이다. 얼마전 ‘읽는 신학교’에서 함께 읽은 <도미니언>의 기독교식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종의 호교론적 접근을 하기에 호불호가 있겠다.
- <불안을 이기는 작은 습관들>(IVP)은 ‘불안’을 다루는 심리, 정신과적 접근과 영적인 접근을 균형있게 추구한 실용서다. 약간은 개인적 이유로 뽑았는데, 내가 불안해서인지 불안한 사람을 돕고 싶어서인지는 비밀로 하겠다. 일단은 둘 다에게 유용해보인다.
- <소설이 내게 말해준 것들>(비아토르)은 신뢰할 수 있는 번역가이자 ‘작가’인 홍종락 선생님의 독후감 모음집이다. <악마의 눈이 가르쳐준 것들>을 안다면 그 후속작이라 생각하면 된다. 문학 서평집 혹은 소설 해설서라 하는게 조금 더 ‘있어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 독후감이라 칭하는게 책의 성격에 가장 가까워보인다.


✍️ 박현철 | 종교/역학 신간 모니터요원
지난 32호였던 지애님의 인터뷰에 많은 답장이 왔습니다.
- 김지애 화이팅!! 정성스런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 지애님 최고! 인터뷰한 지애님 친구 김유미도 최고!
- "세월호 이후의 신앙을 이렇게 살아내는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식 계속 전해주시고 어떻게 연대 할 수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 416연대 (https://416act.net)를 관심있게 지켜봐주세요!
- 내 삶의 권리 주체이자, 이 사회의 권리 주체로서 내 삶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신앙 안에서 고민하고 활동으로 보여지는 사람이…이미 되었으니 이미 또 아직의 마음으로 아자아자! → '이미와 아직'을 여기서 꺼내주시다니요! 🥹
- 꿀꿀한 토욜 아침, 주신 음악을 들으며, 만둣국을 끓여 식사합니다. → 몹시 은혜로운 식사셨겠어요.
- 지애님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종교(기독교)의 언어가 고통에 직면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 ’주문‘이 된다는 인용 내용이 저에게도 따끔하게 와닿네요. 사회적 재난과 그 이후의 회복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직접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활동가분들께는 늘 마음의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곳에서 더 넓게 더 깊이 뿌리내리시기를 바라고, 몸도 마음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 같은 마음이 듭니다. 지애님 보고 계시죠?
- 건강하고 지혜로운, 멋진 기독운동 활동가님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시민단체 가셔서도 계속 힘내시길 기원합니다. 화이팅! → 역시나 지애님 보고 계시죠? 화이팅!
긴 연휴를 잘 보내셨나요?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찾아온 따끈한 9월의 신간 소개는 어떠셨을까요? 이번에도 어떤 책을 장바구니에 담으셨을지 궁금하네요. 책을 사랑하는 틈 구독자들의 후기를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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